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경제/얼레빗=반재원 소장] 《태백유사》에는 “불상(佛像)이 처음으로 들어와 절을 짓고 대웅(大雄)이라 하였다. 이는 승도(僧徒)들이 불교이전의 고사(古事)를 답습하여 그대로 부르는 것이지 본래는 불가의 말이 아니다.(本非僧家之言也)”라고 하였고 “한웅(桓)雄을 대웅(大雄)이라고 일컬었다”*1) 라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대웅전(大雄殿)이란 한웅전이며 불교 유입 이전부터 한웅천왕(桓雄天王)을 모신 수두(蘇塗)제단이었지 원래 불상을 모신 곳이 아니었다. 원래 불교의 것이었다면 석가전이나 부처전이라고 했어야 할 것이다. ‘대(大)’와 ‘한’은 같으며 ‘대로(大路)’나 ‘한길’이나 같은 것이다.
▲ 봉정사 대웅전 |
불교나 유교, 도교 이전의 우리 문화는 어떠하였을까? 중국 측의 기록인 《산해경(山海經)》, 《전한서(前漢書)》 등의 기록에 따르면 “동방에는 군자의 나라가 있다.”라고 하였다. 곧 동방에는 중국보다 문화와 경제의 선진국인 군자국이 있다고 한 것을 보면 우리 정통의 고유문화는 그들보다 선진문화였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이 땅에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 전국의 명산에 국선들이 수도하던 곳이 정해져 있었으며 이곳에는 한웅 천황이 모셔져 있었다.
따라서 본래 불교도래(기원전 372년) 이전에 이미 한웅천황을 모신 대웅전(한웅전)이 있었고 그 대웅전은 국선(國仙) 낭도(郎徒)들이 수도하던 수도가람 이었다. 대웅전 안의 닫집(다섯집)도 바로 단군 때의 5개 부족장인 오가(五家)를 상징하고 있다. 대웅전 뒤 위쪽에는 이 나라 터주신인 산신을 모신 산신당이 있고 그 주위에 칠성당, 독성당, 용왕당, 선왕당 등이 모셔져 있다.
이렇게 본래의 인도 불교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당들이 모셔져 있어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 절에서만 볼 수 있는 가람배치 현상이다. 이러한 가람배치 현상을 보면 석가의 불교가 우리의 토속신앙을 포용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우리 고유의 전통적인 수도장에 불교를 끌어안은 우리 조상들의 포용력을 읽을 수 있다.
고운 최치원이 말한 만교(萬敎)의 시원 사상인 현묘지도(玄妙之道)*2)가 있었음을 미루어 보아 동양사상의 발상 원천이 한웅 배달국과 단군 조선이었음을 알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