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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가지 않고, 조금씩 익어가는 노년이길

평창강 따라 걷기 14-1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답사 날짜> 2021년 11월 4일 목요일

<답사 참가자> 이상훈, 박인기, 오종실, 우명길, 이규석, 원영환, 최돈형, 홍종배, 모두 8명

<답사기 작성일> 2021년 11월 6일 토요일

 

평창강 제14구간은 영월읍 하송리 오솔길에서 출발하여 영월읍 덕포리 드론전용비행시험장에 이르는 4.3km 이다.

 

 

이번 구간은 거리가 짧아서 걷는 데 두 시간이 채 안 걸릴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답사 뒤 종점에서 약 24km 떨어진 김삿갓문학관을 방문하기로 계획을 세웠다.
 

 

우리는 낮 1시에 하송리 오솔길 끝에 있는 ‘야생동물 피해 예방시설’ 앞에서 출발하였다. 철조망이 처져 있는 이 시설은 아마도 유기견들을 보관하는 시설처럼 보였다. 하송리(下松里)라는 지명의 유래는 영월전매서와 경찰서 부근의 송정개(큰 소나무 숲) 밑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보인다. 동ㆍ서강이 합치는 지역이므로 대장개, 돌석개 같은 큰 갯벌이 있었으며 아기 장수가 태어났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는 곳이다.

 

 

이날 날씨는 전형적인 가을 날씨였다. 기온은 걷기에 적당하여 쌀쌀하지도 않고 덥지도 않았다. 가을 햇살이 약간 따사롭게 느껴졌다. 하늘은 전체가 푸른색이었다. 두 주 전 목요일(10월 21일)에 13구간을 걸을 때는 절기상으로는 가을이었지만 나뭇잎은 색깔이 변하지 않고 녹색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두 주 만에 나뭇잎 색깔이 완전히 바뀌었다.

 

녹색은 사라지고 활엽수의 갈색이 온산을 물들였다. 소나무, 잣나무 등 침엽수가 있는 곳은 푸른빛이 남아있다. 조림용으로 많이 심은 메타세콰이어는 잎이 뾰족하여 침엽수처럼 보인다. 그러나 메타세콰이어는 상록수가 아니고 잎이 갈색으로 변하여 떨어지는 낙엽수다. 뾰족한 잎이 메타세콰이어와 비슷한 낙엽송도 낙엽수다.

 

봄은 꽃이 아름다운 계절이다. 분홍색 진달래를 시작으로 하여 노란 개나리와 산수유 그리고 진홍색 철쭉이 여기저기에 물감을 뿌려놓는다. 새잎이 일제히 돋아날 때면 온 산이 연두색으로 물든다. 이에 견줘 가을은 잎이 아름다운 계절이다. 노란 은행나무 잎, 붉은 단풍나무 잎이 여기저기에 물감을 뿌려놓는다. 황갈색 참나무 잎과 메타세콰이어 잎이 온 산을 화려하게 물들인다.

 

꽃이 아름다운 봄은 청춘의 계절이다. 이에 견줘 단풍이 아름다운 가을은 노년의 계절이다. 가을 단풍을 바라보는 노인은 조금은 쓸쓸해 보인다. 단풍처럼 곱게 늙어야 하는데... 노사연의 노래 <바램>에 나오는 가사처럼,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가는” 노년을 맞이하고 싶다.

 

조금씩 익어간다면 향내가 날 수도 있을 것이다. 곱게 익어가는 노인이라면 청춘만큼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아름다울 수 있다. 추하게 늙어가지 않고 곱게 익어가는 노년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어렵기도 하고 쉽기도 하다. 노욕(老慾)을 버린다면 노년은 청춘 못지않게 아름다울 수 있을 것이다. 세상사 모두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시멘트로 포장된 산길을 따라 조금 내려오자 북쪽으로 청령포 소나무숲의 위쪽 부분이 보였다. 평창강이 보이지는 않지만 굵은 소나무들이 울창한 것을 보면 그곳이 청령포임을 짐작할 수 있다.

 

 

조금 더 내려오자 평창강이 보인다. 강 건너편으로 경사가 급한 산이 보인다. 절벽은 아니지만, 경사도는 거의 80도 이상이 될 것 같다. 청령포의 서쪽을 이루는 이 산을 걸어서 통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등산 장비 없이는 오를 수 없는 절벽으로 이루어진 이 산을 육육봉이라고 부른다. 지도로 확인해 보니 가장 높은 봉우리의 고도가 360m다. 봉평 우리 집의 고도 550m와 비교해보면 매우 낮은 산이다. 왜 이렇게 고도가 낮을까? 강물이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쉽게 설명이 된다. 평창강이 평창군의 북쪽에 있는 백옥포리에서 시작하여 평창읍을 지나 영월읍으로 흘러왔으므로 당연히 영월군의 고도가 낮을 것이다.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오자 오른쪽에서 흐르는 평창강 위로 고가철도가 보인다. 이 철도는 태백선으로서 제천시 제천역에서 태백시 백산역까지 104km를 잇는 산업철도다. 태백선을 통하여 시멘트, 광석, 무연탄 등등을 운반한다.

 

 

좁은 길을 따라 조금 더 내려가니 오른쪽에 독특한 집이 나타난다. 집의 한쪽 벽에 커다란 그림이 그려져 있다. 모두 궁금하여 가까이 가 보았다. 집의 외벽에 커다란 소나무와 강을 그려놓았다.

 

 

마침 주인장이 나타나서 물어보니 본인이 화가인데 벽에 그림을 직접 그렸다고 한다. 남한강 상류를 그렸다고 한다. 나지막한 돌담 위에는 항아리와 정원 등을 예술적으로 배치해 놓았다. 뒤뜰에 있는 커다란 나무가 가을 빛깔을 잘 나타낸다.

 

 

가양의 제안으로 주인장에게 부탁하여 이번 답사에 참가하는 8명의 단체사진을 찍었다.

 

 

산길을 조금 더 내려가자 오른쪽에 낡은 역사(驛舍)가 나타난다. 역사 앞에는 복선 철로가 있다. 청령포역이라고 간판은 붙어 있으나 역의 문은 굳게 잠겨있다. 사람이 드나드는 것 같지가 않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태백선에는 모두 22개의 역이 있다. 그 가운데서 여객을 취급하는 역은 제천역, 쌍룡역, 영월역, 예미역, 민둥산역, 사북역, 고한역, 추전역, 태백역 등 9개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화물전용역이거나 신호장역(信號場驛)이다. 신호장(信號場)이란 철도역의 한 종류로서 열차의 교행과 대피만을 위해 설치한 역이다. 단선 구간에서는 정거장과 정거장 사이에서 열차 교행을 위해 대피선과 신호기를 설치하였다. 복선 선로에서는 느린 화물열차를 대피시킨 뒤에 여객열차를 먼저 보내주는 용도로 쓰인다. 신호장을 설치하면 선로용량이 증가하는 효과가 있으며 열차 운행 횟수를 늘릴 수가 있다.

 

신호장역에서는 여객이나 화물을 취급하지 않기 때문에 플랫폼도 없고 승하차도 안 된다. 전국적으로 30개의 신호장역이 있는데, 청령포역은 1978년에 신호장역으로 설치되었다. 1995년에 역무원이 배치된 유인신호장으로 운영하다가 2005년에 역무원이 철수하면서 다시 무인신호장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이틀 전에 이날의 코스를 사전답사했기 때문에 청령포역이 여객을 취급하지 않는 신호장역임을 알고 있었다. 내가 신호장역을 설명하면서 기차가 서지 않는 역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옆에서 듣던 석영이 ‘그러니까 발기부전역이네’라고 즉각 토를 달았다. 모두 크게 웃었다. 석영은 국문과 교수 출신이어서 그런지 언어를 통한 유머 감각이 뛰어나다. 어느 집단에서나 환영받을 수 있는 인물이 석영이다.

 

한적한 좁은 길이 끝나면서 왼쪽으로 세경대학교가 나타난다.

 

 

세경대학교는 1994년에 개교한 사립 전문대학이다. 예전에는 2년제 전문대학은 대학교라는 호칭을 쓰지 않고 00전문대학이라고 말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00대학교라는 명칭을 허용하였다. 그러면서 전문대학 학장이 총장이라는 호칭으로 격상되었다. 호칭 부풀리기라고 볼 수 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세경대학교는 2019년 현재 재학생은 1,047명이고 교원의 수는 29명이다.

 

요즘 전국적으로 대학 신입생이 줄어들어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세경대학교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2021년 9월 영월군 인구수는 38,012명이다. 영월 인구는 전월(8월) 대비 43명이 감소했다. 시골 인구 38,000명 가운데서 매년 대학 신입생 500명을 선발할 수 있을까?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면 이웃인 평창군이나 정선군에서 대학생을 모집할 수 있을까? 그것도 가능할 것 같지 않다.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다. 영월 사람들이 들으면 서운하겠지만, 내 생각으로는 폐교가 답이다. 애초에 시골에 대학을 인가해 준 교육부가 잘못한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