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김광옥 수원대 명예교수] ‘안거락업’은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업을 즐기는 것을 비유하는 고사성어다.
안거락업 : 본도 백성이 다시 들어가서 살게 하지 않는다는 교서를 받들고 이곳에 내려와 펴서 읽어 주면, 사람마다 모르던 것을 갑자기 깨달아서 안거락업(安居樂業)할 것이며, 떠돌아다니는 사람도 모두 고향 마을에 돌아오게 되어 떠돌아다니는 것이 당연히 없어질 것이니, 이것이 어리석은 신의 계책입니다. (⟪세종실록⟫ 25/10/24)
함길도 도관찰사 정갑손(鄭甲孫)이 임금에게 올리는 글이지만 여기서는 ㉮모르던 것을 알게 되어 안심하고 ㉯이 땅에 돌아와 업에 기쁘게 종사하고 ㉰안거락업할 것이라는 계획이다. 목표는 모두가 안정되어 업에 종사하여 즐거움을 얻는 것이다. 이는 비록 신하가 올리는 말이지만 당시 세종대 정치의 목표이기도 한 락생(樂生)을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구체적으로 직(職)과 업(業)이 등장한다. ‘직’은 맡은 바 일[직무]이고 ‘업’은 일에 임하는 정신적 자세다. 생업은 살아가며 중히 여겨야 하는 일에 임하는 정신이고 천직은 일을 하늘이 준 일이라 중히 여기는 일이다.
업과 생업 : (허조에게 명하여 도도웅와의 서한에 답서하게 하다) 여러 고을에 나누어 배치한 사람들에게는 이미 옷과 식량을 넉넉히 주어서, 각자 그 생업에 안심하고 종사하게 하였는데, 섬 안에는 먹을 것이 부족하니, 돌아간다면 반드시 굶주릴 것입니다. (⟪세종실록⟫2/윤1/23)
도도웅와에 대한 답서로 최종 목표는 이민족도 생업에 종사하게 하려는 배려를 보인다.
생업 즐기게 : (지금산군사 등을 인견하다) 임금이 말하기를, 그것은 다른 까닭이 아니다. 백성들이 어려움이 많아서 농사를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편안하게 살며 생업(生業)을 즐기게 된다면 어찌 빈 넓은 땅이 있겠느냐. 그대가 가서 백성에게 갈고 심기를 권장하여 풍성하고 부유함을 이루게 하라, 하였다. (⟪세종실록⟫7/12/7)
세종 25년 10월의 경우. 다름없이 세종 초기부터 이민족 포용의 정책을 쓰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업, 직 그리고 생업
업(業)은 직(職)과 연결되어 직업이 된다. 직업(職業)이란 표현은 조선조 전체는 24건이고 세종 1건, 성종 6건, 중종 8건이다. 중기 이후 상업의 발전으로 직업도 다양해지고 있음을 보게 된다. 성종 이후 중종 시에 일반적으로 쓰이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록에서는 일반적으로 업이나 직으로 쓰는 게 일반적이다. 업(業)은 9천6백여 건, 직(職)은 4만 9천여 건 보인다.
업이 직을 통하여 마음으로부터 즐거움과 보람을 느낄 수 있다면 이는 업이 되고 업으로 일상을 유지하면 업이 생업이 될 수 도 있다. 자신을 돌보는 힘이 약한 백성이 바로 ‘생각’의 실마리인 ‘느낌’을 갖게 되는 일은 사대부의 사명감에 대비된다.
백성과 사대부의 다른 점은 백성은 고통스러운 ‘이곳’을 벗어나고 싶어 한다. 백성은 ‘이곳’에서 견디지 못하면 류민(流民, 떠도는 사람), 유민(遊民, 직업이 없이 놀며 지내는 사람), 란민(亂民, 가난하여 살아가기가 매우 어려운 사람), 학민(虐民, 괴롭힘당하는 백성)이 된다.
세종 시대를 고려하여 생각해 보면 백성과 사대부는 정신적인 문제에 있어서 다른 점이 있다. 사대부는 자기를 닦아 사회봉사를 하는 것이 주어진 임무다. 백성은 자기 존재를 잘 모른다. 그러므로 ‘자기’를 깨닫게 되는 기회를 얻게 된다면 ‘새 사람’이 될 수 있는 계기를 갖게 된다. 그러나 정신적인 갱생(更生)의 기회를 얻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런 과정에 업(業) 정신을 통한 자기 삶의 확인이 이루어질 수 있는 기회는 ‘정신적 계발’보다 쉽고 구체적이라 할 수 있다. 세종의 업(業)정신은 바로 이런 데 근거하고 있다고 보인다. 업정신은 바로 ‘생업(生業)’ 의식을 통한 자기 사람의 새로운 발견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보인다.
생업에 관한 실록의 기사는 세종 조에 제일 많다. 《조선실록》 원문 모두 252건 가운데 태종 12, 세종 59, 성종 29, 중종 26, 선조 9/1, 숙종 10, 정조 11건 등이다. 세종은 생업의 임금이라 할만하다.
사람은 일을 해야 산다. 그 업이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 이처럼 업에 생생의 작용이 다하되면 생업(生業)이 된다. 생업은 업기능을 통해 얻는 지식 외에 업을 통하여 삶에 대한 각성과 자신을 얻는 상태를 말한다.
사대부의 업의 하나는 학업으로 관리들은 궁중 내 경연 참가도 그 가운데 하나다. 세종은 재임 중 1,898회의 경연을 가졌다. 월 5회인 셈으로 경연은 단순히 고전을 읽는 것이 아니라 현실정치를 고전에 대비해 명확히 바로잡는 일이었다.
업과 직의 차이는 같은 업이면서 겉으로는 신분사회 등의 구분에 따르는 장애요소가 있다. 그러나 근본은 무엇일까. ‘업에 대한 마음의 자세가 어떠한가’다.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삶’일 것이다. 어렵거나 그저 그런 삶은 ‘살고 있다’라면 어려움 속에 극복하는 삶은 ‘살아내다’일 것이다.
한 예를 들면 업의 정신적 요소로 사위미성(事爲未成)이 있다. “이때 한나라 군사는 업행(業行)의 시점에 있었다. 무릇 일이 이미 시작되었으나 아직 성취되지 않은 것을 업이라 한다” (《치평요람》 제8집, 16권)
‘사위미성(事爲未成)’이란 일이 진행되고는 있으나 아직 이루어지지는 않았다’라는 뜻이다. 이 정의는 세종과 정인지의 의견이다. 정인지 등은 《치평요람》에서 한 고조 유방의 이야기를 하면서 임금의 업(業)에 대해 말했다. BC 200여 년 전 한 고조 유방과 신왕 묵돌[冒頓]과의 평성 전투에서 위기를 모면한 일을 두고 한 말이다.
업이란 삶의 커다란 목표를 갖고 살아 나가는 행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