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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거리

인간문화재 고 박병천의 삶과 예술세계를 조명한 평전 펴내

《인간, 문화재 무송(舞松) 박병천》

[우리문화신문=이한영 기자]  

 

무(巫), 그들에게 역사란 허망한 옛 영화요 몰락의 연대기였다.

 

어릴 땐 ‘새끼무당’ 커서는 ‘무당새끼’, 그저 시절이 더 흘러 호적에 적힌 먹빛이 희미해지길 기다렸다. 딱! 그 무렵, 물길의 역류를 꿈꾼 박병천, 젊은 그가 있었다. 주먹으로 날리던 시절부터 가무악으로 날리던 시절까지. 화술(話術)은 이 땅을 설득하고, 예술(藝術)은 세계를 휘어잡았다. 다만 너무 가까운 과거였기에 역사로 기록하지 못한 채 풍문으로 떠돌고 있었다. 그날의 육성들이 대갈일성이 되었고 이 책이 기획되었다.

- 머리말 중에서

 

고향마을 이장에서 예술계 원로, 전직 관료까지

70여 명의 육성을 탐문(探聞)과 탐문(探問)의 문장으로 구성

 

고 박병천 선생의 삶과 예술세계를 담은 《인간, 문화재 무송 박병천》이 한국문화재재단(도서출판 문보재)에서 펴냈다.

 

이 책에는 신분적 질서에 따라 호적의 진한 먹빛의 기록에서 시작해 신분적 질서의 역류의 물길을 만들어 가무악을 습한 뒤 예술인 박병천으로 살아 온 삶의 이력과 예술세계를 선생의 고향마을 이장에서 예술계 원로, 전직 관료까지 70여 명의 육성을 탐문(探聞)과 탐문(探問)의 문장으로 구성했다. 저자와 편집자는 ‘노련한 흥신소 직원이 되어 지워진 길 위에서 수없이 탐문해 봉인된 기억’을 열었고, ‘희미한 한 장으로도 수많은 인생풍경을 인화했고, 그때 걸었을 옛 지도’를 그려 넣었다.

 

이 책을 감수한 진옥섭 이사장은 “무송 선생과 함께한 분들이 전하는 이야기지만 형용사 깃든 전설이 아니다. ‘박병천’이라는 ‘있었던 그대로의 과거’를 찾아 기록했다”라고 썼다. 그래서 저자는 제목에서도 인간문화재 속에 쉼표를 부여했다. 인간적인 삶과 문화재라는 예술 사이의 굄돌이리라.

 

이 책은 고 박병천 선생을 씻기는 책이다

 

박병천 선생의 장남 부산대학교 박환영 교수는 “씻김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삶이 중요한 거야”라고 이야기했다. 씻김굿 전반부는 살아 있는 사람을 위한 굿이고, 후반부는 망자를 위한 굿이다. 망자의 혼을 극락왕생하시라고 천도하는 행위이자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잘되라고 복을 빌어주는 의미의 행위가 씻김굿이라면, 이 책 역시 박병천 선생을 기리고 잘 가시라고, 남은 이들은 서로 간의 갈등을 풀고 다들 잘되라고 복을 빌어주는 마음으로 쓴 책이라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책은 9대를 이어온 무속인으로, 밀양 박씨 청재공파의 붙임 성씨로 만든 족보이야기부터 시작해 ‘새끼 무당’ 시절을 풀고, 삶의 터전이자 예술세계를 형성한 진도 땅의 기운, 진도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제3부 격인 ‘춤추는 망부석’에서 주먹질로 치열한 생의 기질을 닦으면서, 한편으로는 예술적 기질을 다지는 성장기를 엮었다.

 

이어 ‘진도 민속문화의 대변자’ 편에서는 인류무형유산 강강술래를 포함하여 진도씻김굿, 진도다시래기, 진도만가, 남도들노래, 진도북춤 등 진도 무형유산을 진도라는 울타리 너머로 펼쳐내고, 급기야 진도 무속을 바탕으로 한 한국인의 전통무형유산의 DNA와 ‘게놈지도’를 세계무대에 알리는 장으로 넘어간다. 여섯 마당에서는 완성된 예술인의 삶과 이를 다음 세대에 전수하는 교육자의 삶, 예술의 완성에 이르기까지의 <인간극장>을 종이 필름에 담았다. 이후 국악 명가를 이루고, 간암선고와 투병생활을 하며, 이승과 하직하기까지, 한 인간의 생의 이력을 기록했다. 마지막 장은 부음(訃音)의 참 의미인 ‘산 자와 죽은 자의 화해 의식’을 정리했다.

 

누군가의 이야기가 모이면 역사가 된다.

 

한 인물의 삶을 통해 시대를 만날 수 있는 평전이야말로 일반 대중들이 역사와 시대를 만나기에 가장 효과적인 접근방법이 될 수 있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권에서 “전기문학(biography)의 상실은 우리 인문학이 대중한테서 멀어지게 된 중요한 원인의 하나이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특정 인물에 대한 평가나 비판을 꺼리는 우리의 사회적 풍토의 영향 등으로 인해 대중의 관심도 적었고 출간물도 그리 많지 않은 것이 국내 출판의 현실이다.

 

특히, 인간문화재를 다룬 평전의 경우 공적을 중심으로 다소 미화된 출판물들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이번 고 박병천 선생에 대한 평전은 동네 이장에서부터 예술계 원로, 유족, 제자, 전직 관료 등 70여 명이 넘는 이들의 증언 내용을 토대로 예술가로 살았던 삶뿐 아니라 한 인간이자 한 가정의 가장이며 아버지, 스승이자 예술가로서의 삶을 다각도로 조명하고 있다. 또한, 인간문화재 박병천이라는 한 개인의 삶을 통해 193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민속예술의 역사와 향토사를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일제강점기의 학적부부터 1960년대의 야간통행증 등의 실물 사진을 통해 근대사의 한 조각들을 발견할 수 있다.

 

 

박병천 선생이 세상을 뜬 지 13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그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남다른 예술성, 끼가 있어야 남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예술이 되는 거야.

끼가 있는 사람들은 뭔가 달라. 호소력이 있고 뭔가 청중들을 금방 공감시키고.

북춤 한번 보면 반할 수밖에 없지. 그렇게 멋있고.”

- 한명희, 가곡 비목의 작사가 / 전 대한민국예술원 부회장

 

“그런 명인이 나오시기가 어려울 텐데...

지금 살아계시면 훨씬 음악이 풍성할 텐데. 아쉽죠.”

- 안숙선, 국가무형문화재 가야금산조 및 병창 예능보유자

 

“정말로 우리의 혼을, 한민족의 그 DNA를 오롯이 가졌던 분이야.

그리고 그것을 풀 줄 아는 분이었어. 정말로 그 시대의 치유사야. 치유사.”

-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대한민국 국악인 중에서 제가 유일하게 존경하는 사람은

박병천 선생님 혼자뿐입니다. 그런 분들은 진짜 하늘에서 내주기 전에는

힘들다고 저는 생각해요.”

- 이현표, 전 주독일한국문화원장

 

“진짜 잘 노셨다 가신 분 같애. 인생을. 참 멋을 알아.

가무악 삼박자를 모두 갖춘, 완전 풍류 그런 걸로 똘똘 뭉친 분이라고.”

- 장사익, 가수

 

《인간, 문화재 무송 박병천》은 모두 276쪽 분량으로 값은 22,000원. 주요 서점에서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