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10 (금)

  • 흐림동두천 -15.9℃
  • 맑음강릉 -9.0℃
  • 맑음서울 -11.6℃
  • 맑음대전 -12.7℃
  • 맑음대구 -10.6℃
  • 맑음울산 -10.9℃
  • 맑음광주 -10.0℃
  • 맑음부산 -9.3℃
  • 흐림고창 -11.9℃
  • 제주 1.4℃
  • 맑음강화 -13.6℃
  • 흐림보은 -16.4℃
  • 흐림금산 -15.2℃
  • 맑음강진군 -7.2℃
  • 맑음경주시 -11.1℃
  • 맑음거제 -8.0℃
기상청 제공
상세검색

역사와 민족

신통력의 백제 도장스님과 나라(奈良)대안사

[일본 속의 한국문화 답사]

[그린경제/얼레빗 = 이윤옥 기자] 고대사에 보면 가뭄이 들어 비가 계속 내리지 않아 기우제(祈雨祭)를 지냈다는 기록이 많다. 천문학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는 가뭄과 홍수 등의 자연재해가 모두 하늘의 조화로 여겼기 때문이다. 특히 모내기 철에 장시간 비가 내리지 않을 때 조정에서는 용한 승려를 불러 기우제를 지내게 했는데 일본의 정사인 《일본서기》에도 기우제 이야기가 나온다.

《일본서기》권 24 황극왕(皇極天皇) 원년 7월 27일에 보면 “ 백제대사 남쪽 뜰에서 불보살상과 사천왕상을 안치하고 승려와 사부대중이 대운경(大雲経) 독송했다. 28일에 비가 내렸다.” 또 권 29 천무왕(天武天皇) 12년 7월부터 “가뭄이 계속되었는데 백제승 도장(道蔵)이 기우제를 지내자 비가 내렸다.”는 기사가 보인다. 이 밖에도 백제스님 도장이 기우제를 행한 기사가 일본서기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다. 그만큼 도장스님의 도력(道力)이 조정에서 인정 받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 한때 남도 7대사에 속하던 큰 규모의  대안사 본당(대웅전)의 현재 모습은 조촐하다

  백제출신 도장 스님은 일본에 성실종을 전한 스님으로 806년의 태정관부(太政官符) 에 따르면, 3론업(三論業) 3명 가운데 1명이 성실론을 받아 들일 만큼 중요한 종파로 그 시조가 도장스님이다. 이보다 더 도장 스님을 자세히 알수 있는 기록은 《속일본기》이다. 721년조에 보면 "백제 사문 도장스님은 진실로 법문의 큰 스승이요, 석도(釋道)의 큰 대들보이다. 나이가 80살을 넘어 기력이 쇠약해졌으니 노인을 봉양하는 뜻에서 속백(束帛, 공경을 위한 물건)을 하지 않는다면 어찌 어른을 보살피는 정이라 하겠는가! 부디 유사를 받들어 풍족한 물건을 베풀되 방(紡) 다섯필, 면(綿) 열동, 포(布) 이십단으로 하라. 또한 도장스님이 입적 하실 때까지 스님과 같은 고향사람들과 친족들에게까지 부역을 면제하라"는 기록이 보인다. 실로 놀라운 대우이다. 어지간한 공로가 아니면 생각할 수 없는 파격적인 대우로 그만큼 조정에서 스님이 존경받는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도장스님이 기우제로만 유명한 것은 아니다. 그의 학문적인 경지도 상당한 수준에 올라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 그의 저서이다. 본조고승전에 따르면 도장 스님은 <성실론소> 16권을 지었는데 이 책은 가마쿠라시대의 고승 양충(良忠, 1199-1287)으로부터 에도시대의 종요백원안립(宗要柏原案立, 1646)이란 책에 이르기까지 400여 년간 성실론의 텍스트로서 각광을 받아왔다.

   
▲ 높이 만든 대안사 정문

 불교이론서의 대가일뿐더러 왕실의 신임이 두터웠던 도장스님이 거쳐 했던 백제대사(百濟大寺) 는 현재는 대안사(大安寺,다이안지)로 이름이 바뀌어 있다. 대안사는 나라시 중심부에 있는 고야산 진언종파의 절로 본존은 11면관음상을 모시며 동대사(東大寺), 흥복사(興福寺)와 더불어 나라시대의 대표적인 절이다. 동대사에 견주어 남대사(南大寺)란 별칭으로 불린 대안사는 남도 7대사 중에서도 동대사와 더불어 7중탑을 보유한 대규모 가람을 갖춘 절이었다.

 대안사의 기록에 따르면 대안사의 기원은 병중에 있던 성덕태자의 발원으로 백제천 주변에 세우고 백제대사(百済大寺)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이는 일본 최초의 국가 사원이다. 지금의 대안사는 여러 번 이전을 하면서 이름이 바뀌는데 천무천왕 때 백제대사였던 것이 타케치(高市)로 옮겨 가면서 다케치대사(高市大寺)로 바뀌고 그 후에는 대관대사(大官大寺)로 바뀌었다. 
 

   
▲ 대안사 해적이(緣起)에는 백제대사가 전신이었음을 기록하고 있지만 백제스님 이야기는 없다. 사진은 지난 겨울 대안사를 찾은 글쓴이

이후 헤이죠쿄(平城京) 천도와 함께 지금의 대안사(大安寺)라는 바뀌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지금의 자리에서는 도장스님이 주석하던 발자취는 얻기 어려울지 모르나 도장 스님이 주석하던 역사성으로 보면 그리 생소한 절도 아니다.

 정리하면   백제대사(百済大寺)→다케치대사(高市大寺)→다이칸대사(大官大寺)→다이안지(大安寺)로 바뀌었으나 이는 아스카에서 수도를 나라로 옮기는 과정에서 호국불교 사원들도 자연히 따라 이동 한 것으로 법흥사, 약사사, 흥복사와 함께 대안사도 신수도인 헤이죠쿄(平城京)에 정착하게 된 것이다.

   
▲ 대안사 남대문 터

 도장스님은 가마쿠라시대(鎌倉時代)의 선승 고칸시렌(虎関師錬)이 지은 불교사서인 《원형석서》와《본조고승전》에 백제의 뛰어난 고승으로 기록되어 있을 만큼 일본 내에서의 족적이 뚜렷한 스님이다.

 나라지방에 많은 절들이 산재하지만 특히 한국계 출신 스님들과 깊은 관련이 있는 절들은 한번쯤 시간을 내어 찾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나라(奈良)의 대안사를 찾아 간 날은 12월 중순이었는데 춥지는 않았지만 찾는 사람이 거의 없는 한가한 모습이었다.

   
▲ 지금의 나라지방으로 이전하기 전 백제강변에 세웠던 백제대사 발굴터

유감스러운 것은  절 입구의 커다란 안내판(緣起)에는 대안사가 백제대사에서 유래한다는 말은 적고 있으나 이곳에 주석했던 스님 가운데 백제 도장스님 같은 유명한 고대 한국 출신 스님들은 빠진채 당나라 승려들 이름만 적고 있는 것을 읽다보니 어째  팥소가 빠진 찐빵같다. 그래도 이 절의 전신이 아스카의 백제대사였음을 밝히고 있는 것만으로도 백제의 향기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 주소: 나라시 다이안지(奈良市大安寺2-18-1)
 *JR나라역(奈良駅)에 내리면  대안사행 버스가 많다. 나라역에서 10분정도 타고 10분 정도 걷는다.