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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 시가현 오오츠시에 있는 고대한국 온돌 유적지

   

 가을의 오오츠는 곳곳의 단풍으로 길손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곳이다. 고구려 스님 혜자의 제자인 성덕태자가 지은 천년고찰 백제사(百濟寺, 滋賀 東近江市)는 일본의 이름난 단풍명소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곳이다. 뿐만 아니라 오오츠 시내에 자리한 삼정사(三井寺)와 신라선신당(新羅善神堂)도 이제 슬슬 단풍으로 곱게 물들을 것이다.

오오츠의 유명한절 삼정사를 부흥시킨 사람은 지증대사 원진(円珍, 814-891)으로 그의 어머니는 신라계 홍법대사 공해(空海,774-835)의 조카딸이다. 오늘 이야기는 삼정사 이야기가 아니라 삼정사가 있는 오오츠에 살다간 고대 한국인들에 대한 유적지인 온돌터 이야기이다.

알다시피 일본의 방은 다다미라고 해서 우리네 돗자리 같이 풀로 엮은 방바닥을 사용하고 있으며 중국은 지역마다 다르긴 해도 일반적인 형태는 침대이다. 한·중·일 세 나라 가운데 한국의 난방형태는 온돌로 바닥을 돌로 데워 장시간 그 온도를 유지하는 형태이며 방안 전체가 따뜻해 세 나라의 난방법을 다 경험한 필자로서는 한국의 난방법이 탁월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과거 일본과 중국의 난방을 말하자면 난로(벽난로)나 고다츠(난로의 일종) 같은 것이었으므로 방 전체를 훈훈하게 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벽난로나 난로 등은 그을음이 방안에 남는 단점이 있다. 반면 온돌은 돌을 달구고 그 연기를 굴뚝으로 빼버리므로 방안은 항상 깨끗한 상태에서 난방을 할 수 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온돌 난방은 상당히 과학적이며 열효율 면에서도 뛰어난 난방법이다.

비록 요즈음은 아파트 생활이 보편적이지만 온돌 원리를 응용하여 보일러라는 형식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만 봐도 한국인의 온돌사랑은 지극하며 온돌은 날로 진화되고 있다. 온돌은 현대 과학으로 분석해도 가장 뛰어난 난방법이라고 하지 않는가? 근래에 일본에서도 유카담보(床暖房, 온돌‘オンドル’)가 인기인데 온돌이야말로 한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 요소이며 조상들의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천년고찰 오오츠(大津)의 삼정사를 나와 신라선신당으로 가는 길목에는 고대한국의 “온돌유적 터”가 생생히 남아 있는데 오오츠시역사박물관(大津市歷史博物館) 앞을 찾으면 훨씬 찾기 쉬울 것이다. 현재 이 유적은 오오츠시의 북쪽외곽지역에 있던 온돌을 이전 복원해 놓은 것으로 일찍이 이 일대에는 고대 백제계(百濟系)가 집단 거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곳에서는 횡혈식석실분(무덤), 부엌, 솥, 시루 등의 부엌용품이 부장품으로 다량 발굴 된 바 있다.
 

아무렴! 고국을 떠나 산다고는 하지만 고국에서 해먹던 먹을거리며 입을 옷과 겨울을 나기 위한 따뜻한 온돌방을 왜 버렸겠는가! 신라선신당을 찾아 나서면서 만난 고대 한국의 온돌유적터에서 필자는 한참동안이나 신라, 백제인들을 떠 올리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이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백제사며 서교사, 삼정사, 신라선신당을 차례로 떠 올렸다.

아쉬운 것은 안내판에 ‘도래인(渡來人) 들이 건너와 살았던 흔적이다’라고 썼는데 그렇게 모호한 표현을 거두고 분명하게 ‘고대한국인’이라고 했으면 하는 점이다. 도래인(渡來人)이라고 얼버무려 놓으면 중국인인지 한국인인지 아리송해지는데 ‘온돌유적’은 누가 뭐래도 명백한 한국인들의 삶의 흔적이다. 안내판을 쓴 사람들도 뭔가 찜찜했는지 끝에는 “이러한 온돌은 현재 조선반도에서 쓰는 난방법이다”라고 써 놓고 있다.

내친김에 한 마디 더 한다면, 일본 내 고대한국 관련 유적지는 항상 이러한 식이라서 씁쓸할 때가 많다. 다행히 온돌 같은 것이야 바로 보고 고대한국의 유적지임을 알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은연중에 ‘도래인’을 ‘중국인’과 연결 시켜 놓은 곳이 대부분이다. 역사적 사실을 투명하게 밝히지 않고 흐리멍덩하게 기록하는 것은 자국민의 역사의식에 콩깍지를 씌우는 일이다. 발로 쓴 답사기인 ≪신 일본 속의 한국문화 답사기≫를 펴내면서 일본은 언제쯤 솔직한 역사 그대로를 안내판에 써 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