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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동주 시 완역한 우에노 시인의 새 시집

10년만에 출간한 '후단자쿠라(不断桜)'
맛있는 일본이야기 663

[우리문화신문= 이윤옥 기자] 그 꽃을 어디서 보았을까? 아주 오래전의 일로 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 어느 작고 아담한 암자의 뜨락이었던 것 같다. 한 겨울에 눈송이처럼 마른 벚나무 가지에 피어있던 연분홍이라기보다 흰색에 가깝던 그 연약한 꽃을 나는 어쩌다 핀 ‘겨울벚꽃’ 쯤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꽃에 이름이 있었다. 후단자쿠라(不断桜)! 얼마 전, 일본의 중견 시인이 보내온 시집 제목이《不断桜, 일본 발음은 후단자쿠라, 이하 ‘不断桜’》였다. 우리말로 한다면 ‘겨울벚꽃’ 쯤으로 번역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쓴 일본의 중견 시인 우에노 미야코(上野 都, 75) 씨는 윤동주의《空と風と星と詩(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도쿄 콜삭사에서 펴내(2015년 7월) 한국에도 꽤 알려진 시인이다.

 

 

“후단자쿠라(不断桜)는 11월부터 4월까지 피는 벚꽃입니다. 원래 벚꽃은 봄에 피는 것이지만 후단자쿠라는 늦가을부터 봄을 맞이하기까지 피는 꽃이라 더욱 마음이 끌려서 책 제목을 그렇게 지었지요. 이번에 낸 시집은 약 10년 만에 낸 책입니다. 약간 망설임이 있었지만 나이도 있어서 어쩌면 이것이 마지막 시집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그동안 틈틈이 써둔 내용을 엮은 것입니다. 내 자신의 일생을 시 속에 녹여 놓은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시집을 받고 인사차 나눈 전화 통화에서 우에노 미야코 시인은 그렇게 시집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에노 미야코 시인은 이 세상의 다양한 사물과 현상에 대해 놀라움을 끊임없이 묻고 있는 시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후단자쿠라(不断桜)가 추운 계절에 피는 것처럼 어쩌면 추운 겨울과도 같은 이 시대를 사는 우리들에게 그의 시는 우리를 격려해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 스즈키 히사오(鈴木 比佐雄), 시인, 평론가-

 

《不断桜》는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노래하는 사람(歌う人)에는 14수의 시가 담겨 있으며, 제2부 흰 무지개 (白虹)에는 15수가, 이어 제3부 세월의 무상(歳月つれづれ, 일본어의 츠레즈레(つれづれ)는 1.골똘히 생각에 잠기는 것 2.할 일이 없어 어쩐지 쓸쓸한 모양 3.곰곰이 4.골똘히 등의 뜻이라서 무상으로 번역함)에는 모두 10편의 시와 수필로 이뤄져 있다.

 

시집《不断桜》에 실려 있는 39편의 시는 사실 그다지 많은 량은 아니다. 일본어로 쓰였다고는 해도 집중하면 하루 이틀이면 모두 읽어내려 갈 수 있는 분량이지만 나는 우에노 미야코 시집을 오래도록 손에서 놓지 못했다. 왜? 시가 내포(內包)하고 함유(含有)하고 있는 내용이 많고 크고 헤아릴 수 없이 넓기 때문이다.

 

해가 떠오르면 작렬하는 피 냄새 / 악취가 별빛 가슴에 찔린다 / 푸른 바다 밖에 길은 없다 / 그것도 귀환이 이뤄지지 않는 / 긴 뱃길 끝 / 극한의 전장(戰場) / 그 한 곳 동부 뉴기니아 / 14만 참전 병사에 / 단지 1할이 안 되는 생환자 / 그 군대의 소모율 90% 이상이라고 한다. (가운데 줄임) 소모품은 연필, 종이, 비누 따위 (뒤 줄임) -소모율(消耗率), 가운데서-

 

젊고 앞길이 창창한 병사들이 동부 뉴기니아에 투입되었다. 일제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2년, 뉴기니섬(현재 파푸아뉴기니)을 침공하여 이 지역을 점령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오스트레일리아와 미국의 연합군이 맞서 승리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양측 모두 20만 명 가량 전사했다. 특히 이 전쟁에 내몰린 군인 가운데는 조선인 병사들이 많았는데 이 가운데에서도 지원병은 징병보다 장기 종군을 하면서 가장 가혹한 전선(前線)으로 보내졌다고 한다.

 

그들 대부분은 조선군에 배속되었는데, 조선군 예하 보병연대의 주력부대는 전황이 일층 가혹해지고 있던 1943년 이후로 동부 뉴기니아 전선이나 필리핀 전선으로 전출되어 패전 때까지 계속 머물렀으며 유기화(劉琦華) 등은 조선군 제78연대에 소속되어 1943년, 뉴기니아 전선에 보내졌으며 뉴기니아 전선에서 제78연대 병사의 생존률은 9%에 불과하였다고 한다. - 전장으로의 강제동원: 조선인 지원병이 경험한 아시아 태평양 전쟁, 안자코유카(Anzako¸ Yuka), 역사학연구(구 전남사학), 81권, 2021 -

 

전쟁은 어떤 경우든 참혹하다. 그 참혹한 남의나라 전쟁 놀음에 조선인 병사들이 투입되었다는 점, 살아서 귀환하는 자가 10%에도 못 미쳤다는 점, 마치 연필이나 지우개와 같이 소모품으로 취급당해야했던 병사들의 원한에 사무친 절규를 시인은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시가 더 가슴을 친다.

 

(앞 줄임) 고향을 향하는 먼 배 그림자를 / 언제까지나 추적한다 / 돌아오지 않는 세월에 짓밟혀 / 어느 사이엔가 숫자가 되어 버린 아버지와 형 / 올해도 여자들의 통한이 / 흰 산호의 뼈를 씻는다 / 이제 보낼 수 없으니 / 돌아오라 / 그리고 이 뜨거운 가슴에 / 얼굴을 묻어달라고.  -소모율(消耗率), 가운데서-

 

한편, 시집《不断桜》에는 우에노 미야코 시인 자신이 번역한 윤동주의 시 ‘길’과 ‘돌아와 보는 밤’ 전문이 실려 있으며 이에 대한 답가(踏歌, 일본어로는 返歌)를 별도로 지어 영원한 청년 윤동주와의 살가운 대화를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잃어버렸습니다. /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 길에 나아갑니다. /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 내가 사는 것은 다만, /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윤동주 ‘길’-

 

(앞줄임) 올려다 본 하늘/새어나온 엷은 햇살에/나의 그림자를 찌르는 흰 칼끝/ 반복 되는 생과 사를 잇는 / 아침과 밤/ 여기서 기다린다오/ 건너편에 살면서/ 당신이 잃은 것을 / 말로 할 수 있다면/ 좀 더 좀 더/ 당신이 걸은 길을 덧댄 펜 끝에/ 두 나라의 언어를 싣고/ 당신을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을. -우에노 미야코 ‘윤동주의 길에 대한 답가’ 가운데 일부-

 

시집《不断桜》에 수록된 우에노 미야코 시인의 시어들은 하나같이 곱씹어 볼 것들로 가득하다. 내부로 눈을 돌려 후쿠시마 원전에 관한 진실을 다룬 노래가 있는가 하면(흙, 후쿠시마의(土、ふくしまの), 일명 화장터 옆에 서 있는 소년(또는 “나가사키의 서 있는 소년”)을 다룬 시 ‘서있다(立つ)’는 원폭으로 죽은 동생을 업고 화장을 기다리고 서있는 열 살 소년의 사진을 보고 충격을 받아 쓴 시라고 우에노 미야코 시인은 고백한다.

 

이 한 장의 사진은 1945년 8월 9일, 일본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직후, 미 해병대에서 근무하던 종군 기자 조 오도넬(Joe ODonnell)이 찍은 것으로 이 사진을 통해 원자폭탄의 참상을 알리고 반핵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 있는 사진이며 이를 되새기는 시가 ‘서있다(立つ)’ 이다. 시인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이 참혹한 소년의 사진을 책상 위에 액자로 만들어 놓고 오랫동안 함께 하고 있다고 했다.

 

 

제3부 세월의 무상편에 나오는 ‘노란색의 봄은(黄色い春は)’은 시인이 살고 있는 아파트 정원에 있는 산수유를 노래하는 이야기다. “개나리의 노란색을 따라 하지 않은 산수유! 이는 일본의 유명한 하이쿠(俳句, 계절에 맞는 낱말을 넣어 5.7.5조로 짓는 일본 정형시) 작가 고토우 히나오(後藤比奈夫, 1917~2020)가 노래했다. 그렇다. 봄에 피는 꽃에는 노란색이 많다. 유채, 민들레, 머위 … 그 가운데서도 대지에 왕창 황금빛을 쏟은 듯 활짝 핀 개나리의 존재감이야말로 봄의 여왕 같다.”고 하면서 아직 한기(寒氣)가 남아 있지만, 계절보다 한발 앞서 피는 이른 봄의 선명한 노란색의 꽃은 산수유만한 것이 없다고 했다.

 

특히 다음 구절에서 눈이 번쩍 띄었다. “산수유꽃을 감상하는데 나무 앞에 산수유가 한반도가 원산이라고 적힌 작은 팻말이 붙어 있어 눈을 크게 뜨고 다시 읽어 보았다. ‘산수유 : 층층나무과, 한반도가 원산으로 에도시대에 한약으로 쓰기 위해 전해졌다. 이른 봄, 잎에 앞서 자잘한 노란꽃을 피운다’ ”

 

 

겨울에 피는 벚꽃을 의미하는 후단자쿠라(不断桜)의 생명력 강한 모습에 매료되어 자신의 시집 이름으로 한 우에노 미야코 시인의 시집《不断桜》의 펴냄을 축하하며, 일본어로 된 이 시집이 한국어판으로 나와 한국인 독자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우에노 미야코 (上野 都) 시인】

 

1947년 일본 도쿄 출생

1970년 후쿠오카현립 기타큐슈대학 영미(英美)학과 졸업

1973년 후쿠오카 시잡지 '아루메' 동인

1974년 재일한국문인협회 정회원

1992~1994년 오사카시 히라타타시교육위원회 조선어교실에서 한국어 수학

2022년 현재 일본현대시인협회 회원, 번역 작가로 활동 중

 

대표시집으로는 《훼어리 링스, 1968》, 《여기에, 1998》, 《바다를 잇는 밀물, 2002》, 《지구를 도는 것, 2013》 등이 있으며 번역시집으론 김리박 시인의 《견직비가, 1996》, 《삼도의 비가, 2013》,《견직비가, 1996》, 윤동주 시인의《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2015, 제3쇄》, 박팔양 시인의《여수시초, 2021》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