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영조 기자] 어제(2월 2일) 저녁 7시 30분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기타리스트 박규희와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협연으로 호아킨 로드리고의 ‘아랑후에스 기타 협주곡’이 울려 퍼졌다. 클래식 음악 가운데 모차르트나 베토벤, 차이콥스키의 유명한 작품에 견줄 만큼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이 음악은 과거, 토요일 밤마다 온 가족을 텔레비전 앞으로 끌어모은 ‘토요명화’라는 프로그램의 시작 음악으로 널리 알려진 곡이다.
이날 협연은 2011년 영국 클래식 순위 28주 1위를 한 ‘밀로시 칼라다글리치’의 국내 첫선이었지만, 밀로시가 낙상사고로 다치면서 협연자가 급하게 박규희로 교체됐다. 박규희는 만 3살 때부터 기타를 친 신동이자, 2008년 벨기에 프렝탕 국제 기타 콩쿠르에서 여성 및 아시아인 최초로 우승했고, 2012년 스페인 알람브라 국제 기타 콩쿠르에서 1위와 청중상을 받은 국내 대표적인 클래식 기타리스트다.
이 음악을 영상으로 보거나 음반으로만 들어왔던 내게 이 음악회를 볼 수 있다는 것은 크나큰 행운이었다. 다비트 라일란트가 지휘하는 거의 100여 명에 육박하는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연주단, 그것도 7명의 콘트라베이스와 두 대의 튜바 등이 품어내는 폭발적이며 장중한 음악에 더 해 두 대의 하프가 섬세하게 받쳐주는 기타 협연은 그야말로 환상세계였다.
원래 기타는 음량이 작아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데는 무리일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아랑후에스 기타 협주곡’은 1940년 12월 바르셀로나에서 초연했을 때 크게 성공하여 20세기의 가장 유명한 협주곡이 되었다. 전 3악장으로 작곡되어, 스페인의 대표적인 민속악기인 기타를 사용하여 지중해 생활의 색깔ㆍ분위기ㆍ멜로디를 멋들어지게 그려냈다는 평에 걸맞은 연주는 청중들의 큰 손뼉을 받았다. 박규희의 청량감 있는 연주는 스페인 날씨처럼 건조하면서도 화려함을 연상케 했다.
그런데, 음량이 작은 기타가 독주할 때는 연주자 박규희의 섬세함에 그저 감탄할 뿐이었지만, 수십 대의 현악기가 반주로 나섰을 때는 현악기 소리에 기타 소리가 묻히는 느낌을 주어 아쉽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날 연주에 정점을 찍은 것은 마지막 연주 라벨의 ‘볼레로’였다. ‘볼레로’는 스페인의 민속춤을 창작 동기로 한 것으로 수많은 영화, 광고, 텔레비전 프로그램 등에서 사용되었으며, 많은 피겨 스케이팅 선수들도 이 곡을 프로그램 음악으로 선택한다. 그만큼 인기와 영향력은 클래식 음악의 세계를 넘어 다양한 문화 분야에서도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스네어 드럼의 규칙적인 리듬에 맞춰 악기가 흩어졌다 모이기를 반복하는 음악으로 독특한 구조와 멜로디, 그리고 지속적인 반복과 크레센도(점점 크게)의 구성이다. 색소폰, 잉글리시호른 등 오케스트라의 다양한 악기들이 주제를 연주하면서 서서히 고조되어 가는 과정은 청중의 긴장감을 높이며, 결말의 웅장한 절정으로 이끈다.
레너드 번스타인의 뉴욕 필하모닉,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베를린 필하모닉, 세이지 오자와의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릭카르도 무티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연주로 많이 알려진 라벨의 ‘볼레로’는 이날 공연에서 내게 몽환적인 감각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했다. 나뿐만이 아니라 청중들은 한 사람도 일어나지를 않고 큰 손뼉으로 환호를 보내고 결국은 앙코르 연주를 선물로 받았다.
공연을 본 암사동에서 온 한정인(37, 교사) 씨는 “기타리스트 박규희 섬세한 연주와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웅장한 연주에 내내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특히 저 심연 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처럼 느껴지는 7대의 콘트라베이스 소리는 내 생애 처음 깊은 저음 속에서 헤맨 황홀함이었며, 마치 내가 스페인 아랑후에스에 와 있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할 정도였다.”라고 말했다.
갑진년 한 겨울밤, 2,500여 석을 가득 메운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청중들은 웅장하고 화려한 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의 연주에 한 없이 매료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