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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내포제시조 차세대 명인, 보존회 김윤희 회원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536]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금 서한범의 우리음악 이야기는 내포제시조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경제와 견주는 창법으로 내포제는 세청을 쓰지 않는다는 점, 남창 가곡도 세청의 창법을 금하고 있는 점에서 보면, 내포제 시조가 가곡의 창법과 유사하다는 점, 발음법에서도 경제에서는 중모음을 풀어서 발음하나, 내포제는 그렇지 않다는 점, 종지(終止)박의 위치가 다른 이유는 반주악기들의 참여 여부와 관계가 있다는 점, 시조와 같은 옥내의 반주음악은 음량을 최소화해야 해서 세피리를 쓰고, 대금의 저음역을 활용하며, 장고는 변죽(가장자리)을 쳐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이야기 등을 하였다.

 

이번 주에는 <내포제시조 보존회>의 활동 중, 회원들의 정례발표회 이야기를 해 보기로 한다. 이번 제33회 정례발표회는 지난 6월 21일 내포제 시조 전수관에서 열렸는데, 전국적으로 알려진 강습회를 시작하기 전, 회원들이 준비한 종목들을 공개적으로 발표하는 행사였다. 이 자리에는 부여 군수를 비롯한 지역의 유지들과 전국 각지에서 참여한 전문가, 시조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촐하게 진행되었다. 글쓴이는 발표회가 시작되기 전, 다음과 같은 격려의 말씀을 했다.

 

“시조창을 이해하고 즐겨 부르는 계층이 노인층으로만 국한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박자가 느리다고 해서 시조창의 아름다운 미적 값어치나 음악적 요소를 외면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해마다 시조창 발표회를 열고 연례강습회를 꾸준히 열고 있는 내포제 시조인들의 활동에 대해 격려의 박수를 보내드린다.”

 

보존회의 발표내용은 평시조 <사자강>을 시작으로 해서, 사설시조 <부소산 저문 비>, 여창지름시조 <기러기 산이로 잡아>, 남창지름시조, <바람아 부지마라>, 반각시조 <초당에 곤히 든 잠>, 중허리시조 <님그린 상사몽이>, 엮음지름시조 <학 타고 저 불고>, 평시조 <태산이> 등이었다.

 

회원들의 발표회는 잘 부르고, 못 부르고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그동안 배우고 익힌 솜씨를 공개적으로 발표하기 위해 함께 참여한다는 그 자체가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전 회원들의 열의나 노력, 참여 등이 그대로 드러나 보였기에 자체 발표회는 성공적이었다고 하겠다.

 

무대에 올라 발표를 해준 회원들을 구체적으로 평가하고 격려해 주어야 하겠지만, 대체로 음정이나 장단 등, 기본기를 갖추고 있으며 스스로 즐기는 모습이어서 보기가 좋았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특히 주목해야 할 회원의 창은 <님 그린 상사몽이>를 불러준 김윤희 회원이어서 이를 격려해 주고 싶다.

 

 

그녀는 목이 좋고, 상하청이 안정적이며 장단과의 호흡이나 요성, 퇴성의 표현이 자연스러워 흠잡을 곳이 없을 정도로 잘 익은 소리였다는 것이 이날, 자리를 함께한 전문가들의 평가였다. 공주대 조성보 교수, 최삼범 전 국악고교장, 정가의 명인 박문규 원장, 황숙경 여류가객, 김민정 박사 등은 하나같이 김윤희의 시조창을 감상한 뒤 그 칭찬과 격려에 인색하지 않았다.

 

발표회가 끝나고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서 김윤희(김)는 글쓴이에게 자신과 국악, 특히 시조창과 만나게 된 계기를 이렇게 소개했다.

 

서한범(아래 서); “내포제시조 보존회원이 되어 시조를 부르게 된 계기는?”

김윤희(아래 김); “저의 삶에 있어서 내포제시조는 숙명적인 만남이고, 사랑이며, 인생을 읊조리는 그 자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어려서부터 우리음악을 좋아했어요. 초등학교 3학년부터 학교에서 운영하는 가야금 병창부에 들어가서 가야금을 타며 노래를 불렀지요. 병창 선생님이 좋아서 <부여국악원>에도 자주 놀러갔는데, 그 국악원 옆에 <내포제시조 전수관>이 있었어요.

 

그곳에서는 당시 내포제시조의 예능보유자이셨던 소동규 선생께서 저희 아버지(김연소)에게 시조창을 지도하고 계셨어요. 저 역시 소동규 선생님을 저희 할아버지처럼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아버지의 권유로 보존회원이 되었습니다.”

 

서; “시조창뿐 아니라 대금 연주도 수준급이던데?”

김; “네, 감사합니다. 부여의 <백제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국립국악중고등학 교>를 6년 동안 다니면서 대금을 전공했고, 그래서 자연스럽게 전수관에 올라가 어르신들 반주도 맞추어 드리며 시조와 어우러질 수 있었지요. 그 뒤, 한양대 국악과에 입학하면서 대금과 시조 수련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지요.”

 

 

서; “대금과 시조를 동시에 연마하고 있는데, 그동안의 수상 경력을 소개한다면?”

김; “수상보다는 대학 과정을 충실히 한 편이어서 매 학기 장학생이었어요. 한양대 국악과의 수석 졸업이란 영예를 안았지요. 경연에서는 2004년 제30회 전국난계국악경연대회 대학부 은상, 제10회 홍성역사인물축제기념 제27회 전국남녀시조경창대회 금상, 제41회 내포제시조 전국 남녀경창대회 종합대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뜻한 바 있어 고향에 내려와 2013년부터 현재까지 <충남국악단> 단원으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서; “현재 내포제시조 이수자로 활동 중인가?”

김; “이수자가 된 지 5년이 넘었습니다. 그동안 매년 강좌와 발표회에 활발하게 참여해 왔으며 이와는 별도로 제 개인의 시조창 수련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서; “현대사회에서는 시조를 느린 음악, 혹은 어려운 음악으로 생각하고 접근을 꺼리는 듯한데 이에 대한 의견은?”

김; “문화 공간은 늘 우리를 위해 열려 있기에 관심과 의욕만 있다면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 젊은이는 다채롭고 화려한 것에만 주목하며 우리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적은 아예 무관심한 현실이 안타깝기만 할 뿐입니다.”

 

서; “그럼, 김윤희만의 시조 사랑 방식이 있다면?”

김; “원효대사가 불교를 어렵게 생각하는 백성들을 위해 노래로 부처님의 말씀을 전파하듯이, 시조를 어렵게 생각하는 일반 대중에게 가깝게 다가가 자주 들려주고, 또한 알려주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이것이 저의 시조 사랑 방식이고, 이것이 바로 시조창의 명맥을 이어가는 길이라 확신하고 있습니다.”

 

서; “앞 시대 시조인들의 시조 지키기 위한 노력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김; “시간의 벽을 뛰어넘어 한결같이 최고의 값어치를 부여하고, 이를 지켜내기 위한 선대 시조인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옛 선비들의 정갈한 멋이 살아있는 시조창의 감동은 더욱 선명해지리라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