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보 가운데 음의 길이와 높이를 나타낼 수 있는 것을 유량악보라고 합니다. 그에는 서양의 오선기보와 세종이 창안한 동양 최초의 정간보(井間譜)가 있습니다. 고려시대부터 써온 것으로 보이는 율자보(律字譜)ㆍ공척보(工尺譜) 같은 것들은 음 길이를 나타내지 못하는 흠이 있어 이런 흠을 없애려고 절대음감의 소유자인 세종이 만든 것이 정간보였지요.
세종 때 만든 정간보는 1행 32 간(間)을 ‘우물 정(井)’ 자 모양으로 칸을 질러놓고, 한 칸을 1박으로 쳐서 음의 길이를 나타낸 것입니다. 세종은 “아악은 본래 우리 음악이 아니고 실은 중국 음악이다. 우리 조상이 살아서는 향악을 익숙하게 듣다가 죽어서는 제사 때 아악을 들으니 잘못된 일이다. 따라서 제사 때에도 향악을 연주해야만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자주적인 정신을 가졌기에 세종은 정간보를 만들었던 것입니다. 이 정간보를 이용한 악보에는 <세종실록악보>ㆍ<금합자보(琴合字譜)>ㆍ<양금신보(梁琴新譜)>ㆍ<대악후보(大樂後譜)>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서양 음악의 오선기보는 9세기 말부터 시작하여 17세기 초까지 700여 년이라는 긴 시간을 거치면서 만들어진 것에 견주어 세종이 만든 정간보는 그보다 훨씬 짧은 시간에 만들어진 유량악보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