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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약집성방》 펴내고 조선초 의학 정립시킨 노중례

[‘세종의 길’ 함께 걷기 90]

[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학교 명예교수]  세종 시대의 인물을 살피고 있는데 조선 초기의 의학을 정립시킨 사람으로 노중례(盧重禮, 또는 盧仲禮, 미상~1452)가 있다. 그는 평민 출신으로 출생 연대는 전해지지 않으나 뛰어난 의료 활동과 한의학 서적 등을 펴냈다. 문종 2년(1452) 3월에 죽었다.

 

조선전기 의관으로 그의 깊은 학식과 뛰어난 의술을 높이 평가받는다. 그의 간략한 생애를 보자.

 

생애 및 활동사항

 

∙세종 5년(1423) : 3월에 김정해(金正亥) 등과 함께 명나라에 가서 우리나라 산 약재 62종 가운데 중국산과 같지 않은 것을 비교 연구하여 약효의 적부를 감별하게 하였다.

 

∙세종 9년(1427 ~1428) : 이때부터 뛰어난 의술로 인하여 세종 초기부터 전의감(典醫監, 조선 때, 왕실의 의약을 맡던 관아)에서 일하였다. 그 사이에 우리나라 약재들의 성미와 효능, 그리고 다른 나라 약재들을 대비 고찰하는 연구 사업을 진행하였다.

 

∙세종 12년(1430): 명나라에 가서 우리나라 소산 약초들의 진가를 태의원(太醫院) 의사(醫士) 주영중(周永中) 등과 판별, 조사하여 약초로 쓸 수 있는지를 확인한 것이 20종에 달하였다.

 

∙세종 13년(1431) : 12월에 중국과 조선의 약재비교를 통해 유효통(兪孝通)ㆍ박윤덕(朴允德)과 같이 약용식물학 서적인 《향약채취월령(鄕藥採取月令)》 1권을 펴냈다.

 

∙세종 15년(1433) : 2년여에 걸쳐 의학 백과전서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의방류취(醫方類聚)》 총 감수(監修)하여 365권에 달하는 많은 양의 책 펴냄을 도왔다. 이후 다시 의방(醫方)을 수집, 편찬하게 하여 세종 27년(1445)에 끝냈다. 또한 우리나라 3대 옛 의학서의 하나인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 85권을 박윤덕 등과 함께 펴내는 데 참여하였다.

 

∙세종 16년 (1434년) : 3월에는 판전의감사(判典醫監事)로서 《태산요록(胎産要錄)》 상ㆍ하 2권을 펴냈는데, 상권은 주로 포태(胞胎) 교양의 법을 논하고, 하권은 영아의 보호술을 기술하였다.

 

∙세종 27년(1445) : 10월에 《의방유취(醫方類聚)》를 펴낼 때 첨지중추원사로서 감수의 일을 맡았다.

 

∙문종 2년(1452) 3월 상호군(上護軍)으로 봉직하다가 죽었다.

 

∙세조 1년(1456) 12월에 세조좌익원종공신일등(世祖佐翼原從功臣一等)과 첨지중추(僉知中樞)로 추서되었다.

 

조선 초기의 내의였던 노중례는 《향약채취월령》과 《향약집성방》을 편집하는 한편 《태산요록(胎産要錄)》을 편성하고 《의방유취》의 감수를 맡는 등 한의학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물이다.

 

《향약집성방』(鄕藥集成方)》

 

세종 15년(1433)에 펴낸 향약에 관한 의약서로 활자본이다. 세종 13년(1431) 가을에 집현전 직제학(정4품) 유효통(兪孝通), 전의감정 노중례(盧重禮) 등에게 명하여 1년여에 걸친 작업 끝에 세종 15년 6월에 완성하였다. 권수ㆍ책수 85권 30책에 활자본이다.

 

 

이 책은 정종 1년(1399) 제생원에서 간행한 《향약제생집성방 鄕藥濟生集成方》 30권의 구증(舊症)과 구방을 기본으로 하여 다시 향약의 모든 방문들을 수집하고, 또는 널리 방서들을 빠짐없이 모아서 분류, 첨가하여 만든 것이다.

 

구증이 388이던 것이 959로, 구방이 2,803이던 것이 1만706이 되었으며, 그 밖에 침구법(鍼灸法) 1,416조, 향약본초 및 포제법(炮製法) 등을 합하여 85권으로 되었다. 펴내게 하였다. 그 뒤 성종 9년(1478))에 복간되고, 인조 11년(1633)에 훈련도감 소활자로 중인되었다.

 

향약이란 중국산의 약을 당재(唐材)라고 부르는 데 대한 우리나라 향토에서 생산되는 약재의 총칭이다. 그런데 세종은 우리나라 사람의 질병을 치료하는 데에는 우리나라 풍토에 적합하고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약재가 더 효과적일 것이라는 병과 약에 대한 의토성(宜土性)을 강조하여 의약 제민(濟民)에 대한 자주적 방책을 세우고자 향약방을 종합 수집해 《향약집성방》을 편집하게 한 것이다. 먼저 향약과 당재를 비교, 연구하고 각 도 각 읍에서 생산되는 향약의 실태를 조사하게 하고, 그 사람 다음 《향약채취월령(鄕藥採取月令》을 반포하도록 하였다.

 

향약과 당재와의 비교 연구의 몇 예

 

향약의 이용을 권장하기 위해서는 향약과 당약과의 약효를 비교, 검토한 뒤 그 약성의 차이를 감별하기 위해 세종 3년(1421) 약리에 정통한 황자후(黃子厚)를 부사로서 명나라에 보내 우리나라에서 생산되지 않는 당재들을 널리 구해오게 하였다.

 

다시 세종 5년(1423)에 대호군 김을해(金乙亥), 사재부정 노중례 등을 명나라에 보내 향약과 당재의 약성을 비교, 연구하게 하였다.

 

① 약성에 따라 대용: 당재들도 때에 따라서는 우리나라 산으로 대용할 수도 있었다.

 

② 향약의 분포실태조사:세종 6년(1424)에 각 도의 지리지 및 월령(月令)을 편찬하기 위하여 각 도 각 읍에서 산출되는 토산품을 조사하면서, 약재를 토산공품(土産貢品)ㆍ생산약재ㆍ종양약재(種養藥材) 등으로 나누어 분포실태를 조사하였다.

 

③ 《향약채취월령》의 간행:향약의 채취에 적합한 월령들을 배치하였는데, 수백 종이 넘는 토산약초의 아래에 향명을 낱낱이 기록하고, 그 다음에는 약미, 약성 또는 봄·가을 채취의 조만(早晩), 음양·건폭(乾暴)의 호부(好否:좋고 나쁨) 등을 자세히 교정하였다. 채약정부(採藥丁夫)들이 알기 쉽게 향약을 채취할 수 있도록 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으리라 믿어진다.

 

이때는 《팔도지리지》가 거의 완성되었으므로 이 월령의 편집과 함께 각 도 각 읍에서 쉽게 약초를 채취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이상의 작업이 모두 끝난 뒤인 세종 13년(1431) 가을 《향약집성방》을 편집하기 시작하여 2년이 지난 세종 15년 6월에 완성을 보게 되었다.

 

이 책은 모든 질병을 57대강문(大綱門)으로 나누어 그 아래 959조의 소목을 나누고, 각 강문과 조목에 해당하는 병론과 방약들을 출전(出典)과 함께 낱낱이 열거하였다. 그 내용에서는 내과와 돌림병ㆍ외과ㆍ이비인후과ㆍ안과ㆍ산부인과ㆍ소아과 그리고 치과 등에 이르는 임상 각 과가 거의 망라되어 있어, 종합된 의방서로서 넓은 범위에 걸쳐 자세히 논증되어 있다. 그리고 이 책의 인용 서목은 한ㆍ당ㆍ송ㆍ원의 방서가 160여 종이나 거론된다.

 

책 이름을 특히 《향약》이라 하고 그 내용에서도 고려 후반기부터 민간 노인들이 사용해 오던 향약방을 많이 채집한 데서 우리 고유 의학의 전통을 중국에서 수입한 한의방과 융합시켜 우리 의학의 독자적 전통을 찾아보려고 노력해 온 자취를 넉넉히 엿볼 수 있다.

 

더불어 국내 생산 향약을 당재와 비교ㆍ연구하고, 또는 각 읍에 분포된 향약의 채취를 시기에 적절하게 하는 《향약채취월령》을 펴냄으로써 우리 의약적 지식은 학술적 체계를 가지게 되었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향약의 아래에 고유의 향명을 붙이게 한 것은 우리 고전언어의 연구에도 중요한 값어치를 지니게 하고 있다. (참고: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향약채취월령》의 우리말 약재 이름 예

 

《향약채취월령》은 세종 13년(1431)에 왕명으로 유효통(兪孝通)ㆍ노중례(盧重禮)ㆍ박윤덕(朴允德) 등이 펴낸 의약서다. 이 책은 민간에서 월별로 채취하여야 할 약재의 이름을 목록화한 것이므로, 한어의 약재 이름과 함께 그에 해당하는 우리의 향명을 차자(借字)로 기록하여 민간인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게 하였다. 이 향명은 훈민정음 창제 직전의 우리 말이므로 국어의 발달사를 살피는 데도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 책은 134종의 한어 약재명에 대하여 향명표기를 보여주고 있다.(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우리말을 모르는 일본인이 전사한 것이기 때문에 전사과정에서의 잘못도 여럿 나타난다.)

 

升古体伊(→升古休伊·도고말이), 這里居(→這里君·자리군) 등이 그러한 예들이다. 차자표기법은 《향약구급방》의 그것과 차이가 없다. (향약채취월령, 한국학중앙연구원)

 

세종 때 조선의 의학에 공헌한 노중례는 특히 중국의 약초에 상응하는 우리 산하의 약초를 찾아 대용케 하는 주체적 의학을 개척하는데 공헌한 의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