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정운복 칼럼니스트]
봄은 섬진강으로부터 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섬진강 강가에 매화 농원이 죽 이어져 있어 길 이름도 매화로이고
봄이 되면 활짝 핀 매화가 봄을 재촉하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섬진강에는 두꺼비 석상이 많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섬’자가 두꺼비 ‘섬(蟾)’을 쓰기 때문인데요.
고려 1385년에 섬진강 하구에 왜구가 침입하자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 떼가 울부짖어
왜구가 광양 쪽으로 피해 갔다고 하는 전설이 있어
그 뒤로 섬진강이라 불렀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매화가 언제 들어왔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백제 왕인의 시에 매화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매화나무가 있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설중매(雪中梅)’라고 하며
이른 봄 눈을 뚫고 피어나는 지조와 품격을 지닌 꽃이기에
사군자의 으뜸 위치에 놓여 있는 꽃이기도 하지요.
아직 쌀쌀하고 추운데 죽은 듯 한 가지 사이로 예쁜 꽃이 핀 것을 보면
생명의 신비에 경이감이 느껴집니다.
매화는 꽃의 색에 따라 홍매화ㆍ분홍매화ㆍ청매화ㆍ백매화로 분류하는데
매실을 얻기 위해서는 백매화를 심어야 합니다.
약 열흘 상간에 벚꽃이 피기도 하여
많은 사람이 벚꽃과 매화를 혼동하기도 하는데
벚나무는 키가 매우 큰 데 견주어 매화는 작습니다.
매화나무가 키가 작은 까닭은 매실을 수확하기 위하여
농부들이 수형을 낮게 유지하고자 전지를 한 이유가 큽니다.
또한 매화는 잎자루가 없는 반면에 벚꽃은 잎자루가 긴 것이 특징이지요.
매화의 꽃말은 고결한 마음, 그리고 인내라고 합니다.
오랜 겨울을 이기고 피어났기 때문이겠지요.
매화에는 아련한 전설이 전해지기도 합니다.
옛날 중국 산동성에 '용래'라는 청년이 살았는데
불행하게도 약혼한 지 3일 만에 상대가 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용래는 너무 슬퍼 날마다 약혼녀 무덤에서 울었는데
약혼녀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에 하늘이 감동하여
그의 눈물이 떨어진 자리에 나무가 돋아났으니 그것이 매화라고 합니다.
사랑이 되었던 시린 인내가 되었던, 청초하고 고결함이 되었던
일단 꽃 대궐을 이룬 매화가 너무 예쁘니 그것으로 만족한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