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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범 교수의 우리음악 이야기

45. 전통음악의 음 배열은 서구의 현대 음악과 비슷하다

   

 

지난주에는 일본음악 연구자로 매우 유명한 윌리암 맘(WillamMalm) 교수의 논평을 소개하면서 한국문화는 중국과 일본의 두 문화와 병행하여 형성되었다는 말의 배경을 음미해 보았다. 지정학적으로 중국과 일본에 이웃하고 있으면서도 중국이나 일본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음악문화권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 그의 감정 결과였다.

그의 논평문에는 한국의 피리와 대금이라는 악기 이름이 나오는데, 피리의 종류는 향피리, 당피리, 세피리가 있고 이들이 각각 어떤 음악에 편성되는가 하는 이야기도 해 보았다. 이번 속풀이 <45>에서는 대금이라는 악기의 소개부터 시작해 보겠다.

대금이라는 악기는 신라의 3죽 중에서 가장 굵고 긴 형태의 가로 부는 젓대 또는 저의 이름이다. 신라의 3죽은 대금(大) 중금(中) 소금(小)이다. 삼국사기 악지에 기록되어 있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신라 신문왕(神文王)때 동해 가운데 작은 산이 떠다니고 그 산 위에는 대(竹)가 한 그루 있는데 낮에는 둘로 나뉘고 밤에는 하나로 합쳐지는 것이다. 그 연유를 알아본즉, 소리로써 천하를 다스릴 상서로운 징조이니 이 대나무로 저를 만들어 불면 천하가 화평해진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 대나무로 악기를 만들었다. 과연 이 저를 불면 적병이 물러가고, 질병이 쾌유하고, 가뭄엔 비가 내리고, 장마는 끝나며, 바람이 자고 물결이 평온해져서 이를 만파식적(萬波息笛)이라 부르고 국보로 삼았다”

믿기지 않는 전설 같은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에 전래하는 악기 중 관악기는 줄잡아 20 여종을 헤아린다. 그러나 대금처럼 우리의 폐부를 깊숙이 찔러오는 음빛깔도 드물다. 악기를 만드는 재료는 물론 대나무이다. 대나무 중에서도 오래 묵은 황죽(黃竹)이 좋고 쌍골죽이면 더더욱 좋다. 그러나 쌍골죽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대금은 김 넣는 강도에 따라 강약을 구분한다. 아래 음역의 소리들은 부드럽고 순하게 김을 넣는 저취법으로 불어야 한다. 중간 음역은 평취법, 그리고 높은 음역은 강하게 김을 넣는 역취법으로 발음해야 크고 장쾌한 소리를 얻을 수 있다.

한 악기가 김을 넣는 강도에 따라 전혀 다른 음빛깔을 낼 수 있는 점도 이 악기의 특징이지만, 크고 작은 합주음악에는 조율의 기준이 된다는 점이나 국악 전반에 다양한 용처를 지니고 있는 점도 이 악기의 장점이라면 장점이 된다. 무엇보다도 대금은 청 울림에 의한 음빛깔이 일품이다. 그래서 독주 악기로도 자주 활용되고 있는데, 평조회상의 제1곡 ‘상령산’이나 ‘청성잦은한잎’은 널리 알려진 대금의 독주악곡 들이다.

조선조 고종때, 대금의 명인이었던 정약대(鄭若大)에겐 교훈적인 일화가 전해 온다. 그는 매일 인왕산에 올라 대금을 불었는데, 한 곡조가 끝나면 그가 벗어놓은 나막신에 모래 한 알을 넣고, 또 한 곡조를 불고는 모래 한 알…, 이렇게 해서 종일 계속하여 그의 나막신에 모래알이 그득히 차야만 하산(下山)을 했는데, 어느 날 그 나막신에서 이름 모를 풀 한 포기가 돋아났다고 한다. 정성을 다한 그의 노력에 신이 미소를 지은 것일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명인의 길이 얼마나 멀고도 험한 길인가를 위의 일화는 잘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다시 국악이란 항아리를 들고 네 번째 감정가인 로마 악단의 지휘자 펫사노를 만나보기로 한다.
     
“참으로 깊은 감명을 받았다. 여러 나라의 고전음악이나 민속음악을 많이 들어보았지만, 한국의 전통음악처럼 독창성(originality)이 풍부한 음악은 처음이다. 한 마디로 시(詩)적인 음악이다. 음의 배열도 서구의 현대 음악과 비슷하다.”

아직도 많은 한국인 가운데에는 마치 전통음악은 ‘낡은 구시대의 유물’ 또는 어느 ‘특수 계층이나 집단이 지켜가면 되는 대상물’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는 놀랍게도 한국의 전통음악이 시적인 음악이며 서구의 현대음악과 비슷하다는 점을 시사해 주고 있는 것이다.

수제천이나 종묘제례악과 같은 정악이나, 또는 산조나 판소리와 같은 민속음악이 장단이라는 틀을 유지하면서도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선율을 이끌어 나가는 진행을 이해한다면 펫사노의 말처럼 서구의 현대음악과 비슷하다는 표현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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