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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최초의 여성 혁명가 이렇게 숨지다

[돌아온 개화기 사람들] 5

[우리문화신문=김선흥 작가]  1884년 6월 어느날 궁녀들이 비밀스러운 눈빛을 주고받으며, 살금살금 깨금발을 한 채 복도를 걷고 있다. 장지문 앞에서 발을 멈춘다. 숨을 죽인 채 창호문에 구멍을 뜷는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일까?

 

문 안에서는 고종 임금이 미군함 트렌턴호Trenton의 함장을 비롯한 사관생들을 접견하고 있다. 트렌턴호가 최초의 방미 사절인 민영익, 서광범, 변수를 뉴욕항에서 태운 후 6개월 동안의 항행 끝에 제물포항에 들어온 것은 1884년 5월 31일이었다. 그 배에는 조지 포크(George Clayton Foulk)라는 이름의 해군 소위가 동승했다. 당시 한국말을 구사하는 미국인이 천지에 오직 한 사람 있었으니 바로 조지 포크였다. 그도 그날 트렌호의 사관들과 함께 조선의 임금을 알현하고 있다. 그날의 일을 그는 7월 22일자 부모님전 상서에 이렇게 적고 있다.

 

“저희가 임금을 알현할 때 궁녀들이 창호문 뒤에서 우리를 엿보려고 안달하던 광경이 재미있었답니다. 알현했던 방은 사방이 창호 문이었답니다. 일분 정도마다 '푹!' 하고 창호지가 뚫리는 소리가 들려오더군요, 구멍을 내어 엿보려는 것이지요. 머리가 영리한 여자들은 손에 침을 발라 창호지를 적신 다음 손가락으로 구멍을 뚫습니다. 그러면 푹 소리가 나지 않기 때문이죠. 사방 창호 문짝에 이렇게 하여 뚫린 구멍들의 틈새로 까만 눈동자들이 빛나는 광경을 저는 볼 수 있었답니다.”

 

흑진주처럼 까만 눈동자를 빛낸 궁녀들이 누구인지 우리는 전혀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 ‘고대수(顧大嫂)’라는 별칭으로 불리던 궁녀가 끼어 있을 수도 있다.

 

고대수라…그녀는 누구인가

 

그녀는 그해 12월 1일 갑신정변이 일어나던 날 궁중에서 화약을 터뜨리는 일을 맡았던 여성이다. 김옥균에 따르면 그녀는 신체가 남자처럼 건장하고 완력이 남자 대여섯 명을 당해낼 만하여 왕비의 총애를 받아 가까이 모시는데 10년 전부터 수시로 궁중의 비밀을 김옥균에게 통보해 주었다. 김옥균에 포섭된 협녀(俠女)였던 것이다.

 

김옥균은 예전에 일본 여행 때 서양인을 통해 화약을 사왔다. 화약을 건네받은 고대수는 대통에 그것을 넣어 가지고 있다가 거사 당일 통명전(나라에 상례가 있을 때 사용하던 곳)에서 적시에 폭발시켰다. 김옥균 등이 우정국 개국 축하 연회장에서 거사 직후 창덕궁 침전에 들어가 고종과 명성황후에게 변란이 일어났으니 급히 피신해야 한다고 아뢰는 바로 그 순간에 폭약을 터뜨렸던 것이다. 폭음으로 공포감에 사로잡힌 임금은 김옥균 등의 말을 따랐다. 고대수는 결정적인 시각에 화약을 폭발시킴으로써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하였다.

 

혁명은 실패로 끝났고 관계자들은 나라 밖로 망명하거나 처형되었다. 조선 첫 여성 혁명가라 할 수 있는 고대수의 실명은 무엇이며 그 뒤 어떤 운명을 맞았을까?

 

 

궁금하고 또 궁금하지만, 아무런 기록이 없다. 혹시 궁녀 이우석(李禹石)이 아니었을까? 궁녀로서 처형된 유일한 사람이 이우석이었으니 말이다. 조하서 상궁이 전하는 말에 따르면 그녀는 이렇게 마지막을 맞았다.

 

“어느 추운 겨울날, 고대수는 대역죄인이라 쓰인 명패를 목에 걸고 서울 육모전 거리(지금의 종로)를 지나 형장으로 끌려갔다. 성난 군중들이 달려들어 쥐어뜯고 할퀴어 옷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수구문을 지날 때 머리에서 피가 흐르고 앞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치마폭이 떨어져 나갔으며, 왕십리 청무밭쯤에 이르렀을 때 군중들이 빗발치듯 돌멩이를 던지자, 머리가 깨지고 살이 찢겨 선혈이 낭자하더니 마침내 쓰러져 숨을 거두고 말았다.“

 

참고한 자료:

* 조지 포크의 1884년 7월 22일 자 ‘부모님전상서’

이광린, 《개화당 연구》, 일조각 1985

* 오마이뉴스 2024.2.5.일 자 기사 “갑신정변에 참여한 궁녀 고대수”(김삼웅)

 

 

기자정보

프로필 사진
김선흥 작가

전직 외교관(외무고시 14회), 《1402강리도》 지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