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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5월의 작은 깨달음

믿음, 이웃과 우리를 생각하며 함께 웃을 수 있는 것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148]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당신 불교도입니까?” 이런 질문은 다소 좀 그렇고, “당신도 불자지요?” 이렇게 물으면 “네 그렇습니다만”이라고는 답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에서 무슨 교도니 아니니 하고 상대방에게 물어보는 것 자체가 거북스러운 것은, “무슨 무슨 교도”라는 말에 굳이 종교를 구분하고 누구의 신앙이니 아니니 하고 따지려는 생각이 깔려있다는 느낌 때문이리라.

 

그저 신앙이라는 말, 믿음이라는 말도 그렇지만, 종교라는 것은, 불교건 기독교건(개신교이건 카톨릭이건), 그저 죽자 살자 매달리는 무슨 이념이 아니라, 있는 듯 없는 듯하면서도 마음에 평안을 주는 그런 역할을 하는, 일상의 공기, 혹은 목이 마를 때의 시원한 물이 아닐까? 그런 마음으로 종교마다 축일이나 기념일이 되면 그 종교의 영역으로 들어가게 되고 거기서 그러한 평안을 받게 되는 것이리라.

 

 

이달 5월에는 8일이 부처님 오신 날이고 또 부모의 은혜를 생각하는 날이었다. 이렇게 딱 겹친 것은, 지금까지 몇십 년 삶을 살아오면서 처음 만난 것 같다. 그것이 뭐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라기보다도, 그만큼 드문 일이었다고 하겠는데, 부모님 은혜를 생각하는 일과는 별도로 그즈음에 나는 우연히 경기도 남양주에 있는 한 절에 갈 기회가 있었다. 그 절은 절의 주요건물을 알리는 편액에 한자로 된 표현 대신에 우리 말로 푼 이름을 쓰는 것으로 유명한 곳이어서 가보고 싶었던 곳이다.

 

 

절 입구의 첫 문, 흔히 일주문(一柱門)이라고 하는 문에도 한글로 절 이름이 쓰여있고, 절에서 가장 높은 부처를 모시는 핵심공간인 속칭 대웅전도 큰 법당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리고 주요 전각의 주련(柱聯), 곧 기둥에 써서 거는 깨우침의 글귀도 우리 말, 한글로 쓰여 있었다.

 

과연 이 절의 주지스님인 운허(耘虛. 1892~1980)는 일제강점기에는 항일독립운동에 투신했고 광복 이후엔 한문으로 된 어려운 불교경전을 한글로 뒤치는데 일생 헌신하신 것으로 유명한데, 1970년에 대웅전을 중건하면서 불경 한글화의 취지를 살려 대웅전 대신 큰법당이라 이름 지어 붙인 그 뜻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구나. 그리고 큰 법당의 기둥 마다에 걸려 있는 주련도 우리 말이다.​

 

‘온 누리 티끌 세어서 알고

큰 바다물을 모두 마시고

허공을 재고 바람 얽어도

부처님 공덕 다 말 못 하고’...,​

 

이렇게 한글로 써놓으니 한자를 모르고 한문은 더욱 모르는 일반인 누구나 부처의 가르침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하게 된다. 큰 법당을 돌아가면서 곧 부처님 오신 날이라고 등이 걸리고 있었다.​

 

그렇게 이 절에서 전각, 탑, 부처, 종 등을 편안한 기분으로 하나하나 보아가던 중에, 돌로 된 조각이 하나 서 있는데. 그게 눈에 좀 설었다. 언뜻 머리를 보니 관을 쓴 것 같은데 얼굴은 전통적인 부처나 보살 형태가 아니고 예쁘고 착한 소녀 같고, 몸도 날씬하게 올라가 있다. 왼손엔 병을 들고 있고 오른손은 무언가 수인(手印)처럼 손을 올리고 있다. 머리엔 산 모양의 관을 쓰고 있는데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내려와 있으니 절 밖의 사람 같다. 그래도 절 안에 있으니까 아무래도 부처나 보살일 텐데 이건 무엇인가? 왜 여기 이런 조각이 있을까?

 

 

조각가 이름이 붙여져 있다. 최종태 씨다. 아, 그렇구나. 한참 전에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도 이분의 작품이 들어와 입구에 서 있다고 화제가 된 적이 있지. 그게 그러니까 그렇다면 절에 있으니까 관음보살상이라 하겠구나. 알려지기로는 성북동 대원각을 운영해 온 김영한 보살이 그곳을 절로 시주하게 해달라고 법정스님에게 간청하고, 이에 법정 스님이 그 청을 받아들여 새로이 길상사라는 절로 다시 태어났는데, 이때 법정 스님은 전국 성당에 성모마리아 상을 많이 조각한 최종태 교수를 찾아가 새 절에 걸맞은 보살상을 모시자고 했다지 않는가?

 

 

가톨릭 신자여서 성모상을 많이 조각했지만, 평소 국보 반가사유상을 좋아했던 최 교수가 이에 성모의 마음을 담은 관음보살상을 만들어 2000년에 길상사에 모셨다는 이야기는 들은 바 있다. 그런데 여기 봉선사에서 그 성모상을 닮은 보살상을 다시 보는구나. 이 봉선사 보살은 2017년에 모신 것이라니 한 5년 전의 일인데, 처음 절에 오니 이제야 알겠구나.​

 

그런데 길상사 한 군데만 있었을 때는 몰랐는데 이곳에도 이 성모의 얼굴과 마음을 담은 보살상이 서 있음으로써 이제 한국 불교는 성모상을 받아들인 것이 되고, 또 최종태 교수의 관음상을 절에 세우는 데 대해 천주교 쪽에서 거부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도 천주교가 불교와 만나는 것을 용인한다는 뜻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길상사의 관음상은 속칭 ‘마리아보살상’이라고 한단다. 성모마리아의 얼굴과 마음을 담은 관음보살이란 뜻일 터이다. 그런 마리아보살이 봉선사에도 서 있고, 또 다른 절에서도 이런 보살상을 세울 터전이 된 셈이다.​

 

조각가 최종태(1932~ ) 교수는 가톨릭 신자로서 특히 토착화된 가톨릭 성상(聖像) 조각의 세계를 개척한 예술가로 평가받고 있다. 다시 말해 한국적인 양식의 성상 조각을 창안하고 기독교 미술을 새롭게 재해석했다는 뜻이다. 서양의 종교미술을 한국적으로 재해석했다는 것은 굉장한 파격이고 혁신적인 실험이지만, 최 교수의 작품은 성당을 넘어 우리 주위 여러 곳에 세워지고 있다. 어찌 보면 종교의 영역을 세상으로 넓힌 것이다.

 

그런 최 교수의 작품 형성에 불상의 조형세계가 영향을 주었다는 분석이 있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연구자들은 최 교수가 이미 1965년부터 불교의 금동반가사유상과 같이 인체를 단순화하고 훤칠한 리듬감을 주는 표현양식에서 영감을 많이 받아 그의 조각에서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고 순수한 본질만을 남기는 작업으로 집중했다고 분석한다. 특히나 국보 제83호로 알려진 ‘삼산관(세 개의 산 모양의 관) 금동반가사유상’에서 한국조각의 전형을 보고 그것을 자신의 조각에 체현하려 했다는 설명을 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불상이나 천주교의 성상을, 사람들의 기도를 받아내는, 그래서 소원을 성취시켜주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진정한 기도란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 성상의 주인공, 그것이 석가모니이든 예수이든 혹은 성모 마리아나 관음보살이든 그분들을 향한 것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다. 나를 위한 기도가 아니라 그분들의 마음과 뜻을 받는 기도를 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곧 내가 그분들을 목적으로 삼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그분들처럼 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면, 불상이건 성상이건 신앙의 대상은 그 목적이나 방법이 통한다고 하겠다.​

 

불교미술 연구가인 주수완 교수는 이 작품에서 굳이 성모상과 관음상을 결합하고자 인위적으로 의도한 부분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분석한다. 어쩌면 태생부터 성모 마리아와 관음보살은 서로 닮을 수밖에 없음을 작가가 분명히 꿰뚫어 본 덕분이라는 것이다. 이 두 성인의 역할은 중생과 절대자를 매개해주는 역할이어서, 때로는 우리와 함께 고민하고 슬퍼해 줄 수 있으며, 때로는 우리가 세속적인 소원을 말해도 그 소원이 속되다 혼내지 않고 들어주시거나 혹은 최소한 들어주는 척이라도 해주시는 분들이라고 말해준다.

 

우리가 어리석어도 그 어리석음을 예수께, 아미타여래께 마치 우리의 변호사처럼 변호해주고 그럼에도 우리를 잘 돌봐 달라고 우리 편에 서서 말씀해주는 그런 분들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역사적으로 강한 모성애의 이미지였고, 그래서 성모는 예수의 어머니이자 모든 가톨릭 신자들의 어머니였다. 그리고 관음보살 역시 그런 어머니의 이미지로서 여성적인 인상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았음을 우리는 본다. 그렇게 가톨릭의 성모마리아가 절의 관음보살 형상으로 찾아온 것임을 느끼고 알게 되니 세상이 더 넓어진 느낌이다.

 

 

 

사실 이곳으로 들어오면서 본, 정원에 서 있던 돌조각들이 마음을 기쁘게 하고 있었다. 돌로 만든 호랑이들이다. 이들이 다 웃고 있다. 조각 작품 제목이 '해피 타이거'란다. 엄마 등 위에 올라탄 새끼 호랑이는 좋아서 입을 다물지 못한다. 지난해 이맘때 전시회를 통해 공개된 오채현 조각가의 작품들이라는데 함께 서 있는 부처, 보살상도 다 엄격한 격식을 벗어나 소탈하고 웃음을 머금은 자태여서 마음이 더욱 편안해진다.

 

종교라는 것, 믿음이라는 것이 결국은 나를 넘어서서 이웃과 우리를 생각하며 함께 웃을 수 있는 세상을 위해 같이 길을 가는 과정이라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고 [부처님 오신 날]이 있는 이 5월을 보내면서 말씀드리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