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 = 윤지영 기자]
<현대어역> 글씨 보고 밤사이에 아무 탈 없이 지낸 일 든든하며 여기는 주상전하의 문안도 아주 평안하시고 동궁(東宮)의 정황도 편안하시니 축수(祝手)하며 나는 한결 같다.
▲ 명성황후가 손수 쓴 편지 글씨
오늘도 두통으로 괴로우며 일기는 매우 화창하다. 김문제가 난리에 국도(國盜)를 제지하는 곳에 가서 수치가 되었으니 어찌 아직 풀리겠느냐 하시오니 못한다. 판서 편지 지난번에 들어 온 것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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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는 황후이기 이전에 아내였고 어머니였다. 명성황후는 4남 1녀를 낳았지만 모두 단명했고 둘째 아들 척만 살아남아 왕위(순종)에 올랐다. 본인 자신도 1남 3녀 있으나 모두 죽고 외동딸로 자랐으며 9살 때 아버지 민치록이 죽고 16살에 왕비 간택이 있기까지 어머니와 둘이서 살아야 했다. 명성황후는 110점의 편지에서 왕과 왕세자의 안위를 자주 묻고 있는 것으로 보아 가족에 대한 남다른 사랑을 엿볼 수 있다.
현재 명성황후의 한글 편지는 모두 180통으로 추정되며 국립고궁박물관에 122통이 소장되어 있다.
▲ 편지봉투
《명성황후 한글 편지와 조선 왕실의 시전지》, 국립고궁박물관 지음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