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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13. 시조에는 명창이 없다?

 

 

 

 

 

“시조에는 명창이 없다.”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시조창이 너무 어려워서 경지에 오른 사람이 없다는 뜻일까 아니면 반대로 너무 쉬워서 모두가 명창이기 때문에 없다는 뜻일까. 시조창이라 해서 명창이 없을 리 있겠는가마는 이 말이 일반화되어 있는 것을 보면 필경 무슨 곡절이 있을 법하다.

조선조 전기부터 불리던 전문가의 노래가 가곡이라면, 이를 일반인들이 부르기 쉽도록 고쳐 만든 노래가 곧 시조창이다. 시조창을 부르기 시작한 시기를 학계에서는 대략 영조 무렵으로 보고 있다. ≪유예지≫를 비롯한 시조창의 악보는 순조 무렵부터 보이고 있는데, 이 악보를 분석한 결과 현행의 <경제 평시조-京制平時調>로 알려졌다. 경제란 서울 경기지방을 말함이고, 시조는 3장6구체의 시형에 가락을 얹고 장단을 붙여 부르는 노래를 말한다. <경제시조>의 대칭개념이 곧 <향제시조-鄕制時調>이다.

향제에는 지난주 소개되었던 충청지방의 <내포제>를 비롯하여 경상도의 <영제시조>와 전라도의 <완제시조>가 대표적이다. 그런가 하면 이미 고인이 된 석암 정경태 명창이 완제를 바탕으로 발전시킨 시조가 전국적으로 널리 애창되고 있어 이를 <석암제시조>로 부르고 있다.

어느 지방의 시조가 되었든 간에 시조는 장단이나 선율, 배자법, 생략법, 창법 등에서 시조만의 독특한 특징을 보이고 있는 노래이다. 예를 들어 장단의 특징이란 말은 시조에 쓰이고 있는 5박형과 8박형 장단이 불규칙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말하며 장단의 순서나 장고점의 순서도 임의로 변형시키거나 즉흥성을 용납하지 않고 있음을 뜻한다. 선율구조에 있어서도 4도 관계, 혹은 2도 관계의 간결한 진행이 중심이지만, 여기에 장식음과 요성(떠는 소리)의 표현이 다양하게 표출되어야 공력을 인정받게 되는 것이다. 그 외에도 배자법의 질서나 종지형의 형태, 마지막 음절의 생략법 등이 시조음악의 특징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시조창의 멋은 역동적인 창법에 있다 할 것이다. 그래서 그 소리가 맑고(淸), 한가로워야(閑) 하며, 길(永)면서 속이 차야(實) 하고, 그러면서도 처지지 않도록 높고(高), 가볍게 떠야 하고 (浮), 멀리까지 도달해야 하는 자연지세(自然之勢)를 그려내야 명창의 칭호를 얻게 되는 것이다.

시조를 즐겨 부르는 사람 많고, 부분적으로는 멋진 표현을 하는 창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지만 위의 종합적인 표현을 함축하고 있는 창자는 흔치가 않은 것이다.

이혜구 박사의《시조감상법》을 보면 재미있는 구절을 발견하게 된다.
 
"악보상으로는 간단하여 보이지만 시조처럼 시비가 많은 것도 없다.
원래 시조에는 명창이 없다 하지만, 유명하다는 갑(甲)이 방송한 후에는
을(乙)이 그것을 비난하고, 을(乙)이 하고 나면 또 병(丙)이 냉소하여
명창의 표준을 종잡을 수 없었다. 또 <경판(경제)시조>는 지름시조나
들을까, 그 평시조는 노랑목을 써서 듣기 싫다는 사람도 있고, <내포제
시조>는 단가제(短歌制)라고 깍는 사람도 있고, 전라도 시조는 사설시조를
치지 평시조는 안친다는 사람도 있고, <영판 평시조>가 꿋꿋하고 속 깊고
구성져서 평시조는 제일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왼 영판>은 너무
뻣뻣하여 경판을 섞은 <반 영판>이라야 듣기 좋다는 사람도 있어 각각 지방에 따라서 평가가 다르다” <이하생략>
 
윗글에서 경판시조는 서울 경기의 경제시조를 말한다. 노랑목이란 세청(細淸), 즉 가성인 속소리를 뜻하는 말이다. 그리고 영판은 경상지방의 시조이다. 향제라 해도 반드시 그 지방의 통일된 시조라 보기는 어렵다. 지방에 따라서는 더 세분화된 시조들이 많고 부르는 사람에 따라 또한 종잡을 수 없이 많은 갈래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시조음악은 늘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이처럼 시조창은 지극히 간결한 노래가 분명하지만, 자연지세를 표현하는 창법은 오랜 공력을 요구하는 매우 어려운 과정이다. 그러나 이에 못지않은 것이 평가의 기준잣대가 제각각여서 시조에 명창 없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회자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세상의 영욕(榮辱)이야말로 한낱 뜬구름에 불과한 것임을 조용히 일깨워 주는 시조인들의 노래가 시조창이라 한다면, 시조인끼리 상대를 서로 인정하고 신뢰하면서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려는 착한 마음씨부터 지녀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부터는 “시조에 명창 많다”는 말이 유행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