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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이우환의 성공과 백범의 소망

프랑스에 내년 4월 개인미술관 ’이우환 아를‘ 개관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27]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1984년 3월 2일 김포를 떠나 프랑스 파리로 가는 대한항공. 1등석에는 이주일, 조용필 씨가 타고 있었다. 프랑스 정부 초청으로 문화훈장을 받으러 가는 중이었다. 3등석에는 필자가 있었다. 우리 텔레비전 역사상 최초로 나라 밖에서 활동하는 우리 예술가를 취재하기 위한 것이었다. 4일 후 파리 시내 에릭 파브레 화랑, 이우환 씨의 파리초대전이 개막되었다. 필자는 이 전시회를 이렇게 서울에 소개했다.​

 

“이우환 씨의 작품은 자연석과 거대한 철판을 배열하는 특이한 작품입니다. 에릭 파브레의 넓은 전시장에 놓은 작품들은 모두 5개로서, 각각 형태와 놓는 방법이 달라지면서 돌과 철판과의 직감적인 관계가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이우환 씨가 파리에서 알려지게 된 것은 1971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제17회 파리청년비엔날레. 이 씨는 넓은 유리판 위에 큰 자연석을 올려놓았는데, 유리는 깨져 사방으로 금이 가 있는 상태였다. 이 작품이 당시 상당히 큰 반향을 일으켜 이를 계기로 이우환은 유럽과 미국 미술계에 주목을 받게 된다. 필자는 1984년의 초대전 취재와 함께 암스텔담, 베를린 등 여러 나라에서 소장 전시하고 있는 이우환 씨의 작품과 일본 가마쿠라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의 작업현장 취재 등을 엮어서 1984년 8월에 KBS-1TV에서 한 시간짜리 다큐멘터리로 이우환의 ‘만남의 예술’을 방영했다.

 

1984년은 백남준 씨가 기획한 국제위성 예술제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1월 초에 방송되어 절찬과 충격을 준 해였는데 KBS에서는 이를 계기로 이우환, 홍신자 등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정상급 예술인들을 조명하는 프로그램을 잇달이 제작, 방송해 우리 문화예술계에 큰 자극을 주었다.​

 

이우환 씨는 그 뒤 꾸준한 작품활동으로 1996년부터 1997년까지 프랑스 에꼴 데 보자르의 객원교수와 초빙교수를 지냈고, 2000년 유네스코 미술상, 2007년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 백남준 씨 별세(2006년) 뒤 5년 만인 2011년에는 마침내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함으로써 백남준을 이은 세계적 예술가로서의 입지를 다진다. 일본, 프랑스를 넘어 미국에서까지 인정받았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한때 위작 문제가 일어났지만 2013년에는 대한민국의 문화예술 발전에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아 대한민국 금관문화훈장을 수상했다.

 

 

이우환 씨가 이번에는 남프랑스 아를에서 전시회를 열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19세기에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가 머물면서 300여 점의 작품을 그린 곳으로 유명한 이 도시의 오래된 로마인 공동묘지 ‘알리스 캉’에서 ‘레퀴엠(Requiem)'이라는 이름으로 전시회를 열었다는 것이다. 그의 작품의 개념처럼 자연과 인간, 인간과 역사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전시회이다. 아를이라는 도시 고대 유적들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40돌을 기념해서 열리는 것이란다.

 

내년 3월까지 열리는 전시회에 이어 4월부터는 이우환 재단이 이 도시의 오래된 건물을 개조해 만드는 개인미술관 ’이우환 아를‘이 개관돼 일반에 공개된다. 그렇게 되면 이우환 씨는 일본 나오시마와 부산에 이어 세 번째로 프랑스에 상설 전시장을 열게 되는 것이고, 그의 활동 근거지인 일본을 빼면 세계에서 한국인의 이름으로 상설 전시관이 세워지는 첫 사례가 될 것이다.​

 

그것은 그만큼 이우환 씨의 예술활동이 프랑스에서 높이 인정을 받았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 아를의 전시관 개막을 앞두고 프랑스 관광청이 미리부터 이를 알리고 선전을 한 데서도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이우환 씨는 본인의 작업을 하면서 우리나라의 화가들이 추구하는 모노크롬 예술을 소개하고 지원하는 역할도 맡았다. 그런 것들이 쌓이면서 우리 화가들의 모노크롬은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사조로 외국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모노크롬의 대표작가인 박서보 씨가 올해 금관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1980년대 초 우리나라가 컬러텔레비전 방송을 시작한 것은, 맥루언이 명쾌하게 지적한 것처럼, 단순히 텔레비전이란 매체의 확장만이 아니라 우리 국민 전체의 인식과 체험의 확장이었다. 그 이후 우리 사회는 다채로운 컬러화면의 효과처럼 문화와 예술이 크게 바뀌고 다양하고 다채롭게 발전했다. 1984년 백남준 프로그램이 음악과 미술, 영상의 종합잔치로서 새로운 영역을 알려준 것이 정말로 나비효과였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그것이 현재의 전 세계 한류 붐으로 연결되었다고 하면 지나친 말일까? 최근 미국 뉴욕 한복판에 전광판을 캔버스 삼아 가상과 실재를 넘나드는 미디어아트로 세계 도심에 초현실적 풍경을 심고 있는 사람도 한국인 청년이다.​

 

이러한 상황을 되돌아보면 지금도 우리 방송이 허구한 날 사회의 허접한 현상이나 정쟁을 보도하고, 자고 나면 먹고 마시고 농담으로 지새는 것을 경쟁적으로 방송하는 것이 얼마나 우리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지를 우리가 다시 인식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지 않겠는가? 사회의 거울이라는 신문방송이 어떤 거울을 비추어 우리의 얼굴을 맑게 해줄지에 대한 고민이 더 심각하게 있어야 하는 까닭일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백범 김구의 문화강국론을 한 번 더 상기해본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부는 우리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힘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도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