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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심리학, 조선왕조실록을 만나다

《심리학으로 보는 조선왕조실록》, 강현식, 살림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심리학으로 조선왕조실록을?’

제목 그대로다. 조선왕조실록에 심리학을 접목했다. 조선 임금과 왕후들의 심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아들 사도세자를 죽인 아버지 영조, 아들 명종을 끊임없이 나무라며 심리적으로 학대한 문정왕후, 아내나 아버지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심각했던 고종… 역사가 긴 만큼, 조선 왕실에 나타난 ‘문제적 인물’도 가지각색이었다.

 

강현식이 쓴 책, 《심리학으로 보는 조선왕조실록》은 조선왕조에 나타난 갖가지 심리적 문제를 재미있게 풀어낸 책이다. 심리학을 전공한 지은이가 조선왕조에서 벌어진 일련의 비극들을 분석한 시각이 무척 흥미롭다.

 

 

사람의 심리는 복잡다단하다. ‘집안일’과 ‘나랏일’이 뒤섞이는 왕실 인사들은 더 복잡한 심리 양상을 보일 수밖에 없다.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지, 어떤 행동이 더 바람직한지 판단하기도 어렵다. 여러모로 스트레스에 짓눌린 가운데 현대의 심리학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들이 나온다.

 

먼저 ‘약한 아버지와 강한 아들, 500년 조선의 시작을 열다’ 편에서는 양가감정과 공격성, 승화를 주제로 태조와 아들 이방원의 관계를 분석한다. ‘고부갈등이 희대의 폭군을 낳다’ 편에서는 반동형성과 경계선 성격을 주제로 성종을 둘러싼 고부갈등과 이에 따라 잉태된 연산군의 폭정을 바라본다.

 

(p.96)

성종이 자신을 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윤씨는 하루하루가 괴롭고 힘들었고 결국엔 투서 사건을 꾸민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2년 후에도 화를 참지 못하고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른다. 이러한 윤씨의 행동은 경계선 성격으로 설명할 수 있다. 경계선 성격의 특징은 불안정성이다. 기분도, 대인관계도, 자아상도 불안정하다. …(줄임)… 이 불안정성은 때로 현실 판단력을 흐린다. 망상이나 환청을 경험할 정도로 현실 판단력이 심하게 훼손되기도 한다. 이 성격의 특성의 이름이 ‘경계선’인 이유도 현실판단력의 있음과 없음 사이에 있다고 하여 붙여진 것이다.

 

‘강한 어머니와 약한 아들이 초래한 비극’ 편에서는 편집성 성격을 가진 문정왕후가 의붓아들 인종과 친아들 명종을 차례로 괴롭히는 비극을 다뤘고, ‘근본적인 열등감의 대물림 그리고 임진왜란’ 편에서는 방계 혈통에서 비롯된 뿌리 깊은 열등감을 가지고 있던 선조가 그 감정을 고스란히 아들 광해군에게 대물림하며 학대하는 현상을 다뤘다.

 

‘의심이 병자호란을 일으키고 아들을 죽이다’ 편에서는 집단극화, 인지협착, 확증편향의 관점에서 인조와 소현세자의 관계를 다뤘고, ‘절대군주, 마음이 공허한 나르시시스트’ 편에서는 조선왕조에서도 몇 손가락에 꼽을 만한 최고의 정통성을 갖추고 임금이 된 숙종의 성격을 ‘자기애성 성격’으로 진단했다.

 

‘억울함이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그림자를 드리우다’ 편에서는 형이었던 경종을 독살했다는 소문에 평생 시달렸던 영조가 ‘억울함’을 매개로 아들 사도세자와 사이가 벌어진 경황을 다뤘고, 마지막으로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투쟁, 500년 조선의 막을 내리다’ 편에서는 의존 성향이 강했던 고종을 이용해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가 정치 대결을 벌이며 반목하는 현상을 다뤘다.

 

(p.296)

이 말은 분명히 고종이 조선의 왕이기는 했지만, 생부나 중궁의 결정과 판단에 너무 쉽게, 너무 자주, 너무 많이 의존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아버지와 아내의 뜻과 맞지 않을 때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의견을 개진하는 모습은 볼 수가 없다. 적극적인 군왕의 모습이 아니라 너무나 소극적이고 의존적인 모습이다. 마치 조선의 마지막 모습을 그대로 보는 것 같다. 이러한 고종의 모습은 의존적 성격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의존성 성격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보호받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며, 다른 사람의 충고 없이는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심리학을 전공한 지은이 강현식은 역사와 심리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임에도 많은 역사책이 심리 외적인 요인들, 곧 국제정세나 국내 정치상황, 이념 차이 등에만 초점을 맞추어 설명하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껴 이 책을 쓰게 됐다고 한다.

 

역사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려는 지은이의 노력 덕분인지, 심리학 못지않게 역사적 사실도 충실히 기술되어 본격 역사책으로서도 손색이 없다. 다만 역사적 사실을 심리학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과정에서 다소 억지스러운 해석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처럼 참신한 시각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책이 더 많이 나와야 천편일률적인 역사 해석에서 벗어나 더 깊이 있는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새로운 시도를 한 지은이의 용기와 노력에 박수를 보내며, 특히 심리학에 관심 있는 독자에게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