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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 권한 `히로뽕`…60대 남편 구속


아내에게 권한 `히로뽕`…60대 남편 구속

 

“부산 사하경찰서는 6일 아내에게 히로뽕을 커피에 타 마시게 하고 자신도 같은 방법으로 투약한 혐의(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로 유모(62)씨를 구속하고 유씨 부인 김모(57)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에 따르면 유씨는 지난 1월21일 오전 7시께 부산 사하구 신평동 모 아파트 자신의 집에서 히로뽕 0.03g을 커피에 희석시켜 부인 김씨에게 마시게 하고 자신도 같은 방법으로 투약한 혐의를 받고 있다. -매일경제-” 

별 희한한 남편도 다 있다. 마약이 뭐가 좋은 것이라고 아내가 마시는 커피에다 히로뽕을 탔을까? 히로뽕! 잊을만하면 티브이에서는 하얀 마약가루 봉지를 책상 위에 주욱 진열해놓고 ‘증거1’‘증거2’와 같은 글씨를 써 붙여 마약거래 일당을 잡은 쾌거를 보도하곤 한다. 마약의 대명사로 불리는 ‘히로뽕’이란 말은 요사이는 ‘필로폰’이라고 완전히 바뀌었는지 알았더니 2010년 4월 8일 자 신문기사에서 여전히 ‘히로뽕’이라고 쓰고 있다. 마약에 대해 잘 모르는 어린 학생들이 이런 뉴스를 접할 때 ‘히로뽕’과 ‘필로폰’은 서로 다른 것으로 생각할 것 같다. 그 중 똘똘한 아이는 아빠가 사주신 국어사전을 찾아볼지 모르겠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보면, 

히로뽕(←<일>hiropon) ;「명사」『약학』=필로폰. 【<phillopon】으로 일본발음을 따른 것이라고 나와 있다. 이것을 본 아이는 퇴근하고 돌아 온 아빠에게 물을 것이다. 

아이: 아빠 히로뽕과 필로폰은 같은 말이야?
아빠; 응 그렇지 같은 말이지
아이; 그러면 왜 한 가지만 쓰지 두 가지를 다 쓰는 거야?
아빠; 히로뽕은 일본발음이고 필로폰은 영어발음인데 사람들이 편한 말을 쓰는 거지
아이; ......

사람들이 편한 말을 쓴다는 데야 할 말이 없지만 헷갈리기는 할 것이다. 히로뽕처럼 영어에서 들어 온 말들 가운데는 이렇게 일본발음을 따른 말들이 많다. 여자들이 지글지글 머리볶는 행위를 가리켜 예전 어머니들은 ‘빠마’라고 했다. 그러던 것이 ‘파마’로 다시 요즈음에는‘펌’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팬티도 처음에는 ‘빤스’라는 일본식 영어발음에서 ‘팬티’로 바뀌었으나 일부 어르신들은 여전히 ‘빤스’라고 하는 분도 있다. 그러나 자동차 바퀴의 ‘펑크’는 ‘빵꾸(빵구)’쪽이 훨씬 많이 쓰인다. 

페인트는 뼁끼통이라는 소설도 있듯이 ‘뼁끼’로 쓰이다가 요즈음은 거의 ‘페인트’로 굳어진 느낌이다. 그뿐만 아니라 콘크리트는 ‘공구리’로 많이 쓰였고 보일러는 지금도 ‘보이라’로 말하는 사람이 많다. 여성들이 많이 쓰는 화장품은 ‘구리무’ ‘구루무’라고 썼는데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동동구리무라는 것이 있어서 어머니는 세수하고 나들이 가는 날은 특별히 동동구리무를 검지 끝에 약간 묻혀서 손바닥으로 싹싹 비벼 내 얼굴에 발라주셨는데 그때 향기로운 냄새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둥둥둥 동동동 북을 치는 아저씨가 가져온 화장품이라 해서 동동크림-동동구리무가 되었다는 말은 언제 들어도 재미나다. 화이트닝 아이리페어, 모이스춰밸런스에멀젼, 포어케어후레시토너...같은 어려운 이름에다가 종류도 수십 수백 종인 화장품 시대에 비교하면 오로지 동동구리무 하나로 아름다움을 나타내야 하던 시절은 검소하다 못해 순박하던 시절이었다. 

히로뽕-필로폰 , 빤스-팬티, 빠마-펌, 보이라-보일러, 크림-구리무, 빵구-펑크, 런닝셔츠-난닝구, 뼁끼-페인트, 아까징끼-요드딩크, 비지네스-비지니스, 뉴요쿠-뉴욕...외래어를 그 어떤 발음으로 낼 것인가에 대해 왈가왈부 말이 많다. 정답을 내놓기는 쉽지 않지만 고치지 말래도 고쳐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어떻게 고쳐지고 있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영어권 사람들 발음에 가깝게 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왜일까? 답은 뜻밖에 간단하다. 

과거에는 거의 모든 외래어가 일본을 거쳐서 들어왔다. 그러다 보니 세계에서 영어 발음을 가장 못 하는 모음이 5개(반모음3개)뿐인 일본인들 발음을 그대로 흉내 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습다. ‘크림’ 발음이 되는 한국인이 ‘구리무’ 밖에 안 되는 일본인 발음을 그대로 따라 해왔으니 말이다. 일본발음을 따르던 미국영어 발음을 따르던 그게 그거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한반도를 침략해서 말과 글을 싹 쓸어 버리려 한 일제의 발음으로 외래어를 받아들이는 것은 썩 유쾌한 일이 아니다. 

아야어여우유으이, 애,얘,에,예,웨,왜,의.. 등등 벼라별 모음 소리를 다 낼 수 있는 말글을 가진 한국인이 혀가 안 돌아 가는 일본식 외래어 발음을 이제 더는 고집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더 바람직한 것은, 중국인처럼 외래어를 자기 식대로 표현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피아노(piano) : 钢琴 [gāng qín] /엘리베이터(elevator) :. 电梯 [diàn tī] /필로폰(Philopon) 春药 [chūn yào]……. 이런 식으로 외래어를 자기들만의 기호체계로 재편성하면 좋을 일이다. 

그래도 다행인 게 요즈음 갈라쇼: 뒤풀이공연, 하이파이브;손뼉맞장구, 카시트;아이안전의자, 아이젠; 눈길 덧신…. 식으로 고쳐나가는 일이다. 이런 것을 과거부터 쓰던 외래어에도 적용해보면 어떨까 싶다. 사람이름이나 땅이름 같은 거야 어쩔 수 없다지만 가능한 한 우리말로 바꿔쓰려는 노력쯤은 해보는 게 좋다. 정 어려우면 최소한 혀짧은 일본식 발음이라도 먼저 바꾸었으면 한다. 히로뽕보다는 필로폰으로 쓰는 것이 그런 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