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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우리 문화의 뿌리를 가꾼, 책바보 한창기

《책바보 한창기 우리 문화의 뿌리 깊은 나무가 되다》, 김윤정, 청어람미디어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p.89)

“사장님, 회사에 그만한 여유가 없습니다. 지금의 문화 사업만으로도……”

“윤 부장!”

창기는 자금 걱정을 하는 부장의 말을 잘랐습니다.

“사람이 말이지, 의미 있는 일을 하려면 돈을 낙엽처럼 태울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일세.”

그 말은 바로 창기가 돈을 버는 목적이기도 했습니다. 돈은 의미 있는 일에 쓸 수 있어야 비로소 가치 있는 거라고 창기는 굳게 믿었습니다.

 

한창기.

1976년 3월, 《뿌리깊은나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나온 잡지의 편집인이다. 《뿌리깊은나무》는 출판인 한창기의 오래된 꿈이었다. 어릴 때부터 좋은 책을 만들고 싶었던 꿈이 마침내 열매를 맺은 것이다.

 

김윤정이 쓴 이 책, 《책바보 한창기 우리 문화의 뿌리 깊은 나무가 되다》는 우리문화를 너무나도 아끼고 사랑했던 지성인이자, 책과 잡지를 발행하며 우리문화의 뿌리를 더욱 아름답게 가꾸었던 한창기의 삶을 다룬 책이다.

 

 

그의 삶은 여러모로 특별했다. 어릴 적 건강이 좋지 않아 학교에 업혀 다니면서도 공부를 너무나도 좋아했다. 촌음을 아껴가며 공부하고, 선생님에게 궁금한 것은 놓치지 않고 질문하는 열정으로 서울대 법학과에 당당히 합격했다.

 

워낙 공부를 잘해 으뜸 수재들이 가는 곳에 진학하긴 했지만, 어릴 때부터 꿈꾼 미래는 따로 있었다. ‘좋은 책 만드는 사람’이 되는 거였다. 법대생은 무조건 고시를 봐야 한다는 획일적인 생각이 싫었고, 가장 중요한 건 원하는 일을 하며 사는 것이며, 그건 바로 세상에서 가장 좋은 책을 만드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가 졸업하고 택한 첫 직업은 책 판매원이었다. 그때는 ‘월부 책장수’라 하여 집마다 돌아다니면서 책을 파는 경우가 흔했다. 온 집안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그가 변호사나 판사가 되지 않고 책 판매원이 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다행히 어머니는 그런 아들의 꿈을 이해하고 오롯이 지지해 주었다.

 

(p.51)

“어머니, 제가 브리태니커를 한국에서 팔고 싶은 이유는 첫째,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우선 제힘으로 돈을 벌어야 해서예요. 경제적인 독립은 중요하니까요. 두 번째, 그 책이 세계에서 가장 좋은 책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세계에서 가장 좋은 책을 한국에서 파는 첫 번째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땀 흘려 일해 돈을 버는 건 그 직업이 무엇이 됐든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걱정하지 말아 주세요.”

어머니는 말없이 창기의 손을 잡고 미소를 지으셨어요. 어릴 적 마당가를 서성이며 졸음을 쫓는 창기를 바라보던 그 눈빛 그대로였지요.

 

브리태니커 한국 판매권을 미국 본사에서 승인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미국 본사는 한창기가 너무 젊어 한국 시장을 믿고 맡길 수 없다며 거절했다. 그는 그동안 갈고 닦은 영어 실력을 발휘해 진심을 담은 편지를 미국 본사에 끈질기게 보냈고, 마침내 미국 본사는 한국 판매권을 허락하면서 아무 조건 없이 50질의 백과사전을 보내 주었다.

 

그러나 또 난관이 있었다. 영어교육도 흔하지 않던 시절, 브리태니커 사전은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이때 한창기는 미군 부대에 집중하여 판매하는 전략을 세웠다. 일반인에게도 개방된 곳은 화장실밖에 없었기에, 미군부대 화장실에서 미군들이 하는 얘기를 수첩에 적어가며 미군 장교와 친분을 쌓았고 마침내 미군 장교에게 한 질을 팔았다.

 

그것을 시작으로 책을 사는 사람들이 줄을 잇기 시작했다. 책이 좋아서이기도 했지만, 한창기에게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재능이 있었다. 마침내 미국 본사는 현지인은 지사장이 될 수 없다는 200년 관행을 깨고 한창기를 한국 지사장으로 임명했다.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브리태니커를 가장 많이 판매한 성실함과 탁월한 능력을 높이 산 것이다.

 

서른다섯 살, 젊은 나이에 브리태니커의 한국 지사장이 된 그는 주변에서는 더는 바랄 것이 없겠다고 했지만, 오히려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했다. 회사 설립 3년 만에 브리태니커 5천 질을 판매하는 기염을 토하면서도 자신의 꿈을 잊지 않았다. 브리태니커보다 더 좋은 책을 내 손으로 만들겠다는 꿈이었다. 그것도 아름다운 순우리말로 말이다.

 

마침내 1976년, 월간 문화종합지 《뿌리깊은나무》가 탄생했다. 《뿌리깊은나무》는 당시 여러모로 파격적이었다. 잡지 이름으로 여섯 자나 되는 한글을 쓴 데다, 한자나 영어가 단 한 자도 들어가지 않은 순우리말 잡지였던 까닭이다.

 

(p.72)

좀 엉뚱해 보이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뜻이 넓을수록 훌륭한 이름으로들 치는 터에, 굳이 대수롭잖은 ‘나무’를, 더구나 뜻을 더 좁힌 ‘뿌리깊은나무’를 이 잡지의 이름으로 삼았습니다. 우선 이름부터 작게 내세우려는 뜻에서 그랬습니다. 이 이름은 우리 겨레가 우리말과 우리글로 맨 처음으로 적은 문학작품인 『용비어천가』의 ‘불휘기픈나무..’에서 따왔습니다. (중략)

뿌리깊은나무》 창간사 가운데 -

 

 

그는 가장 한국적인 내용을 담은, 한글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읽을 수 있는, 일본 잡지를 모방하지 않은, 외래어로 얼룩지지 않은 품격 있는 순우리말 잡지를 선보이고자 했다. 워낙 파격적인 잡지로 인식되다 보니 처음에는 한자를 즐겨 쓰던 작가들이 원고를 주려고 하지 않았지만, 점차 잡지가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으며 생각을 바꾸게 됐다.

 

한창기가 장인정신으로 만들던 잡지, 《뿌리깊은나무》는 대학생이라면 누구나 옆구리에 끼고 다니며 볼 정도로 인기를 끌었고 어느덧 한국문화를 다루는 으뜸 잡지로 성장했다. 그 기세를 몰아 1982년 『뿌리깊은나무 판소리 전집』도 펴냈다. 수요가 없을 거라고 모두가 반대했지만, 한창기는 “의미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돈을 낙엽처럼 태울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라며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 우리문화를 알아보는 안목과 끝없는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렇게 명망을 쌓아가던 가운데 정부가 강제로 《뿌리깊은나무》를 폐간시키는 일이 일어났다. 언론사와 출판사를 탄압하던 서슬이 퍼렇던 시절이었다. 출판인의 긍지를 가지고 살아온 그는 큰 상처를 입었다. 출판사의 사정도 날로 어려워져 갔다. 이때 그는 경영난을 돌파할 승부수로 2년 6개월을 투자해 《한국의 발견》이라는 제목으로 모두 11권의 책들을 펴냈다.

 

언론과 학계의 호평이 쏟아졌지만, 책이 팔리는 속도는 더뎠다. 경영난은 심해지고 힘든 시간이 이어졌다. 그러나 굴하지 않고 곧 《뿌리깊은 민중 자서전》 20권도 펴냈다. 우리 역사를 살아낸 농부나 뱃사공, 길쌈 아낙과 같은 보통 사람들이 역사의 소용돌이에 맞서 자신의 삶을 지켜온 기록이었다. 한국 첫 가정 잡지인 《샘이깊은물》도 나왔다.

 

그에겐 우리문화를 알아가는 것이 취미이자 곧 일이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골동품을 구하러 다녔고, 수많은 소장품을 선보일 박물관을 짓고 싶어했다. 병마로 쓰러질 때까지 우리문화에 열과 성을 다 바쳤고, 병원에 입원해서도 《샘이깊은물》에 실릴 글들을 손보다가 1997년 62살로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2011년 11월, 박물관 건립을 염원하던 생전의 뜻이 이루어져 순천시립 ‘뿌리깊은나무박물관’이 개관됐다. 자신이 쏟은 열정에 견주어 세상이 알아주는 길은 아니었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꿋꿋이 좋아하는 일을 했던 ‘책바보’ 한창기의 유산을 만나볼 수 있다.

 

 

‘부’가 수단이 아닌 목적이 된 시대, 사회에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해 돈을 ‘낙엽처럼 태울 줄’ 알았던 그의 마음가짐이 더욱 빛난다. 뿌리 깊은 나무와 샘이 깊은 물처럼, 그가 우리문화에 가졌던 애정과 책임감도 그만큼 깊었던 것 같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샘이 깊은 물은 마르지 않고 바다로 흘러간다. 우리문화를 지극히 아끼던 그의 마음도 숱한 어려움에도 흔들리지 않고 바다에 이르렀다. 오늘날 그와 같은 인물을 다시 보고 싶다. 이 책을 통해 한창기, 그 사람이 품었던 꿈과 뜻이 더 널리 알려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