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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석문학100리길' 답사기

해마다 피는 꽃은 같은데

효석문학 100리길 제4구간 답사기 (14)

[우리문화신문=이상훈 전 수원대 교수]  콘크리트로 포장한 길이 끝나면서 흙길이 나타난다. 작은 차 한 대가 겨우 다닐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길이 숲속으로 나 있다. 나는 사전 답사 때에 모닝을 운전하여 전체 구간을 다녀왔기 때문에 길 잃을 염려는 없었다. 우리가 이날 걸은 길은 평창으로 귀촌하여 살기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걷는 산길이다. 걸어가다가 나무가 나타나면 나무 이야기, 풀꽃이 나타나면 풀꽃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계속해서 숲속 길을 걸어가다가 보니 길가 손 닿는 곳에 빨간 산딸기가 많이 달려 있다. 크지는 않지만 따서 먹어보니 맛이 아주 좋았다. 우리들은 모두 산딸기를 따 먹느라고 걸음이 느려졌다. 동심으로 돌아간 우리들은 손이 빨갛게 물드는 줄도 모르고 산딸기를 따 먹었다. 좌우 양쪽으로 산딸기가 계속해서 나타난다. 문학길 제4구간은 산딸기 길이라고 이름 붙이면 좋겠다.


 


 

 

출발한 지 50분이 지나 10시 20분에 우리는 작은 쉼터에 도착하였다. 아마도 산에서 일하는 일꾼들을 위한 쉼터인 것 같다. 간식거리로 누군가 참외를 가져왔고 누군가 떡을 가져왔다. 황병무 선생이 막걸리를 두 병이나 사 왔다. 나는 술에 약한 체질이어서 막걸리를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진다. 일행 중에는 7학년이 많다 보니 술 마시는 사람이 몇 안 된다.

 

나는 평소와 달리 막걸리를 두 잔이나 마셨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시키지도 않는데, 판소리를 하겠다고 자청했다. 옥에 갇힌 춘향이가, 한양으로 올라간 뒤 편지 한 장 없는 이도령을 그리워하면서 부르는 슬픈 노래 <갈까부다>를 소리북 반주 없이 불렀다.

 

 

이십 분을 쉰 뒤 10시 40분에 우리는 다시 출발했다. 길가 오른쪽에 잎 모양이 특이한 나무가 나타난다. 대개의 나뭇잎은 길쭉한 타원이나 원형인데, 이 나뭇잎은 날개를 편 제비 모양이다. 우리말 이름은 백합나무 또는 튤립나무라고 한다. 꽃의 모양이 백합을 닮았기 때문이다. 백합나무 꽃은 나무 위에 달리고 색깔이 뚜렷하지 않아서 보통 사람들은 이 꽃을 보지 못한다. 고개를 들어 위를 바라보아야만 꽃이 보인다. 내가 사는 봉평면 면온1리 동네에도 백합나무가 두 그루 있다. 이날 우리가 문학길에서 본 백합나무는 아직 꽃이 피지 않았다.

 

 

 

칠곡사 입구를 지나면서 표지판이 나타나 우리를 뱃재 옛길로 안내한다. 조금 가다 보니 왼쪽에 하얀 비닐을 씌운 넓은 밭이 나타난다. 비닐 사이에 격자 모양으로 작은 구멍이 있고 새순이 올라오고 있다. 배추밭이나 감자밭에는 검은 비닐로 두둑을 덮어서 풀이 나지 못하도록 막아준다.

 

 

흰 비닐은 더덕을 재배할 때 씌운다고 한다. 더덕은 덩굴이 얽혀서 위로 올라가는데 햇빛을 잘 받아야 잘 자란다. 흰 비닐을 깔아주면 흰색이 빛을 반사하기 때문에 비닐 위에 있는 잎도 햇빛을 더 잘 받을 수가 있다고 한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몇 년 전에 봉평면 흥정계곡에 있는 산채연구소 소장님에게서 직접 들었다.

 

산길은 오른쪽으로 내려가더니 뱃재를 지나는 구도로와 만났다. 뱃재는 해발 470m나 된다. 초등학생인 효석은 이 고개를 땀을 흘리면서 넘었을 것이다.

 

 

뱃재는 배나무재라고도 하는데, 대동여지도에는 ‘이치(梨峙)’, 팔도여지도에는 ‘이현(梨峴)’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평창군 지명지》 방림면 편에 뱃재라는 말의 기원에 대한 설명이 나온다. 큰 배나무가 서 있었다는 설도 있고, 오래전 천지가 개벽할 때 그 언덕 정상에 배 한 척이 걸려 있었다는 설도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뱃재를 넘어 포장된 도로를 따라 조금 가다가 왼편 길로 들어갔다. 입구에는 평창군 공설묘원이라는 큰 간판이 서 있다. 십 미터쯤 걷다가 오른쪽으로 나 있는 산길로 접어들었다. 걷기 좋은 숲길이 다시 나타난다.

 

 

산길 왼편 쪽 바위틈 사이에 아주 예쁜 나리꽃이 피어있다. 나리꽃도 종류가 많아서 무슨 나리인지는 모르겠다. 옆에 있는 송향섭 선생에게 물어보니 털중나리라고 한다. 야생화 백과사전을 찾아보니 이렇게 설명되어 있다.

 

나리꽃은 꽃 이름으로 그 형태를 유추할 수 있는데, 하늘을 보면 하늘나리, 땅을 보면 땅나리, 중간쯤에 비스듬히 있으면 중나리라고 한다. 털중나리는 털이 많이 나 있으며 꽃이 중간쯤을 바라보는 나리이다.

 

제주도와 울릉도를 포함하여 높이가 1,000m 이하인 전국 각지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양지 혹은 반그늘의 모래 성분이 많은 곳에서 자란다. 전체에 잿빛의 잔털이 있으며, 키는 50~80cm이다. 잎은 어긋나며 피침형으로 녹색이다. 꽃은 6~8월경에 황적색으로 핀다. 꽃잎의 안쪽에는 자주색 반점이 있다. 꽃이 필 때 꽃잎이 뒤로 말리며 원줄기 끝과 가지 끝에 꽃이 1개씩 달리고, 1~5개가 밑을 향해 핀다.

 

나리꽃은 여러해살이 식물이므로 지금 꽃이 핀 자리에 내년에도 같은 꽃이 피어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길을 다시 올 것 같지 않다. 혹시 내년에 이 길을 걷는 다른 사람이 나타난다면 내가 본 나리꽃을 그 사람도 볼 것이다. 꽃은 같은 자리에 피어도 꽃을 보는 사람은 같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당나라 시인 유희이(劉希夷 651~680)가 지은 <대비백두옹(代悲白頭翁, 백발을 슬퍼하는 노인을 대신하여)>의 제4절은 다음과 같다.

 

年年歲歲花相似(년년세세화상사) 해마다 피는 꽃은 같은데

歲歲年年人不同(세세년년인부동) 해마다 보는 사람은 같지 않구나

 

천년도 훨씬 넘는 아주 오랜 옛날, 당나라 시인은 봄꽃을 보면서 내가 이날 느낀 감정을 비슷하게 느꼈나 보다. 그 시인은 이러한 느낌을 운에 맞추어 아주 멋지게 시로써 표현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