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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사람은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

무심거사의 중편소설 <열 번 찍어도> 26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그런데, 세상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우리나라는 남자들이 집에서 술 마시는 습관이 발달하지 않고 술집(옛날 같으면 기생집)에서 술을 먹기 때문에 술 시중을 드는 직업여성이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술집 여성과 남자 손님 사이에 여러 가지 형태의 남녀관계가 가능하지만 가정 파탄까지 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남자의 외도를 ‘바람’이라고 표현하였다. 남자의 바람은 일시적인 객기 정도로 취급하여 가정 파탄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바람이란 잠시 불다가 시간이 지나면 멈추는 것이니까. 유교 문화권에 속하는 우리나라에서 남자의 바람을 도덕적으로 크게 문제 삼지 않는 독특한 술 문화가 오랫동안 전통으로서 내려오고 있는 셈이다.

 

미국이나 유럽은 기본적으로 기독교 문화권이다. 기독교의 10계명에서는 남자의 바람을 죄라고 간주한다. 기독교 윤리에서는 남자의 바람을 용인하지 않는다. 서양에서는 일찍부터 파티 문화가 발달해 우리나라의 룸살롱이나 단란주점 같은 형태의 술집이 나타나지 않았다. 서양에서는 남자들이 퇴근한 뒤에 직장 동료와 함께 여자 있는 술집에 가서 한잔 한다는 그런 풍습이 없다. 특히 미국 남자들은 퇴근하면 쪼르르 아내 곁으로 달려간다.

 

한국 여자들이 볼 때에는 미국에서 살면 남편이 술 먹고 늦게 들어오는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남편의 술 때문에 속 썩이지 않고 살 수 있는 좋은 나라”가 미국이다. 그러나 미국에 정착하여 살고 있는 한국 남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그래서 미국은 살면 살수록 재미없는 사회”라는 불만이다.

 

그런데 서양의 술 문화에도 약점이 있다. 서양의 공공적인 파티에서도 눈이 맞는 남녀가 심심치 않게 생겨난다고 한다. 포도주라도 한 잔 마시고 음악이 흐르는 분위기 좋은 장소에서 남녀가 부딪치다 보면 불꽃이 튀는 것이다. 은밀하게 상사와 여비서, 교수와 대학원 학생, 남편과 이웃집 여자가 눈이 맞는 사건이 발생하여 가정 파탄까지 이르는 일도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한국 부인 처지에서는 꼭 한국식 술 문화가 서양의 술 문화보다 더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는 셈이다.

 

남자의 바람을 죄라고 간주하는 미국 사회의 이혼율이, 바람을 허용하는 한국보다 훨씬 높은 것은 파티 문화가 바람 문화보다 더 우수하다고는 말할 수 없는 근거가 된다. 하여튼 서양이나 동양이나, 남녀가 만나 술 마시면 가까워진다는 것은 막을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남녀의 만남이 발전되어 잠자리까지 이어지지 않도록 어떠한 형태로든지 억제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술을 먹지 않으면 된다’라는 것은 지극히 단순하며 성공의 가능성이 없는 해결책이다.

 

홀가분한 분위기 속에서 몇 차례 술잔이 돌다가 최 이사가 말을 꺼냈다.

“그런데, 김 이사님. 김 이사님은 존경하는 인물이 있습니까?”

“갑자기 술 마시다가 무슨 소리요?”

“저는 옛날에는 간디를 존경했었는데, 이제는 존경하는 인물이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누구를 존경한다는 말이요. 회사 사장이요? 마누라요?”

“그게 아니고요. 저는 얼마 전에 신문을 보고서 미테랑을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미테랑이라면 프랑스의 대통령 아니오. 그 사람 죽지 않았어요?”

“죽었지요. 그런데 신문기사를 읽어 보셨나요. 그 사람 정말 대단한 인물이던데요.”

“뭐가 그리 대단하오?”

 

 

미테랑은 지금 대통령 직전의 프랑스 대통령이었다. 미테랑은 피아노를 치고 시를 낭송할 줄 아는 낭만적인 남자였다. 프랑스에서는 문화를 진흥시킨 대통령으로서 인기가 높았다. 그런데 최 이사가 미테랑을 존경하는 것은 다른 까닭에서였다. 미테랑은 조강지처 부인과의 사이에 아들이 둘 있는데, 언론에 알려진 바로는 다른 여자(우리 식으로 말하면 첩)에게서 딸(우리 식으로 말하면 배다른 딸)을 하나 낳았다.

 

그의 장례식에는 본처와 첩 그리고 친자식과 배다른 딸이 함께 사이좋게 서있는 사진까지 보도되었다. 그는 죽기 직전 마지막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함께 이집트의 아스완 댐 근처 휴양지에서 보냈는데, 그 자리에는 첩도 함께 있었다고 한다. (아이고, 미테랑의 본처는 마음이 넓기도 하지!) 거기까지라면 최 이사가 미테랑을 존경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한다.

 

미테랑이 죽은 뒤 몇 달이 지나서 기자 출신의 한 스웨덴 여자가 책을 출판했다. 그녀는 책에서 자기는 미테랑의 애인이었으며 미테랑에게서 낳은 아들 하나를 아직도 소중하게 기르면서 혼자 살고 있다고 폭로하였다. 이 경우에는 폭로보다는 고백이라고 말해야 맞을 것 같다. 왜냐하면 미테랑을 해치려는 의도가 전혀 아니었기 때문에.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미테랑이 젊었을 때 외교관으로서 스웨덴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데, 그때 그 여인을 만났다고 한다. 그 여인은 나중에 언론사의 파리 특파원으로 근무하면서 미테랑과의 사랑을 오랫동안 이어갔다고 한다.

 

김 이사가 듣기에도 그 정도라면 같은 남자로서 선망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김 이사는 연애 결혼한 부인 하나만 해바라기처럼 바라보고 살아왔는데, 사십이 넘어 오십에 가까워 가는 지금까지 바람 한 번 피워보지 못했다. 그런데 미테랑은 공인된 첩 말고도 숨겨둔 애인이 있었다니! 더욱이 그 애인은 헤어진 남자를 원망하지 않고, 귀찮게 찾아가지도 않았다. 멀리 숨어 살면서 한때 사랑했던 남자에게서 얻은 아이를 혼자 길렀다. 출세한 남자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결심한 모양이다. 그녀는 이별한 뒤에도 조용히 살고 있다가 남자가 죽자, 이야기를 꺼냈다는 것이다.

 

김 이사의 생각에 미테랑은 정말로 멋진 남자였다. 미테랑은 한 때 사랑에 빠져 사귄 여자와 사랑을 완성하지 못하고 헤어지면서 여자를 서운하게 하지 않았다. 미테랑의 여자가 헤어지면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자가 한을 품거나 앙심을 품지 않도록 미테랑은 그녀가 바라는 것을 다 해주었을 것이다.

 

남녀가 만나 사랑을 시작하기는 쉽지만 아름답게 헤어지기는 어렵다. 남녀 간의 이별은 유행가의 가사처럼 슬프기도 하지만 자칫 추해지기 쉽다. 추하게 싸우면서 헤어지는 일도 있다. 그러나 미테랑은 사랑했던 여자와 아름다운 이별을 했나 보다. 우리나라에서 굳이 예를 찾자면 현대그룹의 창업주인 정주영 회장이 미테랑과 비슷한 사람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