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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원의 우리문화책방

조선시대, 시각장애인 도우려 ‘명통시’ 설치

《우리 역사에 숨어 있는 인권 존중의 씨앗》, 김영주ㆍ김은영, 북멘토

[우리문화신문=우지원 기자]  

 

역사 속 세계는 약육강식의 세계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힘이 있는 자가 다스리고, 또 그 힘을 자식에게 물려주어 대대로 이어가는 것. 우리 역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권력과 경제력이 세습되면서 사회적 강자와 약자의 구분은 공고해졌다.

 

이렇듯 힘이 지배하는 구조에서도, 우리 역사에는 사회적 약자를 배려했던 흔적이 꽤 많이 남아있다. 가난한 사람, 신체적 장애가 있는 사람, 어린이 … 약육강식의 세계에서는 도태되기 마련인 이런 약자들이 사회에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가 갖추어져 있었다.

 

김영주와 김은영이 쓴 이 책, 《우리 역사에 숨어 있는 인권 존중의 씨앗》은 고려의 빈민구휼 기관이었던 ‘동서대비원’부터 조선의 죄수 보호 제도까지, 우리 역사 속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따뜻한 인권 존중의 모습을 담았다.

 

 

특히 굶주림을 해결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인권 존중 방식이었다. 흉년이 잦았던 옛날에는 굶어 죽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조선의 4대 임금 세종은 마을 관아마다 가까운 곳에 움막을 지어 음식을 무료로 나누어 주도록 했는데, 이것이 바로 ‘진제장’이다.

 

‘진제장’에서는 이름과 주소를 적은 간단한 확인 서류조차 배식하고 나면 곧바로 없애버렸다. 혹여 나중에 갚으라고 할까 봐 걱정했던 백성의 마음까지 헤아린 것이다. 진제장 근처에서 굶어 죽은 사람이 나오면 관리들을 엄하게 벌했고, 반대로 많은 백성을 구한 관리에게는 큰 상을 내렸다.

 

이런 ‘진제장’을 더 활성화하기 위해 관가의 사람들이 ‘진제장’ 옆에 초가집을 짓고 늘 관리했다. 먹을 것뿐만 아니라 베로 만든 옷도 나누어 주었는데, 정조 때는 ‘진제장’ 덕분에 전체 인구의 절반이 굶주림에 시달렸던 흉년을 무사히 넘겼다는 기록도 있다.

 

(p.23)

세종 때 영의정을 지낸 황희는 진제장을 많이 아꼈어. 강원도 감사로 있을 때도 직접 감시하며 잘못한 곳에는 엄벌을 내렸지. 또 스님들에게 진제장을 맡겨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굶지 않도록 살폈어.

호조판서 안순은 충청도에 심한 흉년이 들어 많은 사람이 죽자 그곳으로 바로 내려가 적극적으로 진제장을 설치했어. 특히 굶주린 백성들이 진제장을 믿고 찾을 수 있도록 수령이 직접 관리 감독하게 했지. 그래서 빠른 시간 내에 많은 사람들을 구했다고 해.

 

그런가 하면 시각 장애인을 돕기 위한 특수 관청도 있었다. 바로 ‘명통시’였다. ‘명통시’에서는 시각 장애인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나라의 안녕을 비는 경문을 공부하다가, 기우제처럼 나라의 큰 행사가 있을 때 경문을 읽고 쌀이나 베를 받았다. 이렇듯 국가 기관을 설치하여 장애인을 지원한 사례는 기록상 ‘명통시’가 세계 처음이라고 한다.

세종은 1448년, ‘재소자를 위한 5대 강령’을 만들기도 했다. 세종은 “감옥을 설치하는 것은 죄인을 징계하고자 하는 것이지, 사람을 죽이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재소자의 인권을 적극 보호했다.

 

이 강령들은 오늘날 읽어봐도 그 세심함에 감탄을 자아낸다. 해마다 4월부터 8월까지 재소자들이 마실 냉수를 새로 길어다 옥에 자주 넣어주고, 5월에서 7월 10일 사이에 한 차례 몸을 씻고 달마다 한 차례 머리도 감게 했다.

 

10월부터 정월까지 감옥 안에 짚을 두껍게 깔아 재소자들이 추위에 떨지 않도록 하고, 재소자들이 목욕할 때는 관리와 옥졸이 직접 감시해 도망치는 사람이 없도록 했다. 가장 놀라운 것은 죄인에게 나이 많은 부모가 있으면 휴가를 주어 한 해에 한 번씩 부모를 만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렇듯 세종은 15세기 인물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감옥에 갇힌 재소자의 권리에도 관심을 기울일 만큼 세심했다. 감옥의 표준 설계 지침도 만들어 겨울용 옥사와 여름용 옥사를 따로 두어 죄수들의 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했다니, 이쯤 되면 조선은 당대의 ‘복지 선진국’이라 할 만했다.

 

이처럼 우리 역사는 분열과 파란을 겪는 중에도 인권을 존중했던 기록이 많이 남아있다. 어느 나라나 피지배 계층은 고통을 겪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제도적 장치로 보호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백성을 수탈과 착취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따뜻하게 돌보아야 할 ‘인간’으로 인식한 것. 이것이 역사가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는 증거였을까. ‘진제장’이나 ‘명통시’처럼, 쉽게 접해보지 못했던 제도를 통해 인권 보호의 역사를 짚어볼 수 있는 훌륭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