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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광복을 위해 몸 바친 이들을 생각하면

독립운동가 후손에게 장학금, 도산 안창호함 승조원도 참여
[이동식의 솔바람과 송순주 263]

[우리문화신문=이동식 인문탐험가]  올해 제79돌 광복절을 맞아 일제강점기 빛바랜 수의(囚衣)를 입고 옥중 순국한 독립유공자들에게 독립운동 정신을 담은 한복을 입혀드리는 운동이 추진중이다. 국가보훈부와 빙그레는 8월 한 달 동안 옥중에서 순국한 독립유공자 87명에게 인공지능기술을 활용해 한복을 입은 모습으로 변신시켜 새로운 영웅의 모습으로 기억될 수 있도록 하는 ‘처음 입는 광복’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이 운동에 포함된 독립운동가는 국가보훈부 공훈전자사료관 내에서 옥중 순국으로 기록된 독립운동가 가운데 일제감시대상 인물카드 등에 수의(囚衣)를 입은 사진이 마지막 모습으로 남은 87명이 대상이다. 이들 가운데는 안중근(1962년 대한민국장), 안창호(1962년 대한민국장), 강우규(1962년 대한민국장), 신채호(1962년 대통령장) 등의 독립유공자들이 포함되어 있다. 온라인 사진전(처음입는광복.com)에는 독립운동가 87명의 복원 전ㆍ후 사진과 인물별 공적이 정리돼 있다.

 

 

 

 

좋은 발상이지만 나라가 진정으로 챙겨야 할 데는 또 있다. 독립운동에 몸을 바친 분들의 후손들이다. 우리 주위에 독립운동에 헌신한 분들은 자신의 생명과 재산을 갖다 바쳤다. 후손들은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해 해방 이후 우리 사회의 빛을 보지 못했다. 그들의 다음 대 후손들이 이제 한창 교육받을 나이이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운 분들이 많다.

 

지난 6월 6일 현충일 오전 서울 대학로에 있는 흥사단 본부 강당에서는 조촐한 행사가 열렸다.

 

정면에는 2024년 독립유공자 후손 장학 증서 전달식이라고 쓴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행사를 주최한 곳은 흥사단 독립유공자후손돕기본부였다. 그 옆에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행사에는 장학생으로 뽑힌 독립유공자 후손 고등학생과 대학생, 학부모 등 80여 명이 참석했다. 장학금 지원대상으로 뽑힌 독립유공자 대학생 40명과 고등학생 25명 등 65명이 장학증서를 받았다. 고등학생들에게는 졸업까지 해마다 100만 원, 대학생들에게는 200만 원이 장학금으로 지원된다. 올해 지원된 장학금은 1억 5백만 원,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다.

 

“2005년에 시작한 사업이 벌써 근 20년이 되어 가네요. 이 본부는 참된 나라사랑을 실천한 독립유공자와 그들의 후손을 국가ㆍ사회적으로 예우하는 것이 우리 민족의 정기를 바로 세우는 것이라는 의미를 실천하고자 흥사단 내에서 뜻이 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2005년에 발족했습니다. 저희는 국고 지원 없이, 오로지 모금 활동과 후원 사업으로 해마다 고등학생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으며 2005년부터 2024년까지 모두 875여 명의 독립유공자 후손에게 모두 9억 2,500여 만 원의 장학금이 지원됐습니다.”

 

 

7년 전부터 흥사단 독립유공자후손돕기본부의 상임대표를 맡아오고 있는 이춘재씨는 감회에 젖는다. 장학생들이 학업의 과정에 많은 힘과 용기를 얻었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았다고 밝힌다. 코로나19 여파로 더 어려워진 경제 상황에서 힘이 되었고, 역사 과목에 더 관심을 가지며 공부했다는 일과 대한민국의 독립운동 역사를 세계에 더 알리고 싶다는 이야기, 그리고 조국을 배신하지 않고 일본에 빼앗긴 나라를 되찾기 위해 국내와 먼 이국땅에서 독립운동을 하신 조상의 용기와 진정한 나라 사랑을 더 자랑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는 소감도 편지에 담았단다.

 

지원받은 학생 가운데는 국내만이 아니라 고려인 등 나라 밖 후손도 있다. 이날 고등학생 장학생 가운데서 고려인 3세인 이크리스치나 학생은 “러시아에서 태어났지만, 나 자신이 독립유공자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자랑스럽다”라며 “할아버지의 마음을 이어가기 위해 더 열심히 생활하고 싶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2024년 올해에도 여러 분야의 평범한 시민들이 크고 작은 후원금들을 보내주었다고 한다. 후원하는 분들은 일반 시민부터 소상공인, 그리고 기업까지 그야말로 다양하다. 후원자 가운데는 고등학교로 진학할 때 사회에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중학교 때부터 용돈을 모아 50만 원을 보내온 학생도 있었다.

 

시민들의 소중한 후원 외에도 독립운동가 고(故) 월암 김항복 선생이 설립한 의류회사 ‘독립문’은 흥사단 독립유공자후손돕기본부와 후원ㆍ업무 협약(MOU)을 맺어 장학금과 물품을 꾸준히 지원하고 있다. 자동차 매트와 차량용품 개발을 선도하는 카마루를 포함해 금양산업,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신한은행지부, 위풍당당학원 등 여러 분야의 기업과 소상공인들의 후원도 이어졌다.

 

기업 외에도 해피빈ㆍ카카오같이가치ㆍ사랑의 열매, KT&G 등 사회의 여러 기관 단체가 독립운동유공자 후손 지원에 참여하고 있다. 여러 그룹의 대학생과 고등학생들이 텀블벅, 바자회 등 모금 활동을 통해 300만 원 이상을 기부한 적도 있었다.

 

특별히 우리 해군의 도산 안창호함 승조원 모두가 이 후원에 참여하고 있음이 이번에 알려지게 되었다. 행사에 참석한 이동영 도산 안창호함 함장은 “대한민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조국의 바다를 수호하는 해군의 일원으로서 독립유공자 후손을 위한 장학금 지원에 도움이 돼 기쁘다”라고 말했다. 3,000t급 잠수함인 ‘도산 안창호함’ 승조원들은 2021년부터 월급에서 일정 금액을 모아 월마다 독립유공자 후손들에게 장학금을 후원해 오고 있다.

 

 

 

이 운동을 주도하는 흥사단은 어떤 곳인가?

 

흥사단(興士團, Young Korean Academy)은 1913년 도산 안창호 선생께서 민족의 자주독립과 번영을 위해 창립한 단체이다. 올해로 창립 111돌을 맞이했으니 그야말로 한국사회의 근현대사를 가로지르는 시민단체라고 할 수 있다. 흥사단의 뜻을 풀면 사(士)를 일으키는(興) 단체라 하는데, 사(士)는 흔히 ‘선비’라고 풀지만 올곧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 혹은 그 정신을 의미한다고 하면 흥사단은 우리 사회를 지켜줄 올바른 정신을 가진 사람들을 일어나게 하는 단체이다.

 

도산 안창호 선생의 정신이 그것이었다. 그 정신을 이어받아 해방 전에는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흥사단 소속으로서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헌신한 공로로 서훈을 받은 분들이 180명에 이른다.

 

이춘재 상임대표는 말한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라는 말이 있는 것은 우리나라의 독립유공자들이 힘든 현실임을 의미합니다. 1945년 광복 이후, 역사를 바로 세우지 못한 일이 오늘까지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독립운동은 대한민국의 가장 자랑스러운 역사고, 우리는 3.1만세운동의 정신을 모아 상해임시정부를 수립하여 광복 이전까지 국권 회복을 위해 투쟁한 민족입니다. 독립운동에 관한 역사를 당당히 조명해 가야 합니다. 독립유공자 후손에 대한 지원도 가난해서가 아니라, 모든 것을 바쳐가며 투쟁한 독립열사들의 정신을 기리는 중요한 과정이기에 그들의 정신을 더 일깨우는 일에 우리가 나서지 않을 수 없습니다.”

 

 

 

독립유공자후손돕기 본부가 펼치고 있는 의미있는 사업으로는 독립유공자 후손의 노후 주택을 개선해 주는 ‘대한의 보금자리’ 사업이 있다. 탁영의 애국지사와 이정오 애국지사 두 분 후손의 주거환경 개선을 마쳤다.

 

탁영의 애국지사는 1922년 4월 강원 횡성군에서 태어났는데 1943년 10월 일제에 강제 징집돼 중국 난징지구 주둔 일본군 부대에 배속됐다가 대한광복군에 가담하기로 결심하고 일본군에서 탈출해 임시정부에서 독립군으로 활약했다. 이정오 애국지사는 전남 광주농업고등학교에 재학하던 1929년 11월 3일 광주에서 일어난 ‘광주 학생 항일운동’에 참여해 일본 경찰에 붙잡혀 옥살이를 하였다. 이들 애국지사는 광복 이후에 어려운 현실에 놓였고 그 후손들은 주거환경조차 어려웠다.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여건을 개선하는 사업은 후손들에게 너무나 현실적으로 필요하며 이런 일에 후원은 여전히 목마르다. 해마다 50명 이상에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지만, 장학금 신청자는 그 배가 넘는다고 이춘재 상임대표는 말한다. 그렇더라도 우리 사회에 독립운동의 역사와 값어치를 사랑하고 실천하고 참여하는 청소년과 시민들이 있어서 그만큼 독립유공자후손돕기본부 사업이 확대되고 있다는 것은 보람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춘재 상임대표는 몇 년 전부터 힘든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몸과 마음을 아끼지 않고 있다. 이 활동에 참여하는 모든 분의 마음을 기록해 세상에 이렇게 전해본다.

 

  

 이동식

 

전 KBS 해설위원실장

현 우리문화신문 편집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