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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민족

[그린경제  = 황명하 호주광복회장]  


호주에서 광복회 회장으로 민족의 자존심과 얼을 심어주고 있는 황명하(黃明夏) 회장께서 68주년 광복절을 맞아 “호주에서 부르는 광복군 아리랑 글을 기고해 왔다. 황 회장의 아버님은 그 유명한 ‘일본인에게 고함 (1944년 7월)’이라는 격문을 지은 광복군 출신 황갑수(黃甲秀 :1921~2009) 애국지사이다. 아버지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황 회장의 나라사랑 정신은 이역만리 호주 땅에서도 투철한 역사의식으로 다시 피어나고 있다.

힘겨운 이민 사회 속에서도 고국의 역사와 불굴의 정신으로 일제강점기를 살아 낸 독립운동가들의 정신을 알리는 일이라면 팔을 걷어 부치고 앞장서서 솔선수범함으로써 오늘날 호주동포들의 나라사랑 정신을 북돋우는데 큰 힘이 되고 있다. 호주 시드니 한인 동포들은 세계 한인 디아스포라(Diaspora)중에서도 모범적인 한인 동포로 평가받고 있으며 시드니 동포는 약 12만 명, 호주 전체로는 20여만 명으로서 재외동포 다수 거주 국가 순위 6위국이다.  -편집자주-

  광복군과 나

광복군하면 아련한 기억부터 떠오른다. 초등학교 입학 무렵, 시골집 벽장에 있던 태극무늬가 붙은 군모와 누런 군복을 보면서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학병으로 강제징집된 선친이 일본군을 탈출하여 광복군으로 활동하던 시절의 물건들이었다. 그후 광복군 동지인 김상학 선생이 광화문에서 운영하던 덕수제과에 자주 따라가 강익진, 최덕휴, 이경훈 선생 등을 뵈었다.

중학교 때는 우이동으로 간 광복군 야유회(?)에 동행하기도 했다. 지청천 장군의 묘소에 이르러 어느 분의 "사령관님께 대하여 경례" 구령에 맞춰 거수경례를 했는데, 그 진지한 눈빛과 엄숙한 분위기만은 지금도 선연하다. 1980년 초 모 기업체 교육부에 근무할 때가 광복회 독립정신홍보위원회의 활동이 한창이었는데, 장호강 홍보위원을 사원교육의 초청강사로 여러번 초대하여 가까이에서 모신 적이 있다.
   
▲ 제71회 순국선열의 날 계기행사로 만든 대형태극기(2011년)
1988년 호주이민 직전에 경기도 마석에 있는 이병곤 제1지대 제3구대장의 묘소에 김경화 선생 등 4분을 차로 모시고 갔었는데 그때 이국땅에서 사선을 함께 넘던 노병들의 끈끈한 전우애도 엿보았다. 2012년 고국 방문시 서울현충원으로 이장된 지청천 장군의 묘전에서 열린 제55회 추모제에 참석했으니 실로 45년 만에 다시 참배한 것이라 남다른 감회를 느꼈다.
또한 윤경빈, 김우전, 김국주, 김신, 김영관, 김유길, 석근영, 오상근, 정기엽 선생들과의 귀한 만남도 큰 기쁨이었다. 생존 광복군들이 독립정신 고양을 위해 마지막 불꽃을 피우고 있는 모습은 내 마음속에 꺼지지 않는 불멸의 광복군으로 오래도록 남아있을 것이다. 나의 멘토(mentor)와 같은 광복군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사랑도 어느새 반세기가 넘어간다. 
 

광복군의 역사  

   
▲ 제71회 순국선열의 날 기념행사에서 대형태극기 공개후 만세삼창(2011.11.17)

광복군은 1940년 9월 17일,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군으로 창설되었다. 나라가 없을 때, 일가일신의 영예를 뒤로 하고 수십 년간 독립운동을 해오던 분들이 주축이 되었고, 구국일념으로 자원입대한 애국청년들과 일본군에 징병되었다가 목숨을 걸고 탈출한 한적사병들이 합류했다.  
 

각지에서 활동하던 군조직의 편입과 초모공작으로 군세를 확장하였다. 임정의 국군으로서 당당하게 대일선전포고를 발표했고, 연합군의 일원으로 인면공작대(印緬工作隊)의 파견과 OSS 특수훈련을 수행하며 백절불굴의 정신으로 최후까지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일본의 무조건항복으로 국내정진작전이 실행 직전에 취소되어 자주독립의 기회를 잃은 아쉬움을 남겼다.

우리나라의 군은 각 왕조에 군대(관군)가 있었고, 1907년 대한제국에 와서 군대가 해산되었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으로 나라가 망하고, 1919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기 전까지는 무정부 상태 속에서도 의병과 독립군의 끈질긴 항쟁으로 군의 맥을 이어왔다. 광복군은 대한민국 국군의 모체이자 창군의 주역이 되어 군의 정통성을 이어갔다. 다음은 김용달 독립기념관 수석연구위원의 조언을 받아 정리하여 시드니 동포사회에 홍보한 것이다.  

*의병: 1895년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전후하여 자발적으로 일어난 민병으로 경술국치 직후까지 일제 침략자를 상대로 항일전을 벌인 무장세력
*독립군: 의병전쟁의 전통을 계승하여 3․운동 직후 본격적으로 조직되어 1930년대 중반까지 만주 일대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전투를 벌인 항일 무장세력
*광복군: 1940년 중국 중경에서 창설되어 연합국과 함께 항일전에 참여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국군

재호주광복회의 활동

   
▲ 제73회 순국선열의 날 기념행사, 추모음악회에서 독립군가를 부르는 청소년합창단 (2012.11.17 )

2008년 3.1절 기념식에 참석하여 광복군의 애창곡인‘압록강 행진곡’을 호주에 처음으로 소개하고, 독립군가 CD 300개를 보급해가며 동포사회에 다가갔다. 그해 광복절부터 호주거주 후손들과 연관된 ‘독립지사 시리즈’를 1년간 동포언론사에 연재하면서 후손들을 발굴하고, 2009년 1월에 ‘제2광복 새정신운동’을 목표로 단체를 창립했다.
첫 공식행사로 김국주 전 광복회장을 초청하여 6박7일간, 시드니와 캔버라를 잇는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며 단체활동의 당위성을 구축하였다. 그해 8월 김영일 당시 광복회장을 면담하는 자리에서 순국선열의 날 행사를 호주에서도 시작해보라는 말씀을 듣고 매년 거행하고 있다.
2009년에는 젊은 후손들이 해당 선대 어르신의 영정을 봉영하는 추모식으로 관심을 모았고, 2010년에는 계기행사로 3개월간 4385명의 서명을 받아 가로 7m, 세로4m의 대형태극기를 제작하여 큰 반향을 일으켰다.
2011년에는 한호수교 50주년을 맞아 호주로 입양 온 젊은이가 베트남전에 참전한 아버지와 광복군 할아버지의 뿌리를 찾아가는 창작연극을 영어로 공연하여 참석한 호주 현지인들의 큰 공감을 자아내기도 했다. 2012년에는 청소년합창단들을 구성하여 의병, 독립군, 광복군으로 이어지는 독립군가로 공연 겸 경연을 하는 추모음악회를 열었다.
청소년들이 잘 알려지지 않은 순국선열 이홍장 선생을 스스로  찾아내, 20세에 고문으로 숨진 아들과 어머니의 심정을 노래한 자작곡 ‘아들아’는 심금을 울렸다. 160여명의 출연자 중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 섞인 최연소팀이 광복군의 기백과 결의가 담긴 ‘광복군 아리랑‘을 부르던 모습은 지금도 짙은 여운으로 남아있다.  
앞으로도 해외에서 뿌리를 잃기 쉬운 세대들에게 민족정서와 나라사랑 정신을 심어주고, 다민족국가인 호주사회에도 우리 민족의 올곧은 정신문화를 알려 대한민국의 위상을 제고하는 일에 성심을 다하고자 한다. 
 
민족시련의 아리랑 고개를 넘어온 순국선열께 무한한 존경을! 
   
▲ 제73회 순국선열의 날 기념행사, 추모음악회에서 독립군가를 부르는 청소년합창단(2012.11.17 )
1922년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총독이 ‘조선사(朝鮮史)’ 편찬을 독려하며 <조선에서의 교육시책요령>을 지시했는데, "조선인 청소년들로 하여금 그들의 역사와 전통문화를 모르게 하고, 될 수 있는 대로 그들 조상의 무위무능(無爲無能)한 행적(당파싸움, 외침을 당하여 항복한 수난사 등)을 들추어 가르쳐라. 자국의 모든 것에 혐오감을 느끼게 하고, 일본의 역사와 전통문화, 인물등을 가르쳐 일본을 흠모하게 하여 조선인을 반(半) 일본인으로 만들라."고 했다.
우리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말살하려는 흉계를 되새기면 섬뜩하지 않은가? 지금도 일본은 역사왜곡으로 과거의 잘못을 미화하고, 침략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때마다 수위조절만 할 뿐, 몇 마디 항의로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우리 선각자들은 학교부터 설립하여 우리 말과 글을 깨우치게 하고는 역사교육으로 민족혼을 지켜왔다. 국민행복시대에는 국가와 민족의 자존을 위해 정부가 나서서 국사교육을 강화하고 학생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가르쳐서 혼의 부재가 아닌 의식 있고 당당한 대한국인(大韓國人)으로 육성해 줄 것을 갈망한다.
끝으로, 조국 광복을 위해 온갖 희생을 무릅쓰고 민족시련의 아리랑 고개를 넘어온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들께 무한한 존경을 보내며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다시 보자 애국선열! 다시 알자 독립운동! 다시 찾자 민족정기! 


   
 
              *** 황명하(黃明夏) : 재호주 광복회 회장 

                 1988년 호주이민
                 재호주 한인다도협회 회장 역임
                 (사)백산 지청천 장군 기념사업회 고문 (현)
                 세계한인교류협력기구 대양주연합회 자문위원 (현)
                 민주평통자문회의 호주협의회 15, 16기(현)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