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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그리지 않는 칠자불화(漆者不畵)

[정운복의 아침시평 88]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요즘 도시에서 칠흑 같은 어둠을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빛 공해로 이름 지어진 도시의 밝음이

야간 운전에 전조등을 켜지 않아도 잘 모를 때가 있으니까요.

그것이 달빛과 별빛을 잃어버린 삶을 살게 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칠흑이란 옻칠을 한 것처럼 검은 것을 의미합니다.

참옻나무의 진액은 피부에 닿으면 강한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독성물질입니다.

이것으로 도료를 만들어 칠하게 되면 아주 검은 색으로 광택이 납니다.

칠흑의 칠(漆)이 옻나무를 가리키니까요.

옻칠하면 해충도 막을 뿐 아니라 잘 부식되지도 않으니

아주 훌륭한 도료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나전칠기나 칠서(漆書) 모두 옻나무 도료를 이용한 것이고요

영어 단어 '래커'(lacquer)도 옻나무의 원료를 포함하고 있다는 의미이지요.

어찌 되었거나 칠흑은 칠흙이 아니며 매우 어두운 상태를 의미합니다.

* 나전칠기 - 아름다운 광채가 나는 자개 조각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박아 붙이고 옻칠한 공예품

 

 

전국시대 장자(莊子)는 몽(蒙) 지역에서 칠원리(漆園吏)라는 벼슬을 하였는데

칠원(漆園)은 옻나무 동산이니 장자의 벼슬 이름으로 쓰일 정도로

예로부터 옻은 귀하게 쓰였습니다.

 

칠흑을 이기는 방법으로 어렸을 때는 병 불을 만들어 사용하곤 했습니다.

이홉들이 소주병에 석유를 반 채우고 천으로 심지를 박아 불을 붙이면

밤길을 걷거나 앞 개울로 가재를 잡으러 갈 때 아주 요긴한 용품이 되었습니다.

 

그것이 시위 때의 화염병과 같다는 것을 대학에 들어가서야 알았습니다. 화염병은 불길도 위험하지만 깨진 유리 조각 또한 위협적임을 인식할 필요도 있지요. 어찌 되었거나 우리 시위 현장에서 화염병이 사라지고 피켓이 등장한 것은 멋짐입니다.

 

칠자불화(漆者不畵)란 말이 있습니다.

옻칠하는 사람은 그림을 그리지 않는다는 말씀이지요.

무엇이든 한 가지에 열중해야 장인(마이스터)이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텔레비전에 여러 가지 재주를 가진 사람이 나오면 몹시 부러운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잘 할 수 있는 것에 매진해야 으뜸 경지에 이를 수 있습니다.

여기저기 기웃거리거나 군데군데 우물을 파다 보면

깊은 샘의 좋은 물을 얻을 수 없을 테니까요.

 

칠을 잘하면서 그림 또한 잘 그리기가 쉽지는 않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