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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수행을 실천한 가모노쵸메이

[맛 있는 일본이야기 211]

[그린경제=이윤옥 기자]  “첫해는 이런 식으로 그럭저럭 지나가고 이듬해는 조금은 나아지겠지 하고 기대 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되기는커녕 기근에다가 전염병까지 번져 더욱 비참해지고 결국은 더 혼란스러워지고 말았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굶주려 지쳐서 하루하루 날이 갈수록 절박한 상황에 빠지니 비유하자면 <왕생요집>에 적혀 있는 ‘메말라 가는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물고기’라는 표현과 같은 것이다. (중략) 시체 썩는 냄새가 교토 시내에 가득하였고 썩어가는 시신의 모습을 눈뜨고 차마 볼 수 없었다. 교토 시내가 이런 지경이었으니 하물며 가모가와 가장자리의 들판에는 온통 시체가 뒹굴고 있어 수레가 지나갈 틈도 없을 정도였다.”

이는 천년 고도 일본 교토의 800여 년 전 모습으로 때는 서기 1205년! 50살의 나이로 출가한 가모노쵸메이(鴨長明, 1155-1216)가 58살에 지은 《호죠키(方丈記)》에 나오는 글이다.《호죠키(方丈記)》는 세이쇼나곤의《마쿠라노소우시(枕草子)》, 요시다겐코의《즈레즈레구사(徒然草)》와 함께 일본 고전문학의 3대 수필집의 하나로 인생무상을 읊은 수준 높은 작품이다.

   
▲ 가모노쵸메이 모습(왼쪽), 가모노쵸메이와 관련이 깊은 교토 시모가모신사

“지금 히노야마 깊은 곳에 자취를 감추고 살면서부터 암자의 동쪽에 석자 남짓한 처마를 매달고 그 밑에 장작을 때어 밥 짓는 곳으로 삼았다. (중략) 방이라고 할 것도 없는 공간에는 고사리 웃자란 것을 말려 자리에 깔아 푹신한 잠자리로 삼았다.” 가모노쵸메이의 출가 뒤 삶은 절약이나 검소라는 말도 사치스러울 만치 소박하게 살았다. 그러면서도 그는 수행자로서 남에게 티 내지 않고 소란스럽지 않게 조용히 정진하다 삶을 마친 사람으로 유명하다.

다음은 그가 지은 불교설화를 모아 놓은 《홋신슈(發心集)》에 나오는 한 구절로 그 자신의 삶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일본 기슈 근처에 일생 수행을 쌓아온 고승대덕이 있었다. 하루는 제자에게 여자를 소개 해달라고 했다. 제자는 한심스럽게 생각하면서 스님의 말씀을 따랐다. 그리고는 이후 몇 십 년간 스승이 머무는 절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여자가 주지스님이 돌아가셨다고 하며 울면서 찾아왔다. 알고 보니 스님은 절에서 떨어진 제자의 은신처 쪽을 바라다보며 매일 근행(勤行)의 방울 속에 방울이 울리지 않도록 물건을 채워놓고 수행하였다.

매일 부처님께 참배하는데 그 소리가 들려서 ‘저 사람은 정말 수행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 했던 것이다. 그리고 첩을 두어 자기는 좋아하는 것을 한다는 식으로 세간에 소문을 퍼뜨려 놓고 여자와는 무관한 삶을 살았다. 그는 자기만의 도(道)를 구하려고 모든 위악(僞惡) 장치를 만들어 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