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청남도 금산은 인삼의 고장이다. 매해 인삼축제를 열고 있어서 이 기간 중에는 국내는 물론, 동남아를 비롯하여 세계의 각국에서 많은 사람이 금산을 찾고 있다. 또한, 금산군에서는 축제기간 동안 각 지방의 농악대를 초청하여 대대적인 농악공연을 계획해 놓고 있다. 특히 올해에는 농악의 실기뿐 아니라 <한국 농악의 미학>이란 주제로 전국 국악학 학술대회도 준비하고 있어 이 분야에 관심을 둔 학자나 연구자들, 그리고 전공하는 학생들이나 실기인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다. 개최일시는 10월15~16일 양일간 충남 금산의 다락원 소공연장에서 오전 10부터 열릴 예정이다. 그래서 이번 주부터 국악속풀이는 농악에 관한 이야기를 할까 한다.
언제 어디서 보고 들어도 한국인을 신명나게 해 주는 농악은 음악적인 요소뿐 아니라, 무용적인 요소와 연희적인 요소를 복합적으로 지니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농악이나 농악무는 농사와 관련하여 집단노동을 할 때, 작업의 능률을 올리기 위해서, 혹은 명절 같은 때에 흥을 돋우기 위해 연주하는 농민들의 음악과 춤인 것은 분명하다.
지방에 따라서는 이를 ‘풍물’ 또는 ‘풍장’이라도 하는데, 풍물(風物)이란 말은 풍악에 쓰이는 기물을 말하는 것이며, 풍장은 풍악이나, 풍류에 비해 보다 규모가 커서 야외에서 연주되는 질박한 음악이 아닐까 한다. 우리가 흔히 풍류라고 하면 줄풍류를 의미하는데, 줄풍류란 현악기 중심의 소규모 합주를 말함이다. 이는 양반네들이나 글공부하는 선비들이 사랑방에 모여 앉아 거문고, 가야금, 양금과 같은 현악기에 단소와 같은 악기를 곁들여 조용하게 영산회상과 같은 음악을 연주하거나 혹은 이러한 악기를 반주 삼아 가곡을 부르거나 시조창을 부르는 형태를 의미한다.
대풍류도 있다. 큰풍류라는 말이 아니라, 대나무 악기들, 즉 피리나 대금과 같은 악기들이 중심을 이루는 합주를 말한다. 대풍류는 줄풍류에 비해 규모도 크고 소리도 커서 주로 야외 행사에 쓰이거나 춤을 반주하는 데 쓰였다. 풍악이란 말은 대풍류와 통한다.
또한, 농악을 ‘굿’이나 ‘매구’, 혹은 ‘두레’나 ‘금고’ ‘취군’ 등 여러 명칭으로도 부르고 있다. 간단하게 살펴보도록 한다. ‘굿’이란 흔히 무격(巫格)신앙과 관련된 의식이나 연희를 가리키는 말이기 때문에 농악을 굿이라 부르는 것은 농악이 다양한 연희 이외에도 의식을 연출하는 데서 나온 말이라 할 것이다.
‘매구’란 분명치 않으나 절 걸립 농악을 중매구, 농악 연주를 ‘매구친다’ 라고 표현하는 점으로 농악의 딴 이름이 매구이고, ‘두레’라는 말은 요새 말로 협동노동 조직체라는 의미이다. 두레는 일감에 따라 김매기 두레, 풀베기 두레, 모심기두레 등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이러한 두레는 한 두 사람이 하는 음악이 아님을 알게 한다.
또한 ‘금고’(金鼓)란 쇠붙이 악기와 가죽악기의 합주라는 의미인데, 옛 전쟁터에서 북을 치면 전진하고 쇠를 치면 퇴각한다는 의미로 고진퇴금(鼓進退金)이란 용례가 있다. ‘취군’(吹軍)은 군악조의 씩씩한 가락을 연주한다는 의미라 할 것이다.
원래 농악은 마을마다 농악을 치는 악대, 즉 농악대가 자생적으로 조직되어 있어서 이들의 연주로 힘든 농사일의 능률을 올려주기도 하고, 추수가 끝난 후에는 부락민들이 함께 무리지어 즐기던 전통적인 연희요, 춤이며 음악인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농악은 민속놀이화 되어 명절 때나 마을의 의식행사, 또는 연희행사에는 반드시 연주되어야 하는 종목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처럼 농악은 오래전부터 한국인의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 잡아온 장르임이 틀림없다.
나라는 몇몇 지방에 전승되어 오는 농악을 무형문화재로 지정해 놓고 있으며 그 정통성이나 예술성에 대한 보존과 전승활동을 돕고 있다는 점도 우리가 잘 있는 터이다.
1965년도에 진주, 삼천포지방의 농악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하기 위해 박헌봉, 유기룡이 제출했던 신청서를 보면 이미 1960년대에 벌써 많은 가락을 잃어버렸으며 남아있는 것도 변질이 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농악계의 원로들이 타계하면서 후대 사람들이 명분 없이 변조시키고 있는 점 등, 당시의 농악이 처해있던 상황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농악은 12차의 기본적 악장 밑에 많은 가락이 따르고 있으며 (대개 36가락) 여기에 진법을 형용 상징하는 허다한 율동적 무용이 추어지고 있다. 그러나 농악의 기본을 이룩하는 이 12차와 많은 원래의 가락들은 그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지 못하고 오늘에 와서는 거반 반수 이상의 차(次)와 가락이 모두 없어지고 남은 것마저도 나날이 변질되고 있는 것이다. 돌이켜 생각하건대 이 원인은 일제시대에 근거 없이 위축되었고 희소한 보유자마저 점차 사망하고 더구나 근래의 무정견(無定見)한 자작 변조 또한 이에 대한 방치가 그 큰 까닭인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