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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산과 제주 비자림숲

아버지의 마지막 여행 9

[우리문화신문=김동하 작가]  산을 좋아하시던 아버지를 모시고 한라산을 한번 올라가 보려 했으나, 그건 아무래도 무모한 일이다 싶어, <비자림 숲>으로 모시고 갔다.

 

그러나 이번 제주도 여행은 첫날부터 가을비가 마치 스토커처럼 따라다녔다. <비자림 숲>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는 얼른 비옷을 샀다. 아버지에게 비옷을 씌워 드리고, 행여나 추우실까 싶어 큰 우산을 아버지 머리에 씌우며 천천히 걸었다.

 

나는 제주에 올 때면 자주 비자림 숲길을 찾곤 하지만 그렇게 비를 맞으며 걷기는 처음이었다. 그래도 꽤나 많은 사람이 숲길 어귀부터 붐비고 있었다.

 

 

아버지는 칠순이 넘으시면서 통풍을 앓기 시작하셨다. 그리고 너무 다니지 않으셔서 그런지 다리근육이 너무 약해져 있으셨다. 숲 길가에 바위라도 보일라치면 자꾸만 앉아 쉬기를 반복하셨고,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후~ 하며 긴 한숨을 쉬셨고, 그런 당신의 노쇠함을 보며 옆에 있던 나는 그 숲길이 어느 때보다도 더 길고 힘들게만 느껴졌다.

 

아버지는 내 나이 다섯 살쯤 됐을 때부터 나를 데리고 등산을 자주 다니셨다. 아버지 친구들 몇 분과 함께하는 등산모임이 있었는데, 대구, 경북권 산은 물론이거니와, 전국에 유명하다는 산은 다 오르셨다고 하셨다. 그래도 한라산은 한 번도 안 오셨다고 했다. 비행기를 탄다는 일이 그 당시에는 정말 특권층이나 누리는 호사라는 생각들을 하셨나 보다.

 

한 번은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무렵이었던 것 같은데, 아버지랑 대구에 있는 팔공산을 넘어 아버지의 고향마을까지 가 보기로 하고, 이른 아침부터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날도 산꼭대기에 올랐을 때,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하더니, 산을 넘어갈 무렵에는 정말이지 목욕탕에서 해바라기 샤워하는 것처럼 빗줄기가 무척 거세게 내렸다.

 

길은 미끄럽고, 몸은 으슬으슬 춥고.... 어디고 들어가서 불이라도 지펴 몸을 말리고 싶었지만, 그 산에는 동굴도 하나 없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언제 비를 피할 수 있냐고 물었고, 아버지는 조금만, 조금만 하시며 계속 길을 재촉하셨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 산길은 아버지가 아홉 살 때, 넘어지며, 자빠지며 나뭇짐을 지고 내려오던 산길이라고 하셨다. 당신이 아홉 살이던 어느 날. 해는 저물어가고 비는 내리고, 나뭇짐은 천근, 만근 무거워 자꾸만 자빠지기 일쑤였는데, 산을 거의 내려갈 무렵 한 조그마한 암자에서 비를 피하셨다고 한다. 그리 크지 않은 나한상 들이 오백여 개나 법당 가득 모셔놓은 <거조암>이라는 이름의 암자였다는데 사람들은 <오백나한 절>이라 불렀단다.

 

 

그 옛날 당신이 비를 피하셨던 그 조그마한 암자로 우리는 비를 피해 들어갔다. 내 나이 열 살 때 일이었다. 그래도 나는, 그 차가운 빗속에서 내 아버지처럼 혼자 있지는 않았다.

 

비 내리고 있는 <비자림> 숲길은 물안개가 뿌옇게 끼인 제법 운치 있는 숲길이었다. 못 맞을 정도로 비가 내리지는 않았지만, 나무와 숲에 남다른 안목이 있는 아버지는 힘들어하시면서도 숲길을 걸어가시던 내내 표정은 밝아 보이셨다.

 

천 년 넘은 비자나무 고목을 보시면서 무척 감동에 겨워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비자림> 숲 중간쯤, 아마도 수돗물이나 지하수로 추정되는 음수대가 있었는데, 아버지는 마치 천연 약수라도 되는 양, 무척 조심스레 바가지로 물을 담아 마시셨다.

 

내 기억에, 그 때 그 물맛은 그저 그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