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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띄는 공연과 전시

소유치 않고 잠시 빌려서 즐기는 ‘한옥의 풍경화’

이동춘 사진전 <경치를 빌리다>, 4월 25일부터 류가헌

[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고산경행루(高山景行樓). 대구 지역에 있는 오래된 한옥의 누마루에 걸린 편액 글이다. 산처럼 덕이 높은 선인을 따르겠다는 속뜻을 품고 있지만, 누마루에 올라서면 가까이 둥근 잎의 파초 뒤로 푸른 대숲이 사방을 감싸고, 앉으면 대숲과 솔숲 너머 저 멀리 능선 첩첩한 산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나는 여기 가만히 앉아있는데 높은 산이 이 마루까지 다니러 오는 것이다.

 

집의 창과 문을 액자처럼 활용하여 밖의 경치를 감상하는, 이것이 한옥 건축미학의 절정으로 꼽히는 ‘차경(借景)’이다. 차경은 ‘경치를 빌린다’는 의미이니,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빌려서 즐기는 것이다. 하루 밤낮 때에 따라 다르고 사계절에 따라 바뀌는 이 경치는, 한옥이 제 안에 걸어둔 ‘살아있는 풍경화’다.

 

 

 

사진가 이동춘이, 한옥이 품고 있는 이 풍경화들만을 쫓아서 ‘한옥의 차경’을 주제로 사진전을 연다. 펄펄 눈발이 날리는 광산김씨 예안파 종가의 사랑채, 흰 창호지를 바른 문 한쪽에서 푸른 그늘을 드리운 설월당 앞 느티나무, 배롱나무꽃으로 진분홍 물이 든 병산서원의 들어열개문, 소박한 정취에서부터 빼어난 절경까지, 우리나라 곳곳의 오래된 고택들의 ‘차경’ 40여 점을 선별하였다.

 

이동춘은 오랫동안 서울과 안동을 오가며 고택과 종가, 서원 등 우리 문화의 옛 원형을 기록해오다 2010년 <오래 묵은 오늘, 한옥>을 발표하면서 단박에 ‘한옥사진가’라는 수식을 얻었다. 2020년에 15년 동안 안동 고택 107곳을 방문해 찍은 사진 200여 점이 담긴 책 《고택문화유산 안동》으로, 2021년 전시와 책으로 선보인 <한옥ㆍ보다ㆍ읽다>로 다시금 자신의 수식을 공고히 했다. 디자인하우스 사진부에서 일했던 이력대로, 스트레이트 사진(회화의 시각적 특징을 모방하지 않은 사진)임에도 자연과 고택을 마치 거대한 자연광 스튜디오에 옮겨서 촬영한 듯 빼어난 연출력과 구성을 보여준다.

 

국내 전시 말고도 나라 밖에 소재한 한국문화원의 초청으로 미국 LA, 독일 베를린, 헝가리 부다페스트 등에서 사진으로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 활동을 지속해왔다. 시인이자 사회학자인 김영목은 “이동춘은 사진작가지만 과거의 현대성, 또 현대 속의 과거성을 인간을 위한 문화유산으로 만드는 이미지 문화 인류학자이기도 하다.”고 칭찬했다.

 

 

 

 

특히 이번 전시작들은 국가무형문화재 117호 한지장 김삼식 장인이 직접 만든 ‘문경한지’에 옮겨져 보일 듯 말 듯 희미하다. 루브르박물관 복원지로 사용되는 문경한지 가운데서도 이동춘의 사진에 특별히 맞춘 맞춤한지가 차경을 담아낸다.

 

동춘(東春). 동녘동에 봄춘자니, 동쪽의 봄이라는 뜻이다. 이름 뒤에 한옥 공간의 이름을 더해서 ‘동춘헌’ ‘동춘루’ ‘동춘전’ 이라 불러도 될 것 같은, 뜻이 어여쁘고도 드문 이름이다. 우직할 정도로 오랜 세월을 한옥을 찍어 그 분야에 일가를 이룬 사진가에게 참으로 맞춤한 이름이 아닐 수 없다. 이동춘 사진전, 줄여서 ‘동춘전’은 4월 25일부터 류가헌에서 열린다.

문의 02-720-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