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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민족

동양천지의 주인공, 겨레의 하늘못(천지)에 서다

'탄운이정근의사기념사업회 백두산 답사단' 취재기 -2

[우리문화신문=이윤옥 기자] 하늘못(천지 - 天池)은 온통 희뿌연 물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비가 더 세차게 내렸다면 하늘과 물의 경계가 사라져 버려 카메라에 담는 일은 아예 불가능했을 것이다. 답사단이 천지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희미하게나마 천지는 그 모습을 드러내 주고 있었다. 한반도의 조종산(祖宗山), 곧 모든 산맥의 시작점이자 겨레의 영산(靈山)으로 자리매김한 백두산 천지, 답사단은 빗속에서도 어제 그 산을 올랐다.

 

 

 

실은 그제 퉁화(通化)에 도착하여 이튿날 백두산 천지를 오르기로 한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다렌에서 퉁화까지 장장 8시간 이상의 버스 이동으로 답사단원이 지쳐있어 천지에 오르기로 한 어제는 약간 느긋하게 숙소를 출발하기로 했었다. 그러던 일정이 그만 ‘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 때문에 변경되어 새벽 4시 30분에 숙소 출발이 결정되었다.

 

퉁화에서 백두산 입구까지는 전세버스로 약 3시간 정도 걸린다. 그러나 모든 버스는 백두산 입구 주차장에 세워두고 중국 정부에서 운영하는 천지 등정용 셔틀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 한다. 그것뿐이 아니다. 셔틀버스에서 내려 1,442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비로소 천지를 만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백두산 천지에 오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거기에 변화무쌍한 일기변화에 푸른 물과 맑은 하늘의 천지 모습을 만나기란 ‘백번에 두 번 만날까말까’ 해서 '백두'가 되었다는 농 섞인 말처럼 흐린 날을 만나는 것이 어쩜 더 당연한 모습일지 모른다.

 

 

비가 내려 우비를 입은 사람들로 천지를 오르는 계단이 알록달록하다. 입구에서 올려다보는 천지로 향하는 길은 마치 순례자들의 행렬처럼 발디딜 틈이 없이 빽빽했다. 평소 왕복 30분이면 빠른 걸음으로 다녀올 수 있는 거리가 내리는 비 때문에 배로 걸렸다. 돌계단과 나무계단을 나란히 설치했지만, 비 오는 날은 돌계단이 미끄러워 사람들은 나무계단으로 몰렸다. 사람들 속에 섞여 천지를 향하면서 나는 얼마 전 ‘폭염으로 사우디 메카 성지순례 사망자 1,300명’이라는 기사가 떠 올랐다. 이 빗속에 누구 한 사람 발이 미끄러져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아찔했다. 사우디야 신을 만나기 위한 성지순례라지만 백두산 천지에서는 우리 겨레의 시조 단군 할아버지라도 만날 수 있으려나?

 

“예전에는 한국 사람들이 많았지만, 요즘은 중국 현지인들도 많습니다.”라는 가이드의 이야기처럼 천지로 오르는 사람들의 말은 한국말, 중국말이 반반씩 들려왔다. 셔틀버스로 갈아타는 곳에서부터 늘어선 긴 줄은 천지로 오르는 계단까지 그야말로 인산인해라고 할 만큼 북새통이었다.

 

 

 

민족의 영산(靈山), 백두산은 중국 이름 '장백산(長白山, 창바이산)'으로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등재됐다. 그 때문인지 백두산 입구에서부터 큰 글씨로 이를 알리는 광고 안내판이 곳곳에 서 있었다. 유네스코는 백두산에 대해 "지린성(길림성) 남동부에 있는 화산 활동의 야외 교실 같은 곳“이라면서 ”가장 잘 보존된 화산 가운데 하나로 화산이 형성되는 과정을 연구할 수 있는 곳이며 정상에 있는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크고 높은 화산호인 천지는 절경을 선사한다."라고 등재 이유를 밝혔다.

 

현재 백두산은 4분의 1이 북한에 속해있고 4분의 3은 중국 땅이다. 다만 백두산 천지는 약 54.5%가 북한에 속해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분단으로 북한 쪽을 통해 천지를 갈 수 없고 지금은 중국을 통해서만이 천지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상황이다. 현재 백두산 천지로의 접근은 동서남북에서 접근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를 두고 각 방향에 따라 파(坡 - 언덕ㆍ고개를 뜻함)를 붙여 동파, 서파, 남파, 북파라고 부르는데 북한 쪽에서 오르는 지역인 동파로는 올라갈 수 없는 상황이다. 답사단이 이번에 접근한 코스는 서파(西坡) 쪽이다.

 

 

“이번 답사에 탄운 장학생들과 함께 할 수 있어 기쁩니다. 민족의 영산 백두산 천지 답사를 통해 장학생 스스로가 장차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무엇을 해야 할 지를 되돌아보는 뜻깊은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울러 일제에 침탈당한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탄운 이정근 의사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설립한 탄운 장학생이 된 것에 자부심을 품고 이를 기반으로 활발한 자기 계발을 위해 정진하는 대학생들이 되길 바랍니다.” 이는 (사)탄운이정근의사기념사업회 김겸 회장이 장학생들에게 들려준 말이다. 김겸 회장은 78살의 고령에도 흐트러짐 없이 학생들과 호흡을 같이 하면서 천지에 올랐다.

 

나는 장학생들과 천지를 오르며 문득 석주 이상룡 선생의 시 한 수가 생각났다.

 

대륙의 여러 산 중 이 산이 시조라오 / 동양천지 온 세상에 이 산이 주인공이라오.

2백 리 길 걷고 걸어 산마루에 오르면 / 단군 황조의 옛자취 신궁이 있다 하오.

(大陸諸山中始祖 東洋一局主人翁. 直到峰嶺二百里 檀皇遺蹟有神官)

                                                          - - 석주 이상룡 《석주유고(石洲遺稿)》

 

석주 이상룡 선생은 안동지역에서 정통 유학자로 유인식, 김동삼 등 혁신적 유림 인사들과 함께 근대교육기관을 설립하고 본격적인 계몽활동에 뛰어들다가 국권을 빼앗기자, 독립운동을 펼치기 위해 전 재산을 처분, 중국으로 망명하여 만주벌에서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는 등 무장독립투쟁을 위한 독립군 양성에 일평생을 걸었으며,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국무령(대통령)을 지낸 독립투사다.

 

‘나라를 되찾기 전에는 내 유골을 고국으로 가져가지 말라’는 유언을 남긴 석주 선생! 그가 백두산을 가리켜 ‘산중의 산이요, 동양 천지 온 세상의 주인’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겨레의 신령스러운 영산(靈山)인 천지를 오르며 이 영산(靈山)과 영지(靈池)가 한 때 우리의 땅이었음을 장학생들과 함께 회고했다.


"버스를 타고 백두산 중턱에 내려 천지로 향하는 계단을 보았을 때의 압도감을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수 많은 계단과 수 많은 사람들. 그리고 아름다운 자연. 답사단과 함께 천지로 향하는 그 길을 올랐습니다. 1,442개의 계단을 오르며 힘든 순간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제 주위를 둘러싼 백두산의 풍경을 보면 천지는 얼마나 아름다울지가 궁금해져 발걸음을 재촉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만난 천지는 형언할 수 없을 만큼 크고 아름다웠습니다. 다리가 아픈 것도 잊고 바라보았습니다. 우리 민족의 영산을 볼 기회가 저에게 왔다는 게 감격스러웠습니다. 천지에서 내려와 본 금강대협곡 또한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자연이 빚은 아름다운 협곡은 경이로웠습니다. 종종 보이는 다람쥐도 좋았습니다. 언젠가 또 한 번 다시 백두산에 오르고 싶습니다." - 탄운장학생 제20기, 춘천교대 초등교육과 2학년 조승연-

 

다행히 이날 새벽부터 서두른 탓에 굵은 빗줄기가 퍼붓기 전에 옅은 안개 속의 천지 모습을 볼 수 있어 기뻤다. 오히려 운무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하늘못(천지 - 天池)은 온통 속살까지 드러낸 맑은 날의 모습보다 신비스럽고 오묘했다. <3편으로 이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