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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여성독립운동가, 마침내 1열에 서다

《여성독립운동가 100분을 위한 헌시》, 이윤옥, 얼레빗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한 줌의 자살 약을 품에 안고 살아야 했던 혹독한 세월을 임은 어찌 참아내셨단 말입니까?

 

시인의 안타까운 절규가 귓전을 울린다.

나라 잃은 35년은 실로 혹독한 세월이었다.

독립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던 임들에게는 더욱 가혹한 시간이었다.

갓난아기가 어엿한 성인이 될 만큼의 긴 시간 동안 일제는 흥성했고 독립은 점점 멀어져갔다. 그러나 임들은 계속 싸웠다.

아무리 현실이 어려워도 의로운 길을 걸어야 한다는 신념, 그것이 용기의 원천이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이윤옥 교수가 2019년 펴낸 《여성운동가 100분을 위한 헌시》는 이런 임들을 위한 헌사다. 이들은 가족을 따라, 혹은 스스로 뜻을 세워 독립운동에 뛰어들었다. 그 대가는 혹독했다. 모진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순국하기도 했으며 경찰에 의해 피살되기도, 독살되기도, 의문의 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라의 얼을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이처럼 대의를 위해 자신을 내던진 수많은 ‘임’들 덕분이었다. 이들의 분투가 없었더라면 오늘날 우리는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아주 간략한 서사밖에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분투에 비해, 우리가 아는 내용은 턱없이 적다. 특히 여성독립운동가는 유관순 열사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성독립운동가로 서훈을 받은 이들이 500명이 넘는데도, 우리가 이름과 행적을 아는 이는 채 다섯 손가락을 넘지 못한다. 어떻게 이토록 큰 단절이 생겼는가.

 

그것은 남성독립운동가와 견주어 이들의 행적을 기록한 글이 턱없이 적고, 자료가 부족하니 연구도 미진했던 탓일 게다. 독립운동하는 남편과 자식을 ‘뒷바라지’한 수많은 여성들은, 역사 속에서도 뒷줄에 세워져 그림자로 남았다.

 

저자는 자신의 다른 저작인 《서간도에 들꽃 피다(모두 10권)》에서 다룬 여성 독립운동가 200인 가운데 100인을 추렸다. 그리고 한 명 한 명, 진혼시를 바치며 이들을 앞줄로 불러냈다. 저자의 부름을 받은 이들은 마침내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와 환한 빛 앞에 섰다.

 

책에 실린 100편의 시 가운데 특별히 기억에 남는 세 편을 소개한다. 책에는 시와 더불어 인물에 대한 간략한 소개도 함께 실려있어 이해를 돕는다.

 

이화동산에서 독립정신을 키운

유관순 스승 ‘김란사’

 

남들 쓰개치마 쓰던 시절

멀고 먼 태평양 바다 건너

푸른 꿈 안고 떠난 유학길

 

백인 뒤질세라

조선 여인 불굴의 의지

신천지에 굳게 심고

금의환향하던 날

 

이화동산에서 반기던

배꽃처럼 희고 고운 소녀들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

호랑이 사감 되어

다독이던 그 굳은 의지

고종황제와 엄비조차 신임하던

우국의 여인

 

어느 친일분자의 독약에 뜻 못 펴고

이역 땅 북경에서 눈 감았으니

 

아! 슬프도다.

그 장대한 뜻 끝내 펴지 못함이여.

 

*김란사(하란사) (金蘭史, 1872.9.1.-1919.4.10.)

김란사 지사는 유관순 열사의 이화학당 스승으로 일본 동경의 경응의숙(慶應義塾)과 미국 오하이오주 웨슬렌대학에서 공부하여 문학사(Aritium Magister)를 딴 대한제국 최초의 여성이다. … 1919년 초 파리강화회의에 참석하기 위하여 의친왕(義親王)의 밀칙을 받아서 북경으로 건너갔으나 그만 그곳에서 47살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김란사 지사의 급서(急逝)에는 독살설이 있다. 김란사 지사는 남편 하상기의 성을 따라 하란사로 부르기도 했다. 1995년 애족장 추서.

 

 

 

비바리의 함성을 이끈 ‘부덕량’

 

비바리 거친

숨비소리 참아내며

건져 올린 꿈

 

산산이 박살 낸 자들

더는 두고 볼 수 없어

 

스물여덟 꽃다운 목숨과 바꾼

세화리 장터의

피맺힌 탐라의 절규

 

뉘라서 알랴?

그 투혼 광복의 꽃으로 피어난 것을!

 

*비바리: 바다에서 해산물을 따는 일을 하는 처녀

** 숨비소리: 해녀들이 작업하다 물 위로 고개를 내밀고 ‘호오이’ 하며 길게 내쉬는 숨소리

*부덕량 (夫德良, 1911.11.5.-1939.10.4.)

부덕량 지사는 해녀로 1932년, 제주도 구좌면에서 제주도해녀조합의 부당한 침탈행위를 규탄하는 시위운동을 주도하였다. 이들은 또한 일경이 제주도 출신 독립운동가들을 잡아들이려 하는 것을 몸으로 맞서 저지하는 등 독립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며 이 일로 잡혀들어가 고문 후유증으로 28살의 꽃다운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2005년 건국포장 추서.

 

 

 

아직도 서간도 바람으로 흩날리는 들꽃 ‘허 은’

 

대대로 내려오던 큰 종택

임청각 안주인

고래 등 같은 집 뒤로하고

만주 땅 전전하며 독립군 뒷바라지

스무 해 성상이었어라

 

뺴앗긴 나라 되찾기 전

조선 땅에 유골조차 들이지 말라며

숨져간 석주 할아버님

낯설고 물선 땅에 묻고 돌아설 때

두런거리던 밤하늘의 별들조차 시리던 그 밤

 

밤이 가고 아침이 되면

얼어붙던 가슴 녹여 줄

찬란한 태양이 뜨리라며

한시도 잊지 않은 조국 광복의 꿈

실타래 엮듯 서리서리 품어와

풀으리라던 다짐 다시 꼬였네

 

밥 먹듯 드나들던 형무소 고문으로 숨져간 남편

장사치를 돈도 없이

올망졸망 일곱 남매 데리고

남의 집 문간방 떠돌던 반백의 시간이여

 

애달픈 운명의 사슬 속에 엉켜버린 삶

그러나 누울지언정 꺾이지 않고

서간도 모진 바람 견뎌온 임은

노오란 한 송이 들꽃이었어라.

 

*허은 (許銀, 1907.1.3. - 1997.5.19.)

허은 지사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초대 국무령(대통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의 손자며느리이자, 한말 의병장이던 왕산(旺山) 허위 집안의 손녀이다. … 허은 지사는 밀려드는 독립군들의 뒷바라지로 허리 한번 펴지 못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아직도 내 귀엔 서간도 바람소리가》라는 책으로 써서 만주지역에서의 독립운동사를 자세히 밝혔다. 2018년 애족장 추서.

 

 

저자가 쓴 진혼시는 누군가의 아내로, 딸로, 엄마로, 또는 한 개인으로 독립을 위해 스러져 간 백 명의 넋을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이 위로한다. 각 인물의 행적을 한 편의 시로 그려내고, 인물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덧붙여 독립운동가를 잘 모르는 이라도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독립을 위해 헌신하고도 남성독립운동가들에게 가려 뒷줄에 서 있었던, 그래서 더욱 쓸쓸했던 여성독립운동가들이 이제는 앞으로 걸어 나온다.

그렇다. 그들도, 당당한 1열이었다. 모두가 주인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