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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독백(獨白)으로 시작하던 노래, <제전(祭奠)>

{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756]

[우리문화신문=서한범 단국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애절한 서도좌창, <제전(祭奠)>을 소개하였는바, 이 노래는 남편을 저 세상으로 먼저 보내고 혼자 된 여인이 한식일을 당해 그의 무덤을 찾아가 음식과 술로 상차림을 하는데, 상 위에 올리는 각각의 제물과 그 위치, 등을 소개하였다.

 

오늘은 그 상차림 가운데 우리의 귀에 익숙치 않은 ‘함종의 약률’이라든가, ‘연안, 백천의 황(왕)밤 대추’란 무슨 말인가? 하는 이야기와 <제전> 앞부분에 독백형식의 넋두리 대목을 소개해 보기로 한다.

 

우선, 함종은 평안남도 강서군의 면(面)소재지로 알려져 있는 지역의 이름이며 약률(藥栗)이란 약이 될 정도로 몸에 좋다는 밤을 이른다. 우리가 알고 있는 충남지역의 ‘공주 밤’이라든가, ‘정안 밤’처럼 말이다. 또한 그 뒤로 이어지는‘연안, 백천의 황(왕)밤 대추’라는 말 역시, 연안이나 백천은 대추로 유명한 황해도 남부에 있는 연백군의 연안면과, 백천면을 가리키는 지역명이다. 그러므로 이들 지역에서 생산되고 있는 밤 같이 단단하고 큰 대추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처럼 서도지방에서 생산되는 몸에 좋다고 하는 약률 또는 대추 등을 제사상에 올렸다는 표현은 <제전>이 서도지방에서 생겨나 불러왔다는 지역적 친근감을 드러내고 있다.

 

참고로 함종이라는 지역은 1900년 무렵, 서도소리의 창법이나 가사를 정리한 김관준(金官俊)이 태어난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는 종래에 불려오던 서도소리의 노랫말들을 올바르게 바로 잡았다는 점, 그리고 서도의 독특한 창법이나 다양한 표현법들을 노래 속에 담아 왔다고 하는 점 등, 서도소리의 발전을 위해 많은 노력했던 인물로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처럼 그는 서도소리 전반에 능했던 인물이었지만, 특히 이전부터 전해오는 서도지역의 재담(才談)이나 부분적으로 구전되어 오던 <배뱅이굿>을 그의 아들, 김종조(金宗朝)를 비롯, 최순경(崔順景)이나 이인수(李仁洙)와 같은 제자들에게 전해 준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태어난 함종, 용강, 삼화 등의 3지역을 해안가로부터 선(線)으로 연결해 보면, 삼각형이 된다고 하여 이 지역을 “해서(海西) 삼연(三沿)”으로 불러왔다. 그런가 하면, 용강이라는 지역은 평안도의 대표적인 서도민요인 <긴아리>의 발생지로도 유명한 곳이다. <긴아리>는 “조개는 잡아 젓 저리고, 가는 님 잡아 정 들이자”, “바람새 좋다고 돛 달지 마라. 몽금(夢金)이 개암포 들러만 가소.”와 같은 노랫말로 이어가는 흥겨운 민요이다. 함종과 용강지역의 이야기가 다소 길어졌다.

 

이어서 서도의 좌창, <제전>이라는 노래는 현재, 그 첫머리를 “백오동풍(百五東風)에 절일(節日)을 당하여”로 시작되고 있지만, 예전에는 창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말(대사)로 인생무상을 강조하는 푸념조가 있었다.

 

 

그러니까 노래를 시작하기 전, 독백(獨白)형식의 넋두리로 분위기를 고조시킨 다음, 본격적인 창(唱)으로 이어갔는데, 지금은 이를 생략하고 곧바로 창으로 시작하고 있다, 경서도 좌창 가운데서 노래를 시작하기 전, 창극조나 재담, 연희극과 같이 극적인 분위기나 연극적 요소를 취하는 독백형식의 넋두리가 나오는 노래는 찾아보기 어려운데, 이 노래가 푸념조의 넋두리를 달고 있다는 점은 너무도 애절한 노래 분위기를 띄우기 위한 방법이었을까?

 

1950년대 전후, 활발하게 활동하던 서도의 명창들이 전해 주었다고 하는 독백형식의 넋두리 대목을 벽파(碧波)의 《가창대계》는 이렇게 소개하고 있다.

 

“아, 어제까지 성턴 몸이 오늘을 비롯하여 오한(惡寒)과 두통(頭痛)에 사지(四肢)가 아프니, 이 일이 가련치 않느냐! 오를 숨만 남아 있고, 내릴 숨은 전혀 없으니, 홍안가처(紅顔家妻- 아내의 얼굴만 붉어짐)요. 찾느니 냉수로다.

이내 한 몸에 태산 같은 병이 들어 침중(沈重, 병세가 위중하다)하니, 재산과 전곡(돈과 곡식)이 귀(貴)치 않고, 탕약 환약이 무효로다. 이렁저렁 며칠 지나 정신이 혼절(昏絶)하니, 세상의 공명은 꿈밖이로다. (중간부분 줄임)

인간이별 남녀 중에 날 같은 인생, 또 있는가?

천지로다 집을 삼고, 석침(石枕-돌베게)을 돋우워 베고 그린 듯이 누웠으니, 송풍(松風)은 거문고요. 두견성(杜鵑聲)의 노래로구나. 살은 썩어 물이 되고, 뼈는 썩어 황토되니, 삼혼(三魂-사람 몸속에 있다는 세가지 영혼) 칠백(七魄-7가지 넋)이 흩어지면은 친구 동생이 많다 한들, 어느 누구가 내 대신 가지. 북망산천아, 말 물어보자. 이 몸이 죽어서 돌아간 후에,”

 

이어 <백오동풍(百五東風)에 절일(節日)을 당하여>로 시작되는 본격적인 창(唱)이 이어지면, 이 노래를 듣게 되는 청자들의 마음은 벌써 소리꾼과 공감(共感)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다음 주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