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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뒤가 꽉 막힌 공간에 갇히면

허홍구, <병(病)>
[우리문화신문과 함께 하는 시마을 108]

[우리문화신문=김영조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병(病)>

 

                                                  -  허홍구

 

   너는 누구냐고 물었습니까?

   이름은 병이지만 여러 형제가 있어요

   앞뒤가 꽉 막혀 소통되지 않는 곳을 찾아들어요.

 

   막힌 공간에 병이 든다는 것은 다 알잖아요

   소통이 없으면 몸도 맘도 괴롭고 답답해요

   공기도 통해야 하지만 피도 잘 통해야 하고

   마음도 잘 통해야 서로 사랑하게 되잖아요

   고집불통 불평불만 욕심 많고 질투하는 맘은

   스스로 어둡고 답답한 공간에 갇히게 되지요

 

   한 번뿐인 인생인데 건강하게 살다 가야겠지요

   마음 활짝 열어놓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세요.

 

 

 

 

조선시대는 기록의 나라였는데 세계문화유산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따위가 그 증거다. 그런데 그건 나랏일만 그런 것이 아니라 개인들도 기록하고 또 기록하면서 살았다. 그 가운데 노인병 다스림의 기록 《정청일기(政廳日記)》도 그 하나다. 《정청일기》는 영의정이면서 영중추부사인 75살 노수신의 병을 다스리는 상세한 기록이다. 1588년(선조 21년)부터 시작해서 1590년 3월 11일까지 병색이 깊은 노수신의 건강상태와 음식 그리고 약 수발 상황이 자세히 쓰여 있다.

 

기록을 보면 날마다 먹은 식사는 밥을 위주로 탕국, 구이, 마실 것, 과일은 물론 고기도 올렸으며, 숭어탕ㆍ생대구탕ㆍ굴탕ㆍ시래기탕 족탕처럼 다양했고, 팥죽, 들깨죽, 원미죽(멥쌀을 굵게 갈아 가루는 걸러내고 싸라기로만 쑨 죽), 율무죽, 청량미죽(파란빛의 차조로 쑨 죽), 콩죽 등을 먹었다. 한의학에는 ‘식약동원(食藥同源)’이란 말이 있는데 이는 “먹거리와 약은 그 뿌리가 같다.”라는 뜻이다. 곧 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지키는 데 있어서 약에 못지않게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정청일기》는 그걸 실천한 기록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먹거리를 먹는다고 해도 잘못된 생활습관으로 심신이 삐뚤어지면 몸이 아플 수밖에 없다고 의사들은 말한다. 과도한 경쟁과 지나친 욕심, 긴장과 스트레스는 몸과 마음을 굳게 하고 아프게 하는 병이 된다. 우리 몸이 보내는 신호를 인체(人體) 언어라 하는데 몸이 자연의 기운과 또 이웃과 통하지 않고 막히면 통증이 오면서 병이 다가오는 것이다.

 

여기 허홍구 시인은 그의 시 <병(病)>에서 “너는 누구냐고 물었습니까? / 이름은 병이지만 여러 형제가 있어요 / 앞뒤가 꽉 막혀 소통되지 않는 곳을 찾아들어요.”라고 얘기한다. 고집불통 불평불만 욕심 많고 질투하는 맘은 스스로 어둡고 답답한 공간에 갇히게 된다. 그러면 아무리 좋은 먹거리를 먹고 적당한 운동을 꾸준히 한다고 해도 여러 형제가 있는 병이란 놈이 나를 온통 차지한단다. 허 시인은 그러기 전에 마음을 활짝 열고 사랑하라고 속삭인다.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 김영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