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반재원 소장] 이 글은 ‘저’ ‘돈’이라는 낱말에 대한 상고사적인 측면에서의 말밑 찾기를 목적으로 한다. 이 낱말은 말하는 이들이 일반적으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사용하는 낱말들이다. 그런데도 정확한 말밑 찾기 활동이 부족한 상황이다. 이 낱말들의 올바른 말밑 찾기 결과는 정확한 뜻의 전달과 수용을 가능케 한다. 동시에 말밑을 통하여 우리 조상의 정체와 풍속과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자료가 될 것이다. 또 홍산 문화의 유물 옥기 중 옥룡(玉龍)이 옥저(玉猪)일 가능성에 대하여 살펴봄으로써 ‘옥저’와 ‘저’ ‘돈’과의 연관성을 알아보기로 한다.
말밑 찾기
1) 저
‘저’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저 - ① 나의 낮춤말.
②저희.
저거 - 저거 집에 간다. 저희의 경상도 사투리.
․제 - 나의 낮춤말인 저의 바뀜 꼴. ~생각으로는, ~잘못입니다.
․제각각 - 저마다 각각.
( 한글학회 지음. 어문각. 우리말 큰사전)
▲ 제기(祭器) 유물에 나타난 돼지의 4갈래 소용돌이 무늬 |
‘저’는 돼지를 족표(族標, 토템)로 삼았던 백익(伯益1)의 종족들이 자신들을 지칭하던 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백익은 산해경山海經을 쓴 저자로 전해지고 있는데 금문학의 측면에서 본다면 삼황오제 시대의 마지막 왕이다. 그 종족이 돼지(猪, 豚)를 족표로 삼았었다.
백익이 시제(時祭)를 지내는 도중에 그의 처남인 계(啓)에게 무참히 참살 당하고 그 후 하나라가 태동하게 되는데 지금도 우리들이 ‘저는’ ‘제가’ 라고 자신을 칭하고 있는 것은 돼지(猪)를 족표로 삼았던 백익의 후손이라는 증거로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곧 ‘우리 돼지족은~’이라는 말을 ‘저(猪)는~’이라고 표현하거나 ‘제(猪)가~’ 라고 표현했던 것으로 보인다. ‘제 각각’ ‘제가’의 ‘제’도 또한 돼지 저(猪)에서 나온 말일 것이다. 예를 들면 돼지고기를 제육(猪肉)이라고 발음하고 있으며 볶은 돼지고기를 제육볶음, 보쌈 돼지고기를 제육보쌈이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도 ‘저’와 ‘제’가 같이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저가’ ‘제가’ ‘저희가’ ‘저희들이’ ‘저 놈이’ ‘저 아이는(제애는)’ ‘저이가’ ‘제 각각’의 ‘저’ ‘제’ ‘저희’등은 돼지(猪)의 ‘저’에서 연유하였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경희대학교가 사자를 심볼 마크로 정해 놓았기 때문에 자신들을 가리킬 때 ‘우리 사자들은’이라고 지칭하는 것이나 파월 부대 중에서 맹호부대는 호랑이를 상징으로 삼았기 때문에 그 부대원들이 ‘우리 맹호들은’ 이라고 자신들을 지칭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하겠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가 백익의 후손이라는 방증으로 볼 수 있는 자료가 될 수 있겠다.
2) 돈
‘돈’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돈 - 일반인들이 두루 사물의 값어치를 헤아리는 기준으로 삼고 어떤 사물의 대가로 주고받을 수 있도록 나라에서 일정한 모양에 일정한 값을 표시해 만든 물건.
~이 잘 돈다. ~이 말랐다. ~을 꾸어 쓴다.
~을 번다. ~을 뿌린다.
금전 , 화폐
~이 꽤 나갈 물건. ~많은 집. ~냥이나 벌었다.
~만 있으면 개도 멍첨지. ~만 있으면 귀신도 부린다. ~내기하다.
무게, 열푼을 하나 치로 세는 단위.
금 한~ , 금 두~ ,
․돈 - 姓의하나. 豚氏.
․돈 - 돼지(豚). 돼지꿈 - 돈과 연결.
․돈아(豚兒) - 아들 놈(자기 자식을 남에게 낮추어 부르는 말).
․가아(家兒) - 아들 놈(자기 자식을 남에게 낮추어 부르는 말).
( 한글학회 지음. 어문각. 《우리말큰사전》)
▲ 제기 유물에 나타난 돼지의 파형 무늬(왼쪽), 백익의 다른 이름인 돈 붕(朋)자
2)로서 이 글자는 바로 돈붕(朋)字의 시원자(始原字)이기 때문이다.
또 자기 자식을 남에게 낮추어 부를 때 역시 돼지 돈(豚)이나 집 가(家)를 써서 우리 집 ‘돈아(豚兒)’가, 또는 우리집 ‘가아(家兒)’ 라고 칭하는 것도 같은 연유일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자신의 아들 사건으로 방송에서 대 국민사과를 할 때에도 ‘우리집 돈아(豚兒)를 잘 가르치지 못한 아비의 허물을 용서해 달라.’라는 표현을 쓴 것도 뿌리 깊게 내려오는 우리민족의 토박이말이기 때문이다.
‘이 졸작은 우리집 가아(家兒)의 그림입니다.’라는 말은 지금도 살아 숨쉬고 있는 우리말이다. 가(家)도 돼지라는 동물을 이르는 것이 아니라 돼지(豕)를 족표로 하는 종족이 사는 집이라는 뜻이다.
이상(李箱)의 <오감도>라는 시에 나오는 ‘아해(兒孩)’도 ‘돼지 해(亥)’가 있어서 ‘돈아(豚兒)’와 같은 뜻이다. ‘저희들’의 ‘저희’도 ‘저해(猪孩)’나 ‘저해(猪亥)’에서 온 말일 것이다. 파충류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집 아래에 돼지를 키웠을 수도 있고 또 주거형태가 돼지와 한 공간에 거주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家’의 유래는 백익의 족표에 그 뿌리가 박혀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지금도 경상도 사투리로 아이를 일컬을 때 ‘가아(家兒)가~’ 또는 ‘가(가)가~’ 라고 한다. <가가 가가가?>라는 우스개 소리도 <가아(家兒) 즉 그 아이의 성씨가 가가(賈家)인가?>라는 말이다.
이때부터 물물교환의 형태를 점차 벗어나면서 돈족(豚族)인 백익이 만든 화폐가 활발하게 유통되어 그 중요성이 인식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리는 지금도 동전을 넣는 저금통의 대표적인 형상이 돼지(豚)저금통이며 돼지꿈(豚夢))은 바로 돈(豚)이나 재물 또는 복권 당첨 등으로 연결하고 있다. 또 우리는 예로부터 고사에 돼지머리를 필수 제물로 쓰던 민족이었으며, 냉장고의 보급으로 돼지 삼겹살이 민족의 음식이 된 것도 이러한 까닭과 무관하지 않는 것 같다.
화폐의 유통역사는 생각 보다 훨씬 오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요임금 때의 역사인 사기 《요전(堯典)》의 기록에 의하면 금작속형(金作贖刑)이란 단어가 나오는데 이것으로 보아 금속 즉 보석이나 돈으로 형벌을 속죄하는 일종의 보석금, 석방금 제도가 있었음을 볼 수 있다.
금문학상으로 요임금은 요→순→우→백익의 순으로 백익보다 그 연대가 더 빠르다. 또 요임금보다 빠른 신농(神農)때에도 신농의 화폐인 조패(鋤貝) 또는 신패(神貝)3)가 있었다.
그러나 그 때까지만 해도 화폐의 유통이 그리 활발하지 못하다가 백익 때에 와서 비로소 화폐의 혁명이 일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때부터 백익의 족표였던 ‘돈(豚)’이 화폐의 대명사가 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백익의 다른 이름이 화폐 꾸러미를 나타내는 "돈붕"이었던 것으로 보아 짐작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이 이처럼 돼지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저는’ ‘제가’ ‘저희들’이라는 단어뿐 아니라 ‘돈’이라는 단어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생활 용어로 사용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우리 민족의 뿌리는 삼황오제 시대의 마지막 왕으로서 돼지를 족표로 삼았던 백익과 연결고리를 제공해주고 있다.
홍산 문화를 용 문화 기원지로 지목한 것은 1984년 랴오닝성 고고연구소의 쑨서우다오(孫守道)라는 연구가이다. 그는 처음에 홍산문화 옥기를 돼지 같이 생겼다고 하여 ‘옥저룡(玉猪龍)’이라고 이름 붙인 주인공이기도 하다.
초기에는 뭉툭한 코에 큰 눈, 기형적으로 큰 귀가 마치 돼지를 연상케 한다 해서 ‘옥저(玉猪)’ ‘옥저룡(玉猪龍)’이라 일컬었는데 지금은 ‘옥저’라는 말은 슬그머니 사라지고 ‘옥룡’으로만 불리고 있다. 이것은 중국 문화에 기원하는 ‘용’ 문화에 맞추어 홍산 문화를 용 문화 기원지로 굳히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낳게 한다.
그 까닭은 우리 겨레가 쓰고 있는 ‘저(猪)’ ‘제(猪)’ ‘돈(豚)’ ‘우리’의 말밑과 돼지형상인 옥저(玉猪)가 서로 연관되어 있음을 주시한 중국의 의도적인 태도로 보이기 때문이다.
▲ 홍산 유물 옥저(玉猪) |
‘저’ ‘돈’ ‘우리’의 상고사적인 어원 탐색은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 홍산 문화로까지 우리 겨레의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통로로 삼을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유물이 땅속에 묻혀 있는 화석이라면 그 민족의 말은 살아있는 역사의 화석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단군조선과 웅녀의 족표인 곰과의 연관성은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 분명히 혼란을 일으키게 하는 대목이라 하겠다. 금문학상의 단군조선과 백익의 연대 차이는 현재 상고사의 연대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이것을 어떻게 풀어내느냐 하는 것이 과제로 남는다.
1) 백익 : 사마천의 오제본기에 하나라의 시조인 우(禹)의 사위로 기록되어 있는 인물로 산해경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금문학상으로는 백익이 우임금의 사위로서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으나(기원전 2303~기원전 2298. 재위기간 6년) 우가 죽은 지 2년 뒤에 자신의 처남인 우의 아들 계(啓)에게 무참히 학살당하였다. 계는 아버지 우를 시조로 하여 하 나라를 세운다. 駱賓基, 韓國文字學會解,『金文新攷 外篇』, 中國 山西 人民 出版社, 1987.
2)
出版社, 1987
3) 鋤貝(神貝) -
이 화폐(貨幣)는 청나라 황실에서 보관해오던 것인데 마지막 황제 부이가 실각 하면서 지금은 중국 요령성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