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이윤옥 문화전문기자] 가 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낯선 친구 만나면
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
천안 삼거리를 지나도
수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
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절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카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리(千里), 먼 전라도 길.
-소록도 가는 길, 한하운-
인터넷 상에서 한 누리꾼이 한하운의 시 가운데 ‘지카다비’를 물었다. 그러나 답글이 모두 시원찮다. 도대체 ‘지카다비’는 무엇일까? 문둥이시인으로 알려진 한하운은 본명이 태영(泰永)이고 함경남도 함주 출생이다. 중국 베이징대학 농학원을 졸업한 뒤 함남도청에 근무했으나 문둥병의 재발로 사직했다. 한하운은 자신의 처지를 담담히 엮어낸 1949년 《한하운 시초(詩抄)》, 《보리피리》등을 통해 천형(天刑)의 병고를 구슬프게 읊어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
▲ 조선인강제노역의 현장 교토 단바망간탄광입구에서 한일평화답사단과 함께(2010.8.11)
여기서 “지카다비, 地下足袋”는 일본말인데 “신발겸용버선”이다. 앞에 치카(地下)를 빼고 다비(足袋)만을 말하면 우리의 버선에 해당한다. 한하운 시인이 살던 시기는 지금처럼 양말도 신발도 흔치 않았던 시대이다. 양말을 신고 그 위에 구두를 신는 요즈음은 “지카다비 = 신발겸용버선”을 살던 시대에 비하면 호강이다.
지카다비는 《표준국어대사전》에는 안나온다. 노가다(막노동, 막일꾼), 사시미(회) ,달인, 택배 같은 말은 나오면서 이 말은 없다. 지카다비는 버선 밑바닥에 얇은 고무를 붙여서 따로 신발을 신지 않아도 되는 이른바 신발겸용버선으로 예전에 흙일이나 노동 할 때 일본인들이 신던 신이다.
이 지카다비는 지금은 마츠리(일본 축제) 때 가마꾼들이 주로 신고 있다. 한자로 “地下”라고 쓴 것은 곧바로 직접 버선발을 땅에 댄다는 일본말 지키(直,じき)가 변해서 지카(直,じか)가 되어 ‘지카’와 소리가 같은 ‘地下’라는 한자를 쓰게 된 것이다.
▲ 지카다비(신발겸용버선) |
지카다비라는 말을 들으면 글쓴이는 일본 교토 단바망간탄광을 잊을 수가 없다. 당시 이곳은 강제연행된 조선인들이 망간을 캐던 곳으로 현재는 기념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교토시 우쿄구(右京区) 케이호쿠시모나카쵸(京北下中町)에 있는 단바망간기념관을 찾은 것은 2010년 8월 11일 수요일 오전으로 이 해는 국치 100주년을 맞는 해였다. 치욕의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게 되길 바라는 뜻에서 한일평화역사단 45명을 꾸려 당시 조선인강제 노동 현장을 찾아 갔던 것이다.
지카다비를 신고 평생을 이 탄광에서 허리 한번 펴지 못하다가 진폐증으로 죽어간 조선인들의 노역현장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처참하고 열악한 환경이었다. '지카다비'를 신고 죽음의 탄광노동을 하다 숨진 조선인들이 꿈꾸던 세상은 과연 무엇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