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 =전수희 기자] 고내포구에 저녁놀이 그림처럼 아름답다. 낮에는 낮대로 쪽빛 바다가 고운 고내리 해안가 도로에는 다락 쉼터가 있고 그 쉼터 안에 커다란 “재일고내리시혜불망비”가 서 있다. 불망비(不忘碑)란 말 그대로 ‘어떠한 사실을 후세 사람들이 잊지 않도록 기록하여 세우는 비석’을 말하는데 고내리 사람들이 간직하고 있는 잊을 수 없는 일이란 무엇일까? 불망비의 한 구절을 보자.
▲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 바닷가에 서 있는 다락 쉼터 표지판
“아 그 언제였던가. 한일합방 망국의 한 북받치는 설움 안고 가난을 이기려 고향땅을 뜨던 날이. 고내봉에 솟아 있는 절개의 송백, 맑은 시닛물의 물맛을 뒤로 하고 현해탄 건너 일궈온 삶이 아닌가. 물설고 낯설은 일본 땅에 뿌리내려 살아온 세월은 어느덧 100여년을 헤아리네.
한시도 고향을 잊은 적 없으니 망향이라. 가슴에 절절했던 그 한을 세상 끝날까지라 한들 어찌 잊으리. 자식들 키우랴, 생활고를 이겨내랴, 바당들어 잠녀질 하던 어머니, 빌에왓을 갈아엎던 아버지를 그리면서 억척스레 살아내던 타국살이 아니던가. 수만리 머나먼 고향산천 고내리라. 부모형제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야 필설로 이루 다 표현 할 수 있으랴. 고내 8경이 눈에 삼삼하다.”
▲ “재일고내인시혜불망비”
이는 재일 고내인 시혜 불망비(在日高內人施惠不忘碑)에 나오는 글귀의 일부이다. 구구절절이 고향땅을 떠나 일본에 살면서 겪었을 애환이 느껴진다.
올레길과 바다풍경이 아름다운 마을 고내리는 탐라시대 고내현이 있었던 때부터 생긴 마을이다. 마을 중심부에 정천(正川)이란 작은 시내가 있으며 고내봉이 넓게 차지하여 경작지가 비좁은 탓에 대대로 바다생활을 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예부터 바다 밖으로 나가는 일이 허다했는데 특히 일제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가는 사람들이 많아 재일 교포수가 마을 주민 보다 많다고 한다. 불망비 뒤에는 고향 고내리를 떠나 일본에서 뿌리를 사람들의 이름이 빼곡하다.
▲ 일본 오사카에서 여기 고내리 쪽빛 바닷가를 그리워 했을 것
1917년 오두민 씨를 시작으로 1930년대 이후 까지 일본내 고내리 친목회를 이끌어 가던 회장과 회원들의 이름을 물끄러미 바라다본다. 지금은 모두 고인이 되어 고향땅 푸른 파도 넘실대는 고내리 다락쉼터 언덕에 와 계시는 걸까?
오사카 츠루하시 시장에 갔을 때 안내하던 언니가 말해주던 제주 출신 재일교포란 이곳 고내리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었는지 모른다. 저녁놀이 유달리 아름다운 고내리 포구에 땅거미가 서서히 진다. 9월 말 바닷바람이 차다.
▲ 일본에 간 고내리 사람들, 저기 더러운 오사카 히라노강에서 고향 쪽빛바다만 생각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