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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기 어려운 《훈민정음》 해례 서문

공학박사의 한글 이야기 6

[우리문화신문=신부용 전 KAIST 교수]  《훈민정음》 해례의 서문은 세종대왕이 직접 쓰신 글이라 합니다. 그 첫 문장 “國之語音 異乎中國 與文字不相通”은 언해본에 “나랏 말쌈이 중국에 달아 문자와로 서로 사맛지 아니할 쌔”로 뒤펴(번역) 있습니다. 이는 600년 전 말이니 현대어로 옮기면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로는 서로 통하지 않는다.”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슬옹 교수는 그의 책 《세종대왕과 훈민정음학(2010, 지식산업사)》에서 지금까지 발표된 30여 편의 논문과 책은 서문을 구절별로 나누어 비교 분석하였는데 이 부분의 해석은 모두 비슷하며 교과서에도 ‘우리나라의 말이 중국말과 달라서 한자로는 서로 잘 통하지 못하므로’로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공역 시안으로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는 서로 통하지 않으므로’를 제시합니다. 이 표현은 자칫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첫째, 서로 통하지 못한다는 대상이 누구일까요? 예문을 들어 판단해 보겠습니다.

1) 너의 옷 색깔은 나와 달라 들어가지 못한다. (나와 옷 색깔이 같은 사람만 들어간다)

2) 네 것은 나와 달라 바꿔 줄 수 없다. (내 것과 같은 것만 바꿔준다)

 

위 문장에서 견주는 대상은 각각 <너의 옷과 나의 옷>, <네 것과 내 것> 일 것입니다. 견준 대상이 모두 임자말(주격-主格)으로서 같은 선상에서 견주는 것입니다. 같은 문맥이라면 《훈민정음》 해례 서문에서의 견주는 대상은 우리나라 말과 중국 말이 되어 이 둘이 서로 다르다는 말로 해석되며 그렇다면 통하지 못하는 주체는 우리나라 사람과 중국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 해석은 분명 틀린 해석입니다. 어디에서 오류가 생긴 것일까요?

 

둘째, ‘우리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로는 서로 통하지 못한다’라고 해석한다면 이는 사실과 다릅니다. 실제로는 말이 다르니 한자를 써서 서로 통하지 않습니까? 중국인과 필담을 통해 의사소통해 본 경험을 가진 이가 적지 않습니다. 이 역시 뭔가 이상합니다.

 

서문을 더 읽어 내려가면 어린 백성은 결국 제 뜻을 펴지 못해 이를 불쌍히 여겨 28자를 만들어 준다고 했습니다. 결국 서문은 우리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를 모르는 사람들은 중국사람과 통하지 못하니 이를 딱하게 생각해 28자를 만들어 준다는 내용으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절대 수긍하지 못할 내용입니다.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을까요?

 

 

위에서 말한 30여 개의 논문은 거의 이런 의문을 속 시원히 풀어주지 못했습니다. 다만 박종국의 《훈민정음 종합연구(2007, 세종학연구원)》에 ‘우리나라 말이 중국말에 대하여 달라, 한자와는 서로 잘 통하지 아니한다’라고 하여 토씨를 바꾸어 고민한 흔적을 보이지만 이것으로 의문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김민수의 주해 《훈민정음(1959 통문관)》이 ‘국어는 중국말과 달라 한자를 가지고서는 잘 표기할 수 없다’라고 해석하여 의문을 풀 수 있었습니다.

 

곧 국어가 중국말과 다르다는 설명으로 일단락 짓고 그래서 국어는 한자를 가지고서는 표기가 안 된다고 설명해 준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서문 해석을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로 정리하여 결국 자세한 설명을 보지 않고서는 오해를 비켜 가지 못하게 합니다.

 

김민수의 설명대로 중국어와 당시 우리말은 구조적으로 달랐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중국어에서는 말과 글이 완전히 일치합니다. 곧 그들의 말은 예외 없이 한자로 표기됩니다. 한자를 모르는 사람이 하는 말도 모두 한자로 표기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이에 견줘 당시 우리는 글자가 없어서 말을 기록하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이두가 있었지만, 이 역시 한자로 표기되기 때문에 한자를 배우지 못한 일반 백성들은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서문에서 우리말과 중국이 다르다는 것과 한자로 통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러한 사정을 말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곧 중국과는 달리 우리나라 말은 한자로 표기할 수 없어서 통할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를 어떻게 표현하면 될까요? 이를 위해 아래 예문을 보이겠습니다.

 

1) 너는 나와 달리 들어갈 수 없다.

(무엇이 달라서 못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원래 들어갈 수 없게 되어 있다는 뜻)

2) 네 것은 내 것과는 달리 바꿔주는 대상이 아니다.

(무엇이 달라서가 아니라 바꿔 주는 대상이 아니라는 뜻)

 

1)에서는 너와 나가 다른 것이 아니고 어떤 사정인지는 몰라도 ‘너’라는 사람이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이 다르다는 뜻이고, 2)에서는 네 것과 내 것이 달라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대상이 달라 바꿔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달리’는 대상을 1:1로 지정하여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의 차이를 설명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문의 첫 구절을 ‘우리나라 말은 중국과 달리 한자로는 서로 통할 수 없다’라고 해석하면 오해가 없어질 것입니다. 이상을 정리하면 아래 표와 같습니다.

 

      ▶ 《훈민정음》 해례 서문 첫머리의 해석

 

서문을 전부 해설하면 아래와 같게 됩니다.

 

우리나라 말은 중국말과는 달리 한자를 가지고서는 의사를 소통하지 못하므로 일반 백성들은 하고자 하는 말이 있어도 끝내 그 뜻을 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내 이를 가엾게 여겨 새로 28자를 만들었으니 모두 쉽게 배워 일상생활에서 두루 편히 쓰도록 하라.

 

그래도 의문점이 하나 남습니다. 세종대왕이 왜 우리말이 중국과 다르다는 점을 첫머리부터 내놓았을까요? 중국에 대한 언급은 빼고 그냥 ‘한자는 배우기 어려워 우리 백성은 한자로 통하지 못할 때가 많다’라고 해도 충분하지 않았을까요? 아마 그 이유는 중국을 의식해서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글쓴이는 훈민정음에 성리학을 강조하는 것도 혹시 중국과의 관계를 생각해서였나 하고 의심해 보았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이야기에서 다루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