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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한국의 정악, 세계 가장 표출적이고 자유스러운 음악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550]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계면조는 우조(羽調), 또는 평조(平調)에 대칭되는 개념으로 슬픈 느낌이 들게 하는 음조직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영산회상은 시김새, 형식, 장단, 기보체계, 변천과정, 향제 줄풍류의 전승현황, 풍류명인과 전승계보, 풍류문화 등을 다양하게 살펴야 이론적 연구를 위한 자료로서의 보고(寶庫)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하였다.

 

이번 주에는 영산회상을 위시하여 정악의 매력이 어떤 점인가? 하는 이야기를 해 보기로 한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미국의 작곡가 알렌 호바네스,(Alan Hovhness)는 일찌기 한국을 방문한 바 있는데, 당시 영산회상을 비롯한 정악(正樂)과 가곡(歌曲) 등, 한국 정악의 아름다운 선율을 듣고, 그 소감을 이렇게 피력하였다고 한다.

 

“한국의 정악곡을 감상하고 있노라면 누구나 그 선율의 아름다움에 매료되기 마련이다. 그윽하고도 유장한 젓대 독주의 <상령산>이나 영롱한 단소 독주의 <세령산> 가락을 듣거나, 혹은 여러 악기가 엎치락뒤치락 어우러져 가며 장려하게 엮어가는 합주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우리는 어느덧 선율의 매혹에 홀려 이내 현실을 잊고 끝없는 환상의 피안(彼岸)에 몰입하기 마련인 것이다. 그야말로 자유분방하면서도 신비스러운 선율은 음악의 다른 요소들을 가릴 정도로 뚜렷하게 표면에 두드러지어 그 빛을 발하고 있다. 정악은 아름다운 음색을 가지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표출적이고 숭엄하며 자유스러운 음악이다. 그 가락의 자유로움과 신비감에 있어서 그 종류를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은 영(靈)의 음악이다.”

 

알렌 호바네스는 다른 음악에서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자유스러움과 신비감이 우뚝한 음악이 한국의 정악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영산회상의 유려한 선율은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감정의 절제를 이상으로 삼고 있는 차원 높은 음악이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미국의 작곡가 루 해리슨(Lou Harrison)은 1960년대 중반, 국립국악원에 와서 한국음악을 폭넓게 공부한 사람이다. 특히 그는 나의 은사, 김태섭 명인에게 피리를 열심히 배웠는데, 더운 여름, 에어컨도 없는 방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연습하는 모습은 보는 이에게 감동을 주고도 남았다.

 

재미있는 일화 하나를 소개한다.

 

열심히 지도해 주시던 선생께서 간혹 피칠 못할 사정으로 외부행사나 지방 공연에 참가, 수업이 이루어지지 못할 때는 내가 대신 연습을 도와주었다. 그가 당시 국립국악원에 와서 국악기들을 배웠지만, 특히 피리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 것은 합주음악의 주선율을 이끌고 있는 피리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한번은 선생님이 2주가량, 공무출장 중이어서 내가 대신하여 가르칠 기회가 있었다.

 

나는 그가 외국인이고 해서 우리가 쓰는 정간(井間)악보보다는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마음에서 그가 잘 알고 있는 5선 악보 위에 밤늦도록 악곡을 역보하여 주었다.

 

그러나 5선 악보를 대하는 순간 나의 호의는 안중에도 없이,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짓는 것이 아닌가! 마치 나에게 “왜 그런 무모한 일을 했는가?” 하는 표정으로 말이다. 나는 그가 외국인이고 해서 전통 기보방법인 정간보는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에 따라 5선 악보로 역보해 준 것이었는데, 나의 배려와는 달리, 그의 반응은 냉담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나에게 “한국의 전통음악은 한국의 전통적인 악보를 통해 제대로 배우고 싶다”라는 뜻을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이었다. 나의 배려는 헛수고였고, 그의 깊은 뜻을 미처 파악하지 못한 것이 후회로 남게 된 것이다. 6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도 그때의 일, 그가 의아해하던 모습은 잊히지 않는다.

 

 

그 뒤, 미국으로 되돌아간 그는 국립국악원이 위촉한 합주곡, “새당악 무궁화”라는 곡을 정간악보로 작곡하여 보내왔다. 외국인이 정간보로 창작 국악곡을 작곡했다는 사실 앞에 우리는 모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곧바로 국립국악원의 젊은 연주원들이 그 곡을 녹음했는데, 첫 부분은 피리의 독주로 시작하는 것이었다.

 

녹음을 위해 작품을 연습하며 지휘하던 당시 김기수 선생은 “악곡의 처음 시작 부분이 참으로 인상적이다.”라는 촌평을 남겼던 기억이 새롭다. 선율이 곧 음악의 형식이며 악곡의 생명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데, 서양의 음악적 실험이 동양을 애호하지 않는 한, 그 음악적인 만족은 서양이 아니라 동양에 있고, 그 가운데서도 한국에 있다고 평가해 주던 루 해리슨(Lou Harrison)의 말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