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하여 13억 중국인을 뒤흔든 정율성 |
중국 서안 팔로군기념관[八路軍西安辨事處紀念館]을 찾은 것은 폭염이 내리쬐던 6월 25일 오후였다. 가만히 있어도 등줄기에 땀이 줄줄 흐르는 서안의 무더위 속에서 팔로군 기념관을 찾은 것은 일제국주의의 아시아 침략의 역사를 기억하고자 하는 뜻에서였다. 그러나 더욱 특별한 것은 이곳 서안의 팔로군기념관에는 조선인으로 중국의 공식 군가인 '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한 정율성의 자취가 있기 때문이다.
팔로군기념관은 원래 팔로군의 본부이자 공산당 혁명의 근거지로 이 건물은 《중국의 붉은 별》저자 에드가스노의 아내인 헬렌포스터의 소유였다. 헬렌은 건물의 외관을 병원으로 위장하여 팔로군에세 활동공간을 제공하였는데 내부는 당시의 활동상을 보여주는 회의실, 침실, 훈련실 따위를 재현해 놓았다. 기념관 첫방에는 모택동 사진이 걸려 있으며 각 방마다 당시 팔로군 지휘자들의 사진과 항일전쟁 당시의 상황을 담은 사진과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고 지하 비밀방도 있다.
2009년 10월 1일, 중국은 건국 60주년을 맞아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성대한 기념행사를 열었는데 이때 후진따오 주석을 비롯한 전·현직 최고지도자들이 모인 중대 국가 행사에서 중국의 위용을 알리는 13억 중국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이날 행사장에 울려 퍼진 중국의 공식 군가인 '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한 사람은 다름 아닌 조선인 정율성(鄭律成, 1914∼1976) 이다.
▲ 정율성의 자취가 서린 중국 서안 "팔로군기념관"
정율성은 곡을 만들 때 중국 각지를 돌며 민중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창작의 바탕을 삼고 그것을 음악으로 승화시켰다. 그는 생전에 <옌안송>, <연수요>, <망부운> 등 수많은 오페라, 항일가요, 군가, 서정가곡, 민요, 동요 등 여러 장르에 걸쳐 총 360여곡의 주옥같은 작품을 남겼다. 중국은 그를 위대한 음악가이자 위대한 독립운동가로 기억하고 있다.
한편 중국의 3대 작곡가로 불리는 정율성 선생의 생가인 광주시 동구 불로동 163번지는 연일 중국 관광객들이 찾아오는 새로운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고 한다. (사)정율성기념사업회(회장 강원구)에 따르면 지난해 2만1000여 명의 중국 관광객이 정율성 생가를 방문했고, 올해는 약 2만5000여 명이 찾을 예정이라고 한다.
중국인이라면 모두 기억하는 ‘해방군가’는 중국 공산당의 항일혁명 투쟁 시기인 1939년 창작된 ‘팔로군 행진곡’에서 시작된 것으로 작곡가인 정율성 선생은 2009년 중국 정부에 의해 ‘신중국 창건 100대 영웅’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그가 태어난 광주 남구 양림동 생가 터는 출생지 표지가 세워지고 생가 앞 약 100m쯤에는 2008년 ‘정율성로(路)’가 광주시와 남구청에 의해 조성됐다. 광주시와 자매도시 관계를 맺고 있는 광둥(廣東)성 광저우(廣州) 시의 정율성 선생을 추모하는 시민단체에서 기증한 동(銅)으로 제작된 흉상도 ‘정율성로’ 입구에 세워져 있다.
▲ "팔로군기념관"을 둘러보는 관람객들 |
1914년 광주에서 태어나 1933년 중국으로 건너간 정율성은 1950년 중국 국적을 취득했다. 1976년 12월 사망한 후에는 베이징(北京)의 ‘바바오산(八寶山) 혁명묘지’에 묻혔으며 2011년 사망한 부인 정설송(丁雪松) 여사와 합장되어 있다.
정율성 선생이 그 유명한 '인민해방군가'를 작곡했지만, ‘조선의용군행진곡도 작곡했다. 그가 한국인으로서 13억 중국인을 뒤흔든 작곡가가였다는 점에 뿌듯한 자부심을 느낄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제 광주에 가면 정율성의 생가를, 중국 서안에 가면 팔로군기념관 들러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