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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강 길을 걷다 만난 '이효석 기념비'

평창강 따라 걷기 6-2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오면서 가양이 길가에 피어있는 고들빼기와 씀바귀의 차이점에 대해서 알기 쉽게 설명을 했다. 가양은 대학 교수가 되기 전에 한국교육개발원 과학교육연구실에서 근무하였다. 가양은 초.중.고 과학교과서를 여러 권 만들었기 때문에 식물의 종류와 특성에 대해서 많이 알았다. 고들빼기와 씀바귀는 대표적인 봄나물이다. 두 식물의 같은 점은 꽃잎이 작고 여러 갈래로 갈라지고 노란색이라는 점이다. 차이점은 고들빼기는 꽃 중앙의 꽃술이 노란색인데, 씀바귀는 꽃술이 검은 색이다. 잎으로도 구별할 수 있다. 고들빼기는 잎이 줄기를 빙 둘러 감싸는데, 씀바귀는 잎이 줄기를 감싸지 않는다.

 

 

출발점으로 돌아온 후에 (구)평창교를 건너갔다. 이제 우리는 강의 오른쪽 둑방길을 걸었다. 기온은 서서히 오르고 있었다. 그래도 덥지는 않고, 걷기에 상쾌한 봄날씨다. 걷기 시작한지 1시간 이상이 지나서 점심을 먹을 시간이다. 나는 전에 가본 냉면집으로 일행을 안내했다. 12시 30분에 냉면집에 도착하였다. 냉면을 주문하면 숯불에 구운 불고기가 서비스로 나온다. 가성비가 매우 높은 점심을 먹고 모두들 좋아했다.

 

식사 후에 커피를 마시러 중앙감리교회 1층에 있는 엘림카페까지 걸어갔다. 평창읍은 크지 않기 때문에 걷더라도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걸어가는 도중에 재래시장 남쪽 길가에 있는 가산 이효석 선생의 졸업기념비를 구경하였다.

 


2011년에 평창 주민들이 올림픽시장 입구에 가산의 평창초등학교 제6회 졸업기념비를 세웠다. 가산은 1914년 평창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하여 1920년 졸업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가산은 평창읍에서 하숙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평창군에서는 그가 살았던 하숙집을 복원하려고 했으나, 보상 문제로 협상이 안 되고 결국 집은 헐리고 말았다고 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런데 이효석 부인의 이름이 이경원인데 졸업기념비에는 이원경이라고 잘못 새겨져 있다. 사소한 실수이지만 수정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이경원이라는 이름을 기억하는 것은 내 기억력이 특별히 좋아서가 아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최초로 가슴 설레며 만났던 한 살 연상의 첫사랑 여인 이름이 이경원이었다. 나로서는 잊을 수가 없는 이름이다. 그녀는 가버렸지만 이름만은 아직도 기억 속에 남아있다.

 

 

시장 입구 기념비에서 멀지 않은 곳에 평창초등학교가 있다. 나는 며칠 전에 사전 답사차 왔을 때 평창초등학교 교정에 있는 이효석 선생 흉상과 기념탑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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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2012년에 평창초등학교 동문회 주관으로 교정에 가산의 흉상과 기념탑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평창초등학교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동문들의 뜻을 모아 진행한 사업이다. 기념탑에는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 중에서 널리 알려진 구절이 새겨져 있다.

 

“달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모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믓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한국 소설에 나오는 문장 중 가장 아름답다고 평가받는 이 구절은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에 국어 교과서에 나와 있었다. 요즘에도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이 구절이 나온다고 한다. 이 구절은 또한 한컴타자연습에서 예문으로 나오기 때문에 이 구절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기념탑의 검은 돌에 새겨진 이 구절에 오자가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소설 작품에는 “달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검은 돌에 새겨진 글씨는 “길은 지금 긴 산 허리에 걸려 있다”라고 ‘달’이 ‘길’로 바뀌었다. 내가 일부러 꼬투리를 잡는 것이 아니다. 돌에 새겨진 구절을 읽는 순간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원작을 찾아보니 그렇게 되어 있다. 사소한 실수라고 그냥 넘기지 말고, 수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평창군 관계자의 선처를 기대한다.

 

 

1967년에 <메밀꽃 필 무렵> 소설을 약간 각색하여 흑백영화가 만들어졌다. 출연 배우들이 모두 왕년의 명배우들이다. 박노식(허생원), 김희갑(조선달, 장돌뱅이), 허장강(윤봉운, 장돌뱅이), 김지미(분이, 성서방네 처녀로서 소설에서는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이순재(동이, 젊은 장돌뱅이) 등이 출연했다. 이 흑백영화는 매년 9월 첫째 주에 열리는 메밀꽃축제 기간 중에 이효석문학관에서 밤에 틀어준다. 필자는 왕년의 유명 배우들이 출연하는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본 경험이 있다.

 

 

최근에 고등학교 선생님으로부터 <메밀꽃 필 무렵> 소설에 대해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에 실린 이 소설은 시험에서 단골 문제로 나온다. 내가 오래 전에 기억하기로는 이 소설의 주제는 ‘애욕의 신비성’이었다. 그런데 어떤 학생이 쓴 답이 기발하게도 ‘친자 확인’이었다고 한다. 요즘 고등학생들은 매우 창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들은 이효석 졸업기념비를 본 후에 서쪽으로 이동하여 엘림이라는 카페에 들렀다. 이 카페는 교회 건물 1층에 자리 잡고 있는데, 실내 공간도 널찍하고 커피값이 3000원으로서 다른 카페보다 싸다. 카페를 운영하는 주인장 부부는 금당계곡에 있는 페르마타 펜션의 주인이다. 평창강 제2구간 답사기에 페르마타 펜션 이야기가 나온다. 제2구간 답사 후에 나는 페르마타 펜션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이 부부는 낮에만 카페를 운영하고 저녁에는 펜션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우리는 각자 입맛에 맞는 차를 주문하였다. 나는 나이가 들면서 신맛이 좋아져서 유자차를 시켰다. 때는 봄날 오후이다. 야외 정원을 바라보면서 차를 마시니 상쾌하기 그지없다. 나뭇가지에서는 연두색 잎이 돋아나 예쁜 옷처럼 나무를 치장하고 있다. 진달래는 이미 지고, 이제 철쭉이 피었다. 평창군의 군화(郡花)가 철쭉이어서 그런지 사방에 철쭉꽃이 화려하게 피었다.

 

우리가 출발하려고 하자 주인장이 나에게 오더니 바쁘지 않으면 노래를 2곡 라이브로 불러주겠다고 제안한다. 원래는 매일 2시에 공연을 하는데, 우리를 위해 공연을 앞당기겠다는 친절한 제안이었다. 감사합니다!

 

남편은 기타를 치고, 부인은 노래를 불렀다. 나는 음악에는 매우 무딘 사람인데, 여인의 노래 소리가 설탕처럼 감미로웠다. 이처럼 아름다운 목소리는 처음 듣는다. 남편의 기타 반주에 맞추어 여인은 행복한 표정으로 노래를 불렀다. 심금을 울린다. 우리 일행 중에 한 사람이 앙콜곡을 신청하였다. 카페 여주인은 ‘난 널’이라는 노래를 불렀다. 처음 듣는 노래이지만 쉽게 박자를 맞출 수 있는 노래였다. 나는 몸을 가볍게 움직이며 4분의 4박자를 맞추었다. 짧았지만 정말로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우리는 주인장에게 노래 잘 들었다고, 고맙다고, 인사하고서 2시 10분에 카페를 떠났다. 31번 구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강을 따라 내려갔다. 31번 국도는 원래 강을 따라가며 구불구불한데, 몇 년 전에 31번 도로를 이동시켰다. 터널을 뚫고 고가도로를 만들어서 도로를 직선화하였다. 남아있는 구도로는 자동차가 많이 다니지 않아서 답사객이 걷기에는 매우 안전하고 편안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