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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금서 《금오신화》와 군사정권 시절 금지곡

[정운복의 아침시평 96]

 

[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우리나라 첫 금서는 《금오신화(金鰲新話)》입니다.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을 못마땅하게 여긴 김시습은 생육신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그의 법호인 설잠(雪岑)은 ‘눈 덮인 봉우리’로서 외로운 방랑의 삶을 의미하고

또 다른 호인 청한자(淸寒子)는 맑고도 추운 사내,

벽산청은(碧山淸隱)은 푸른 산에 맑게 숨어 산다,

췌세옹(贅世翁)은 세상에 혹 덩어리일 뿐인 늙은이라는 뜻이어서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금오신화》는 왜 금서가 되었을까요?

거기에 실린 5편의 단편소설 가운데 〈남염부주지〉에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정직하고 사심 없는 사람이 아니면 이 땅의 임금 노릇을 할 수 없다.”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폭력으로써 백성을 위협해서는 안 된다."

"덕망 없는 사람이 왕위에 올라서는 안 된다.”

 

모두 세조를 두고 비판한 내용이라고 여겨지기에 금서로 된 것이지요.

 

원주에 가면 치악산 자락에 운곡(耘谷) 원천석의 무덤이 있습니다.

태종 이방원의 스승이었던 원천석은 이성계의 편에 서지 않고

멸망해버린 고려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태종이 친히 치악산 자락까지 와서 출사를 권했지만 만나주지도 않은 그였지요.

 

그는 고려 신하의 시각으로 역사책을 저술합니다.

그리고 궤 속에 넣어 밀봉하고 열어 보지 말 것을 유언하지요.

후손이 그 책을 읽어보고 멸문지화를 당할 것을 염려하여

모두 불태워버렸다고 합니다.

 

스스로 역사책을 쓰고 금서를 자청하였는데

지금 그 책이 전해진다면 동전의 뒷면과 같은

역사의 단면을 볼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첫 한문 소설인 《금오신화》도 금서였지만

첫 한글 소설인 홍길동전도 금서였습니다.

이데올로기에 반하는 책이나 민심을 선동하는 책의

유통과 읽기를 금지했기 때문이지요.

 

군사정권 시절엔 금지곡도 많았지요.

‘동백 아가씨’는 음색에 왜색이 짙다는 이유로

‘왜 불러’는 반말을 이유로

‘아침이슬’은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

그것이 북한을 연상시킨다는 까닭으로

‘거짓말이야’는 노래 제목이 불신 풍조를 조장한다는 이유로

‘그건 너’라는 노래는

가사가 남에게 책임을 전가한다는 내용이라는 것을 이유로

‘물 좀 주소’는 가사 내용이 물고문을 연상시킨다는 까닭으로

금지곡이 되었습니다.

 

지나간 세월의 금지라는 것이 우습기도 하지만

문학이나 가요를 통치 수단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서민들의 즐거움과 알권리를 제한했다는 것이 안타까움으로 남네요.

 

그래도 해는 뜨고 아침은 옵니다.

역사를 제대로 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중요한 까닭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