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해녀들이 바닷가로 달려가 바다에 좁쌀을 뿌렸어.
칠머리 바다 밭에 풍년을 비는 거야.
“영등할마님, 전복씨, 소라씨, 미역씨 드렴수다.
가시는 길에 씨 뿌려 줭 바글바글 나게 해 줍서.”
영이도 작은 손을 모아 엄마처럼 빌었어.
“영등할마님, 씨 많이 뿌려 주세요!”
바닷가 사람들에게 행운은 꼭 필요한 것이었다. 거센 풍랑이 이는 제주에서는 더욱 그랬다. 제주는 안녕을 기원하는 의식이 유난히 발달한 곳이다. 비바람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 조금이라도 무탈한 귀환을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지은이 강난숙이 쓴 이 책, 《칠머리당 영등굿》은 많은 이들에게 생소할 영등굿을 따뜻한 그림과 동화로 보여준다. 이 그림책을 읽으면 칠머리당 영등굿이 어떤 것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제주 해녀들은 해마다 음력 2월이 되면 비바람의 신인 ‘영등신’을 맞이하고 보내는 잔치를 여는데, 이 잔치를 ‘영등굿’이라고 한다. 음력 2월 1일에 제주로 들어와 섬을 한 바퀴 둘러보고 2월 15일에 떠난다.
짧게 다녀가는 신이지만, 제주 사람들은 영등신을 ‘영등할마님’이라 부르며 각별하게 여겼다. 특히 해녀들에게 영등신은 더욱 특별한 존재였다. 비바람의 신이면서, 동시에 바다에 소라, 전복, 미역 등 해산물의 씨앗을 뿌려 주는 신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영등신이 떠나는 음력 2월 15일 무렵에는 바닷바람이 무척 거칠고, 소라와 전복 같은 조개류의 속이 비었다. 해녀들은 이를 영등신이 조개류 속을 모두 휩쓸고, 돌아갈 때 새 씨앗을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음력 2월은 ‘영등달’로 부르며 이때는 되도록 물질을 하지 않고, 굿을 벌이면 해산물을 풍성하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드렸다. 이렇게 제주지역 문화로 정착되어 간 것이 ‘영등굿’이다. ‘칠머리당 영등굿’은 제주시 건입동에 있는 본향당(마을 신을 모신 신당)에서 하는 굿으로 영등굿 가운데 규모가 가장 컸다.
건입동 사람들은 여전히 해마다 음력 2월이면 영등굿을 벌이고 있다. 칠머리당 영등굿은 제주의 고유한 풍속이자 해녀들의 문화를 보여주는 세계 유일의 해녀굿으로, 2009년 유네스코 세계 무형문화유산으로 뽑히기도 했다.
칠머리당 영등굿은 먼저 신을 부르는 초감제, 바다를 다스리는 용왕과 마을을 지키는 본향신을 모시는 ‘본향듦’, 굿당에 모신 신들에게 술을 권하고 떡을 바치는 ‘추물공연’ 등으로 구성된다.
네 번째 절차가 바로 ‘용왕맞이’인데, 칠머리당 영등굿에서 가장 중요한 의식으로 손꼽힌다. 사람들은 길을 닦고 용왕다리를 놓으며 용왕과 영등신을 맞을 준비를 한다. 그리고 진행되는 ‘씨드림’은 해녀들이 해산물의 씨앗을 상징하는 좁쌀을 바다 곳곳에 뿌리는 의식으로, 좁쌀을 뿌리며 바다에 풍년이 들기를 기원한다.
‘지드림’은 해녀들이 저마다 차린 제물을 내려 한지에 조금씩 싸서 바다에 던지는 의식이다. 용왕과 바다에서 죽은 넋들을 대접하는 것이다. 또한 ‘영감놀이’는 다른 제주 마을의 영등굿에서는 볼 수 없는 놀이로, 도깨비 영감으로 분장한 이들이 횃불을 들고 한바탕 노는 의식이다.
마지막으로 ‘도신’은 불러 모신 신들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보내는 의식이다. 보통 짚이나 띠를 엮어 만든 배에 액막이용 수탉을 태워 보내며 영등신도 함께 보낸다. 도신을 끝으로 영등굿은 막을 내린다.
바다의 안녕이 곧 삶의 안녕이었던 제주에서, 사람들은 얼마나 간절한 마음으로 굿을 했을까? 영등신이 지켜주는 바다는 소중한 삶의 터전이었다. 해마다 2월이면 찾아와 가족의 안전과 풍어를 약속하고 돌아간 영등신은 참으로 고마운 존재였다.
이 책은 제주문화에 관심이 많은 이들도 잘 몰랐을 법한 칠머리당 영등굿을 접하게 해주는 소중한 책이다. 이처럼 제주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책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올해 2월에도 제주 바다에 복이 찾아오기를, 제주에 좋은 일이 더 많이 일어나기를 빌어본다.
《칠머리당 영등굿》 강난숙(글), 최미란(그림), 웅진주니어, 1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