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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호랑이’, 범접 어렵지만 친근하고, 세련된

한국국학진흥원,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2월호를 펴내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은 “임인년(壬寅年) 특집: 호랑이 기운 솟아나라!”라는 주제로 스토리테마파크 웹진 담(談) 2월호를 펴냈다. 2년간 지속되어온 팬데믹으로 온 국민이 지쳐있는 이때, 과거 조선시대도 궁궐에서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맞이한 기쁨을 기리며, 재앙을 막아주는 호랑이 그림을 하사하기도 했다. 이번 호는 2022년 설을 맞아 굳센 호랑이의 기운을 듬뿍 담은 희망과 상생의 메시지를 전하여 국민의 마음을 위로하고자 한다.

 

선인들이 생각했던 호랑이의 다양한 이미지부터 실생활에서 겪었던 호환(虎患)의 무서움과 착호군(捉虎軍), 은혜를 갚고 효자를 돕는 설화 속의 호랑이, 호작도(虎鵲圖)나 벽사(辟邪)의 의미를 지닌 부적 같은 그림 속의 호랑이까지 여러 가지 호랑이의 모습을 담았다.

 

삼재부적도 되었다가 깜찍ㆍ멍청한 반전 매력까지

재해석된 호랑이가 태어나다

 

노정연 교수의 <인간이 만들어 낸 한국 호랑이>는 전통 민화 속에 호랑이가 지니는 의미를 재해석한다. ‘훌륭한 우리의 전통 재해석’ 프로젝트로 명명하여 호랑이를 소재로 그린 작품을 전시하기도 하였다. 인간이 만든 진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가짜인 호랑이 세 마리와 매, 까치, 토끼, 소나무 등이 함께 그려져 완성되었다. 해당 작품들을 창작하기 위해 선조들의 그림과 이야기들을 분석한 결과 호랑이는 매, 까치, 토끼와 배경에 소나무와 대나무가 그려진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작품 속에서 호랑이의 자세에 따라 입호(立虎), 좌호(坐虎), 복호(伏虎)로 나누었고, 산에서 내려오는 모습은 출산호(出山虎)로 분류하였다.

 

먼저, 호랑이와 매가 함께 그려진 선조들의 그림은 하늘의 왕인 매와 땅을 지배하는 호랑이가 함께 그려진 그림은 그 강한 기운이 배가 되어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삼재를 완벽 차단하려는 의도로 ‘벽사용 삼재부적’으로서 다수가 소장할 수 있는 판화로 제작되었다.

 

다음으로 호랑이와 까치가 그려진 그림과 출산호를 주목하였는데, ‘희보작호도(喜報鵲虎圖)’라 하여 하늘의 좋은 소식을 가져다주는 까치와 장수를 상징하는 소나무와 함께 친숙한 얼굴의 호랑이가 길상적인 의미를 그려진 것이 많다.

 

마지막으로 호랑이가 토끼와 함께 그려진 작품으로는 우스꽝스러운 얼굴로 곰방대를 들고 토끼들과 함께 있는 벽화의 경우, 힘센 호랑이가 토끼를 잡아먹으려 하자 토끼가 꾀를 내어 골탕 먹이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호랑이가 사냥할 수 없는 비 오는 날, 동굴에서 담배 피우는 이야기를 그린 벽화였다. 현대적 재해석 사례들도 함께 살펴보았는데 제시카 세갈(Jessica Segall)의 ‘(낯선) 친밀함((un)common intimacy)’라는 비디오 작품과 라이브 드로잉 작가 김정기의 ‘해님 달님’, 에르메스(Hermes)를 비롯하여 구찌(Gucci), 페라가모(Ferragamo) 등의 상징적인 호랑이 스카프 디자인 등에서 영감을 얻었다.

 

노 교수는 선조들이 남긴 호랑이의 이미지를 기반으로 기계화, 자본주의화 된 현대 사회의 이면성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이야기화하고자 하였다. 선조들의 것과 다르게, 현재는 한국 호랑이가 멸종되었기에 실제 호랑이가 아닌 창작 작품 안에서의 호랑이는 ‘인간이 만들어낸 한국 호랑이’라고 명명하였다.

 

 

호랑이가 무섭긴 하지만, 호랑이 잡는 착호군 먹여 살리기도 못지않다

 

이문영 작가는 <정생의 착호일기>에서 아내의 심부름을 다녀오는 길에 고갯마루의 숲에서 호랑이를 만난 정생의 이야기를 펼친다.

 

설을 맞아 아이의 창의와 전복, 복건을 조 과부에게 부탁해두었는데 찾아오는 것을 잊었다며 받아와 달라는 부탁을 듣고 길을 나선 정생은 짧아진 겨울 해로 인해 조 과부네에 도착했을 땐 깜깜한 밤이었다. 조 과부가 옷을 내어주며 한참 되돌아가야 하는 정생에게 산군(호랑이)이 나타나니 멀어도 돌아가라는 당부와 함께 먼 길을 가야 하니 가면서 요기를 하라고 나무 찬합에 담긴 명태전을 함께 쥐여주었다. 예전에 조과부가 보낸 생선전을 먹다가 가시에 걸려 고생을 했던 정생은 탐탁지 않았지만 받아 들고 집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올 때 고갯길을 넘어서 왔는데 아무 이상한 것이 없었지만 귀찮음이 무서움을 이기고 말았다. 그러나 고갯마루에 도달하기 전부터 심장이 사정없이 뛰기 시작했고 엄동설한에 식은땀이 흘렀다. 고갯마루 옆 숲속에서 불을 뿜는 화등잔만한 눈을 보고만 정생은 겁에 질려 손에 쥐고 있던 명태전을 길옆 숲속에 냅다 던졌다. 통할까 싶었으나 그 화등잔은 명태전 던진 쪽으로 스르르 돌아가더니 사라져 버렸다.

 

달음박질쳐서 집으로 돌아온 정생은 날이 밝자마자 어제 되돌아오던 길에서 만난 배진구네에 찾아가 개호주(호랑이)를 봤는지 묻자 배진구는 못 봤다며 착호군(호랑이를 잡는 군대)을 부르게 관아에 소를 올리자고 한다. 정생이 착호군이 동원되면 동반되는 그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 등 귀찮은 일들을 열거하자, 배진구는 우리끼리 수색을 해보자고 제안한다. 하인들을 끌고 고갯길로 올라 명태전을 던진 곳에서 발견된 것은 새끼 여우의 시체였다. 명태전의 가시에 걸려 죽고 만 것이다. 깔깔 웃는 배진구를 남겨두고 관청에 알리지 않아 다행이라고 여기며 정생은 얼굴이 빨개져서 어젯밤보다 더 빠르게 고개를 내려갔다.

 

다스리며 함께 공존해왔던 존재 일본에 의해 씨가 마르다

 

시나리오 작가 홍윤정은 <미디어로 본 역사 이야기-범 내려온다>에서 국악퓨전밴드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 가사를 인용하여 한국인의 정체성을 정의한다. 범접하기 어려우리만치 세 보이면서도 친근하고, 촌스러운 듯하나 세련되고, 침묵 속에 많은 말을 담고 있다고.

 

영화 <관상(2013)>에서 ‘역적의 상’인 수양대군이 ‘호랑이 상’인 김종서를 ‘호랑이 사냥’이라 명명하고 제거한다. 역사 속에서도 김종서는 세종대왕의 명에 따라 4군6진을 개척하고 문무를 겸비한 ‘호랑이 대감’으로 거론되었던 인물이다. 영화 속에서 수양대군은 그를 제거하기 전 호랑이를 사냥해 김종서 집 대문에 걸어둠으로 경고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를 사냥감처럼 무참히 죽였다. 김종서처럼 뛰어난 인물을 ‘호랑이’라 칭한 것에서 볼 수 있듯 우리 민족은 호랑이를 단순히 금수를 넘어 신적 존재로 바라보았다.

 

 

영화 <대호(2015)>에서는 열도에서 볼 수 없는 호랑이를 잡는다는 것은 일본인에게는 대륙정복의 상징이었다. 그리하여 조선총독부는 해수구제(害獸驅除,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동물을 잡는다)’ 정책을 시행해 조선 땅에서 대대적인 호랑이 사냥에 나섰고, 1940년대에 이르자 결국 멸종 위기에 다다른다. 조선에 남은 마지막 호랑이 대호를 잡으려 일본이 고용한 착호갑사 만덕은 대호로 인해 아들을 잃고, 대호는 만덕에 의해 어미를 잃은 악연으로 얽혀있지만 둘은 천하를 호령하다 일본인들에게 간신히 숨만 붙어있는 같은 신세이다. 절체절명의 마지막 순간, 대호도 만덕도 서로를 더는 해치지 않고, 함께 절벽 끝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자의적인 죽음을 맞는다. 이 순간 그들은 일본이 감히 훼손할 수 없는 조선과 조선인 그 자체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2021)>에서는 궁궐에 호랑이가 출몰한다. 실제 정조가 궁에 나타난 호랑이를 잡았다는 기록은 없으나, 드라마 속에서 정조는 후원에서 자신을 호위하는 익위사들과 함께 화살로 호랑이를 잡는다. 정조는 기록상 호랑이 사냥에 매우 열중하였으나, 씨를 말리거나 사람들의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호랑이를 무리하게 잡고자 하지 않았다. 호랑이는 다스려야 하는 존재인 동시에, 결국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서은경 작가의 <호랑이똥>에서는 호랑이는 털부터 분비물까지 안 쓰이는 게 없다.’라는 말로 시작하여 만병통치약 호랑이연고’, ‘호경골’, 액을 막기 위해 신부 가마를 덮는 호피’, 농작물을 지키기 위한 호랑이똥까지 호랑이의 여러 쓰임새를 웹툰으로 담았다. 두려운 만큼 초자역적 존재로 신비감이 컸던 호랑이는 옛날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인기 많은 영물이었다.

 

<나무판에 새긴 이름, 편액>에서는 아버지에게 효성을 다하여 호랑이까지 감동을 준 도시복의 야계정(也溪亭)을 소개한다. 경상북도 예천군 효자면의 야계정은 부모님을 정성껏 섬겼던 도시복(都始復, 1817~1891)의 호를 따서 지어진 정자로, 생가와 함께 효공원에 있다. ‘솔개가 날라준 고기’, ‘한겨울에 때아닌 수박’, ‘호랑이를 타고 온 홍시’, ‘실개천에서 잡은 잉어등의 효행이 전해질 정도로 효심이 깊었다. 예천군에서는 상리면(上里面)이란 마을의 명칭을 도시복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효자면(孝子面)으로 변경하고 효공원을 조성하였다.

 

<스토리이슈>에서는 한국국학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의 특별전시인 <식산, 은거의 삶을 말하다>를 소개한다. 연안이씨 식산문중이 기탁한 자료를 선별하여 전시하는 이번 자리는 2022626일까지 유교문화박물관 4층 기획전시실에서 관람할 수 있다. 식산문중은 조선을 대표하는 명문 연안이씨의 영남 입향조인 조선 후기의 거유(巨儒) 식산 이만부(李萬敷, 1664~1732) 선생으로부터 시작하였고, 그는 혼란스러웠던 17세기 후학 양성에 힘을 쏟았다. 뛰어난 후학들은 이만부 선생의 널리 공부하고 세밀하게 검증하는 공부법을 계승하였고 다양한 분야에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자연 속에서 휴식하듯이, 편안히 숨 쉬듯 이를 표방했던 식산문중의 학문과 예술 세계를 함께 느낄 수 있다.

 

이번 호 웹진 편집장을 맡은 공병훈 교수는 지금은 한해의 농가를 위해 부지런하게 준비하는 시기이며, 지난가을에 논밭에 떨어진 알갱이들을 먹으려고 기러기들이 긴 여행의 휴식을 취하며 또다시 긴 여행을 준비하는 시기라고 전하며 아직 한겨울 같지만, 산과 들에서 느껴지는 봄바람의 소식이 어서 오길 바란다는 소감을 밝혔다.

 

한국국학진흥원에서 2011년부터 운영하는 스토리테마파크(http://story.ugyonet)에는 기록 자료를 문화예술 기획 · 창작자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조선시대 일기류 250권을 기반으로 한 6,710건의 창작 소재가 구축되어 있으며, 검색 서비스를 지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