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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객석에 앉아 손뼉을 크게 쳐주시오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612]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경기도 양평 강가에 있는 두물머리, 즉 양수리[兩水里]에서 열리는 지역 축제, <황포돛배야, 두물머리 강변에 살자>에 관한 이야기를 하였다. 원래 이곳은 서울로 통하는 나루터였으나, 팔당댐으로 인해 그 기능을 잃게 되었다는 이야기, 축제를 통하여 어촌의 옛 풍습을 재현해 오고 있는데, 올해에는 뜻하지 않은 이태원 참사로 인해 행사가 생략되었고, 제2부의 국악한마당이 전옥희 외 여러 소리꾼의 창과 율동으로 이어져 이곳을 찾은 관객들에게 환호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이번 주에는 가야금과 아쟁의 명인으로 활동하다가 세상을 뜬 지 10년이 된, 백인영의 10주기 추모 공연 이야기를 해 보기로 한다. 이 공연은 2022년, 11월 13, 삼성동 소재 무형문화재회관 풍류극장에서 그에게 배운 제자들과 평소 가깝게 지내던 신영희 명창을 중심으로 김청만, 김영길, 원장현, 이광수 등이 우정 출연하여 의미를 더했다. 글쓴이는 추모사를 통해 객석과 공감을 나누었는데, 그 내용을 여기에 옮겨보기로 한다.

 

 

백인영씨!, 오랜만이오.

오늘 밤, 당신 딸 기숙이를 비롯한 제자들과 평소 가깝게 지내던 절친들이 무형문화재회관 극장에 모여 당신의 10주기 추모음악회를 연다고 하니, 꼭 이곳으로 내려오시오. 길 갈라서니 빨리 가는 것은 시간뿐이오. 그동안 밀린 이야기나 나누어 봅시다.

 

백 선생, 평소 우리가 서로 알고는 있었으나, 가깝게 지내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84년 봄이 아닐까 하오. 그때, 어떤 음악회에서 당신이 가야금산조를 연주했는데, 나는 당신의 연주를 듣고 놀란 나머지 뒤풀이 자리에서 당신을 우리 학교로 초청하였고, 당신이 쾌히 응해 주면서 가까워졌지요.

 

당시만 해도 국악이나 국악인들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이나 인식은 냉소적이었기에 이러한 분위기를 어떻게 바꾸어 나가야 할 것인가 하는 점이 당시, 젊은 국악인들의 고민이며 숙제가 아니었나 싶었어요. 아마도 국악 전문인을 양성하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 바로, 국악과 등 돌리고 앉아 있는 우리의 이웃을 애호가나 후원자로 만들어 나가는 일이었다고 생각하오.

 

그 일을 위해 당신은 열심히 방송이나 공연, 제자들을 가르쳤고, 나는 학교 강단을 비롯하여 연수원이나 공공장소에서 국악 관련의 강연, 강좌, 집필 등을 하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었지요.

 

 

백 선생!

기분이 좋을 땐, 흰 치아를 들어내 놓고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던 당신의 모습이 영 지워지지 않고 자꾸 떠오르는 걸 보면, 우리가 가깝게 지내긴 했던 모양이오. 내방역 중턱에 <댓잎>이라는 식당에서 열을 올리며 나누던 대화도 기억나고, 매주 토요일 오후, 교육방송을 함께 하던 기억도 생생하오. 참, 그때 당신이 가야금이나, 아쟁으로 즉석 반주를 할 때 말이오. 일부 출연자가 음(音)을 놓치거나, 중간에 청(淸)을 바꾸기라도 하면, 당신은 난감해하며 특유의 표정을 짓던 장면, 너무도 생생해서 지금도 웃음이 납니다.

 

그런데 말이오. 어떻게 그렇게 순간적으로 조율을 해가면서 동시에 반주 가락을 안내해 주는지?, 나는 당신의 순발력을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오. 어려서부터 명인, 명창들에게 소리와 악기를 배웠기에 가능한 것일까? 아니면 폭발적인 인기를 구가하던 여성국극단에 일찍이 입단하여 명인 명창들의 음악인생을 배우며 자신의 음악세계를 다져 왔기에 가능했을까?

 

그도 아니면, 생활 속에서 각종 노래 및 춤의 반주, 또는 사극이나 다양한 분위기에 맞는 즉흥적 표현이 생활화되었기에 가능했을까? 여하튼 나는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이 땅의 <재인(才人)>, 다시 말해 <쟁이>라고 생각하오!, 아울러 즉흥음악의 <선두주자>였다는 평가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 떠난 후, 당신처럼 살아 움직이는 생생한 음악, 만들어 내는 연주자 만나기 어렵고, 대부분은 악보 속에 박혀있는 음들을 읽고, 소리를 내는, 틀에 박힌 가락들만 난무할 뿐, 당신 같은 쟁이를 만나지 못해, 음악 듣는 재미가 많이 줄었소. 그래서 당신이 더더욱 생각나는 것인지 모르겠소.

 

그런데 말이오, 백 선생!

당신의 음악적인 면은 매우 높이 평가하고, 흠잡을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나, 생활 속에서 만난 당신은 성미가 다소 급한 것이 흠이라면 흠이었소!

 

자존심이 강해서 승산 없는 싸움에도 가끔은 목숨 거는 모습을 보일 때도 있었고, 술과 담배를 끊고 건강을 회복하던 중, 담당 의사로부터 ‘점차 호전되어 가고 있다’라는 결과를 접하고도 또다시 무리할 정도였으니 참고 기다림이 부족했던 당신을 원망한들, 이게 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이오. 그래도 당신은 인정 넘치는 따듯한 사람이었고, 어린아이처럼 순수하면서도 자기주장이 분명한 사람으로 나는 기억하고 있다오.

 

백 선생!,

당신의 10주기 추모 음악회를 준비해 온 제자들은 참으로 대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선생의 음악을 이어가는 그 정신도 대단하지만, 선생을 받드는 그 마음이 참되고 진실되기에 국악계에 귀감이 되고 있어요. 이 점은 또한 당신이 살아생전, 제자들을 얼마나 아끼고 사랑했는가? 하는 점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오늘 밤 제자들 연주 지켜보면서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던 생전의 모습, 그대로 객석에 앉아 손뼉을 크게 치면서 격려해 주시오.

 

겉으로는 웃고 있는 제자들로 보이지만, 저희 선생 저세상으로 먼저 보내놓고, 냉엄해진 세상에서 이리 부대끼고 저리 채이면서 마치, 망망대해를 헤쳐 나가는 힘없는 뱃사공들 같아 때로는 안타깝기도 하다오. 행여 마음에 안 든다고 큰소리치지 말고, 부드러운 말과 따듯한 마음으로, 격려의 손뼉을 쳐주시오. 더욱더 크게 말이오.

 

이제 막이 내렸으니 백인영 씨!, 또다시 만납시다.(2022년 11,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