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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아버지》 덕분에 아내의 잠자리 거부 해제돼

무심거사의 중편소설 <열번 찍어도> 17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드디어 수능시험일이 왔다. 시험을 치고 온 아들에게 물어 보니 결과는 나와 봐야 알겠다고 명확하게 몇 점이라는 이야기를 안 한다. 수능점수가 채점되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이제는 아들의 점수가 늘어날 리도 줄어들 리도 없게 되었다. 나오는 점수에 맞춰 학교를 고르면 된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김 교수는 “이제 새벽기도도 끝났구나”라고 좋아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D데이는 수능시험일이 아니고 대학입시일이라는 아내의 선언에 김 교수는 할 말을 잊었다. 아들을 위해서라는데 들어내 놓고 항의할 수도 없고. 그저 고3 학부형이 된 것이 죄라면 죄라고 말할 수밖에! 김 교수는 수능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새벽기도회에 따라갔다.

 

날씨는 추워지고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면 차 유리창에 성에가 서려 있어서 김 교수는 4시 반보다 더 일찍 일어나야 했다. 더 일찍 일어나서 차 시동을 걸고 성에를 제거하여야 5시 기도회에 늦지 않기 때문이다. 새벽 공기는 차가웠다. 바람이 부는 날은 두꺼운 옷을 입어야 춥지 않았다.

 

그 와중에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아내의 잠자리 거부가 해제된 것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해제 이유가 한 권의 책 때문이었다. 그 무렵 《아버지》라는 제목의 책이 유행이었다. 김정현이라는 전직 강력계 형사가 직장에 사표를 냈다. 출근을 그만두고 도서관에 틀어박혀 책만 읽다가 책을 한 권 썼다. 여러 출판사에서 거절당한 원고를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작은 출판사에서 시험 삼아 출판하였는데 대성공이었다. 보통의 책은 1만 권 정도만 팔려도 베스트셀러에 오르는데, 십만 부 넘고 이십만 부를 돌파하였으니, 저자는 인세도 많이 받았을 것이다. 간단히 계산해 보자. 인세를 1권당 1천 원 받는 책이 10만 부 팔리면, 인세가 1억 원이다.

 

 

제3자로서 흥미로운 사실은 그가 책을 쓰기 직전에 이혼하였다는 것이다. 아마도 남모르는 아픈 사연이 있는지 저자는 이혼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을 회피하였다. 누가 먼저 헤어지자고 했을까? 김 교수는 아마도 그 부인이 먼저 “당신 같은 사람하고는 못 살겠다”라고 말했을 것으로 추측하였다.

 

경찰이라는 직업은 우리 사회에 절대로 필요하지만, 경찰관의 부인 처지에서는 별로 좋은 직업이 아니다. 이틀에 한 번꼴로 24시간 특근을 하고 걸핏하면 비상이라고 해서 늦게 들어오니 남편 얼굴 보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육아와 교육은 100% 부인 몫이니 경찰관의 아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렇지만 참으로 아까운 일이다. 그 부인이 조금만 더 참고 살았더라면 좋은 세상을 보았을 텐데... 고생 끝에 낙이 왔을 텐데... 세상이란 원래 그렇게 굴러가는 것인가?

 

어쨌거나 소설책 읽기를 좋아하는 김 교수는 《아버지》를 사서 읽어보았다. 현대의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가장으로서 직장인으로서 저자는 힘겹게 살아왔다. 그런데도 아내는 남편의 어려움을 몰라주고 심지어 자식들도 몰라준다는 내용이다. 그 책 곳곳에서 두 아이의 아버지인 김 교수의 심금을 울리는 구절이 많았다. 여러 부분에서 공감이 갔다.

 

김 교수는 좋은 아버지가 되려고 나름대로 노력하는 데도 아내는 항상 ‘못난 아버지’라고 핀잔을 주지 않는가! 아들 역시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아버지를 높게 평가하는 것 같지 않다. 그 책은 그러한 김 교수의 약간은 억울한 심정을 잘 표현하고 있었다.

 

김 교수가 《아버지》에서 특히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주인공의 불륜 장면이다. 주인공이 아내와 자식에게서 인정받지 못한 채 암에 걸렸다는 사형선고를 받게 된 뒤 사건이 일어난다. 주인공이 난생처음으로 술집아가씨와 정사를 갖게 된다. 노련한 술집 아가씨인 소설 속의 이소령에게 이 아저씨는 보통 손님과 달랐다. 자기를 노리개로 대하지 않고 하나의 인간으로서 정중히 대해주는 주인공에게 아가씨는 고마움과 사랑을 느낀다. 아가씨는 그 책의 표현을 빌리면 ‘사람 냄새가 나는 손님’을 처음으로 만나서 사랑에 빠지게 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