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판소리 수궁가(水宮歌) 속에는 토끼의 궤변에 속은 용왕이 오히려 토끼를 위해 수궁(水宮)풍류를 베풀어 주는 대목이 나온다. 이 대목에 명인들의 이름과 함께 여러 악기가 등장하는데, 지난주에 <봉피리>, <죽장고>, <거문고>, <옥통소>는 개략적으로 소개를 하였다.
특히, 거문고라는 악기는 한국 전통음악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게 쓰이고 있는 대표적인 현악기이기에 더욱 구체적으로 소개해 보도록 하겠다. ‘거문고’의 한자 이름은 현금(玄琴)이다. 이 악기는 고구려 시대로부터 전해오는 악기로 남쪽 가야국에서 유행했던 가야금과 함께 쌍벽을 이루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현악기다.
규방(閨房)의 여성들로부터 사랑을 받아 온 악기가 가야금이라고 하면, 거문고는 주된 향수 층이 거의 남성들이었다는 점에서 대조적이다. 특히 거문고는 선비들의 애호를 받아 온 악기로 그들의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전승 돼왔다. 그런데 수궁 풍류 속에서는 거문고를 탄 사람이 바로 중국 춘추시대에 금(琴)의 명인으로 알려진 성연자(成蓮子)인데, 여기서는 석연자로 소개하고 있다.
그가 거문고를 탔다고 하는 점은 사실과 맞지 않으나, 성연자의 금(琴)을 유사한 현악기, 거문고처럼 여겨서 여기에 끌어 드렸다면 그 분위기상으로는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거문고는 이름은 중국 악기가 아닌, 고구려의 악기 이름이라는 사실이다. 성연자가 탄 금(琴)이었다면 이는 5현금이나 7현금이어야 맞다.
참고로 중국에서는 금(琴)과 슬(瑟)을 대표적인 현악기로 꼽고 있는데, 부부(夫婦)지간의 정이 돈독할 경우, ‘금슬상화(琴瑟相和)’ 곧 ‘금슬이 좋다’라고 한다. 이는 두 악기의 어울림을 높게 인정하고 있다는 뜻이다.
중국의 <금>은 1현, 3현, 5현 7현 등등 다양하며 그 소리 내는 방법도 거문고와 같이 술대로 줄을 울리는 것이 아니라, 손가락을 쓰기 때문에 서로 다르다.
현재까지 전해오고 있는 거문고는 6현과 16개의 괘를 지닌 현악기다. 그 원형과 관련하여 4현 17괘로 보는 주장도 있기는 하나, 확실치 않다. 여하튼 거문고의 6현 가운데서 제1현, 5현, 6현은 가야금과 같이 줄을 안족(雁足), 곧 기러기발처럼 생긴 받침으로 버텨 세우고, 제2, 3, 4현은 16개의 나무로 만든 받침(이를 괘(卦)라고 부름) 위에 얹었는데, 곧 연필만한 크기의 대나무(이를 술대라 부름)로 소리를 낸다.
거문고의 6현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쓰이는 줄은 제2현의 맑고 부드러운 유현(遊絃)과 낮고 힘찬 음색을 표출하는 제3현의 대현(大絃)이다. 과거의 정악(正樂)곡 대부분은 거문고의 줄 이름이나 괘(卦)를 표기하여 문자악보, 또는 합자보와 같은 방법으로 전승되어 오기에 국악곡의 실질적인 전승이라든가, 음악사와 같은 학문적인 연구를 위해서는 거문고의 기보방법을 이해하지 못하고는 접근이 불가하다.
예로부터 선비란, 좌서우금(左書右琴), 곧 왼손에는 책을 들고, 오른손에는 금을 든다고 했다. 책으로 지식을 얻고, 금으로 마음을 바로 갖는다는 말처럼, 거문고만큼 상류사회, 또는 지식인 사회에서 애호를 받아 온 악기도 드물다. 지금까지 전해오는 고악보(古樂譜)의 대부분이 거문고 악보인 점을 보더라도 글을 아는 선비들이 악곡을 익히고 그 악곡이나 연주법을 기억하기 위해 또는 후대에 기록을 남기기 위해, 악보화할 수 있었던 능력을 갖춘 것이다.
신라 자비왕 때에 백결선생은 세모에 방아를 찧을 쌀이 없어 걱정하는 아내를 위해 거문고로 떡방아 찧는 소리를 내어 위로해 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는데, 이 <대악(碓樂)>이란 곡명이 실제로 거문고의 곡인지는 불분명하다. 자비왕은 5세기 말엽의 임금이고, 이 시기는 아직 신라에 거문고가 들어오기 이전이어서 아마도 가야금이거나 또는 다른 현악기가 아닐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