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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고슴도치가 해산하는 가을이다

유가형, <알밤>
[우리문화신문과 함께 하는 시마을 104]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알  밤

 

                                               - 유가형

 

   공기가 꼬들꼬들 마르니

   고추잠자리 군무에 가을하늘

   노을이 빨갛게 군불 지핀다.

   고슴도치들이 밤나무에 주저리 주저리

   떨어질듯 무겁게 붙어있고

   지금 고슴도치의 해산 준비로 분주하다

   하얗게 자궁문이 열리나 보다

   호동그렇게 놀란 감나무 수백 개의

   등불이 일제히 켜졌다

   임박한가 보다

   외마디 소리에 나는 눈을 짝 감았다

   툭! 툭! 일란성 세쌍둥이다!

   바닥에 검붉은 가을빛이 쏟아진다

   저 해산의 황홀함이라니...

 

 

 

 

“어디선가 밤꽃 향기가 물씬 난다. / 강렬한 생명의 냄새 / 나도 모르게 불쑥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났다“ 한 시인은 밤꽃의 향기를 이렇게 노래한다. 6월이 되면 벌들을 유혹하는 밤꽃의 향기가 물씬 나고 그 향기는 생명의 향기란다. 그런데 그 향기에 견주면 그 열매는 그 어떤 동물도 쉽게 범할 수 없다. 밤송이는 날카로운 가시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과실이 오히려 달콤한 향기를 풍기며 동물들을 유혹하는 것과는 다르다. 그것은 다른 과실들은 그 안에 씨앗을 품고 있어서 동물들이 먹고 뱉은 씨앗이 자신의 또 다른 과실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밤은 달콤한 향기도 나지 않을뿐더러 심지어 송이에 가시가 잔뜩 달려있어 동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도록 만든다. 멋도 모르고 집어 들었을 때는 가시에 찔려 상처를 입을 수 있고, 설령 가시로 싸인 밤송이를 벗겼다고 해도 또 다른 단단한 껍질을 쉽게 벗길 수가 없다. 그 까닭은 대부분 열매처럼 과육 속에 씨앗이 있지 않고 밤은 그 자체가 씨앗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밤은 동물들이 그 단단한 껍질을 벗겨내고 과육을 먹는 것을 원치 않기에 그렇게 단단한 보호막을 만들어 둔 것이다.

 

여기 유가형 시인은 그의 시 <알밤>에서 이런 상황들을 맛깔스럽게 표현한다. ”지금 고슴도치의 해산 준비로 분주하다 / 하얗게 자궁문이 열리나 보다“라고 말이다. 가시 달린 밤송이를 고슴도치로 보고 그 밤송이가 벌어지는 것을 해산한다고 묘사한다. ”툭! 툭! 일란성 세쌍둥이다!“ 밤송이에 밤이 한꺼번에 3개나 들어있다. 그 옆에 이 모습을 지켜보던 감나무는 호동그렇게 놀라 수백 개의 등불을 일제히 켰단다. 시인은 그러면서 ”바닥에 검붉은 가을빛이 쏟아진다“라고 외친다. 이제 고슴도치가 해산하는 가을이다.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김영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