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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카와 다쿠미, 지하에서 일본 정치인을 꾸짖는다

맛있는 일본이야기 205

[우리문화신문 = 이윤옥 기자] 그날도 요즘처럼 무더위가 극성을 부리고 있었다. 일본인 친구 치에코와 망우리에 있는 아사카와 다쿠미(浅川巧,1891. 1. 15. ~ 1931. 4. 2.) 무덤을 찾은 것은 지난해 여름의 일이다. 아사카와 다쿠미는 24살 때인 1914년 5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농상공부 산림과(朝鮮總督府 農商工部 山林課) 직원으로 경성에 첫발을 디딘 이래 급성폐렴으로 40살의 나이로 숨지기까지 16년간 조선에서 살다간 일본인이다. 그의 조선 사랑을 그린 소설은 나온 지 오래고 지난해에는 그의 영화 <백자의 사람>도 선보였다. 물론 이 영화도  치에코와 함께 보았다.

그가 평범한 임업시험소 직원으로 살다 갔다면 그를 기억하는 사람은 물론 영화나 소설도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인뿐만 아니라 한국인들도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가 단순히 조선의 흰 바지저고리를 입고 순백의 백자를 사랑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당시 식민지 조선에 관리로 건너온 일본인들은 혼란한 정세에 조선인이 미처 챙기지 못하던 청자며 백자 같은 값나가는 골동품과 서화 따위를 게걸스럽게 수집했는데 그중에는 국보급도 수두룩하다. 그러나 그 수많은 골동품을 좋아하는 사람 가운데 아사카와 다쿠미가 한국인들로부터 사랑 받는 까닭은 그가 조선백자를 사랑했기 때문이 아니라 백자의 나라와 그 사람들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다쿠미는 자연 풍광이 아름다운 일본 야마나시현의 한 평화로운 산골에서 태어나 먼저 조선에 건너와 자리를 잡은 형 아사카와 노리다카(浅川伯教,1884~1964)로부터 조선에 건너오라는 권유를 받고 건너와 임업시험장에서 일하는 틈틈이 조선의 백자와 밥상 등 조선인이 일상에서 흔히 쓰던 물건들과 마주하면서 그것에서 깊은 조선의 마음을 읽게 된다.

그가 지은 《조선의 밥상》에 보면 "중요한 것을 잃지 않으면 곧 자신이 생기는 날이 올 것이다. 이것은 또 공예의 길뿐만은 아니다."라는 말을 했는데 지금 보아도 의미심장한 내용이다. "죽어도 조선에 있을 것이오. 그리고 조선식으로 장사를 지내주시오."라는 유언을 할 정도로 철저한 조선인으로 남고자 했던 다쿠미의 장례식 날은 이웃의 조선인들이 서로 상여를 메겠다며 다툴 정도였으며, 지금도 망우리에 있는 그의 무덤은 아사카와 다쿠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살피고 있다.




 
 
             

오늘은 68주년 광복절 날이다. 68주년이라는 숫자는 일본의 강제점령에서 해방이 된 햇수를 가리킨다. 일본의 우경화가 날로 심해지는 요즈음 모습을 보면서 아사카와 다쿠미 같은 인물이 더욱 그리워지는 것은 왜일까?


그가 오늘날 우리에게 기억되는 것은 이웃끼리 평화롭게 서로를 인정하며 살아가고자 애썼기 때문일 것이다. 걸핏하면 망언을 일삼으며 아시아 평화를 위협하고 있는 일본 정치인들을 어쩌면  아사카와 다쿠미는 지하에서 크게 꾸짖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